가을날의 V-log, 낙산공원에서 본 저녁놀 (올림푸스 PEN-F&17mm F1.8)

9월이 됐고, 거짓말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어 옵니다. 가을입니다.

지독한 더위를 핑계로 집에 놓아뒀던 카메라를 매일 챙기느라 요즘 전보다 가방이 무거워졌습니다. 다른 해보다 특별한 계절이 될 이번 가을에는 조금 더 촘촘하게 일상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아침부터 하늘이 근사했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구름도 꼭 그림 같아서 사진 찍기에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점심때가 채 되기 전부터 어디서 노을을 감상할 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혜화에 있는 낙산 공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혼자 사진 찍으러 많이 다닌 곳이었는데, 이화마을을 외국인 관광객들이 채우고 난 후로는 발길을 끊게 됐습니다.

마음이 급했는지 낙산 공원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네 시, 해가 지기 전까지 오랜만에 이화 마을을 둘러 보기로 했습니다.


이 날도 저는 제 카메라 중 가장 작고 가벼운 올림푸스 PEN-F를 챙겼습니다. 렌즈는 역시 PEN-F와 가장 잘 어울리는 17mm F1.8, 아마 다음 PEN이 나올 때까지는 이 카메라가 데일리 카메라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이화 마을 풍경 (모노크롬 프로파일)


이화 마을은 가깝고, 소소한 볼거리들이 많아서 자주 가는 곳입니다. 특히 카메라 하나 덜렁 메고 가서 산책하기 좋습니다. 오후가 되자 곧 비가 내릴 것처럼 하늘이 잔뜩 흐려졌는데, 그래서 우중충한 풍경을 흑백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평일 오후라 사람도 많지 않았고,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이어서 저도 스스럼 없이 사진을 찍으며 다닐 수 있었습니다.

걷다 보니, 이렇게 소소한 풍경들을 담으며 사진을 즐기는 것이 꽤나 오랜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여전히 그대로인 이화 마을 풍경 때문이었겠죠. 아쉬운 건 몇몇 벽화들은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들에 의해 지워져 예전같은 포근함은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날 오후 사진은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 중 그레인 효과를 강조해 필름 P&S 카메라의 느낌을 연출했습니다. 평소에는 필름 그레인 효과를 빼고 대비를 높여 매끈한 하이컨트라스트 모노크롬 촬영을 즐겨 하는데, 부드러운 명암 표현에 그레인 효과를 더한 이 날 결과물은 평일 오후의 고요하고 어딘가 쓸쓸하기도 한 느낌이 잘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디지털 카메라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저는 이런 필름라이크한 그레인 효과가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더 연습을 해 봐야 겠습니다. RAW+JPG로 찍으면 모노크롬 프로파일 결과물과 컬러 편집이 가능한 RAW 데이터를 동시에 얻을 수 있으니까요.



낙산공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고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성곽길과 도시 풍경의 조화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적이는 대학로를 벗어나 조금만 오르막길을 걸으면 한적한 공원 풍경이 펼쳐지죠. 모인 사람들의 표정도 여유롭습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 역시 근사한데, 시간대별로 판이하게 다른 느낌입니다. 오후는 선명하고, 저녁은 아련하며 밤은 화려합니다. 낙산 공원을 걷는 동안 하늘은 더 흐려져 한 두 방울 빗방울이 흩날리고, 노을 없이 밤이 될 것처럼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어쩌면 노을을 볼 수 없겠다 싶어 걱정이 됐지만, 마로니에 공원에서 사 온 식빵 하나와 우유가 포기하지 않고 공원에서 일몰을 기다리게 도와줬습니다.


낙산 공원에서 본 일몰


잔뜩 흐린 하늘, 빼곡한 구름 사이로 이따금씩 화려하고 선명한 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여전히 등 뒤에는 먹구름이 가득하지만 이 구름만 걷히면 멋진 노을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카메라를 다시 쥐었습니다. 무척이나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이 오른쪽으로 조금씩 걷히더니 이윽고 저녁같던 풍경이 다시 오후로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이 때다 싶어 공원 산책로의 난간에 바짝 다가갔고, 변해가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삼십 분이나 됐을까 싶은 짧은 일몰이었지만 변화무쌍한 풍경에 몇 번이나 감탄이 새어 나왔습니다. 구름새로 부채꼴을 만들며 퍼지는 빛, 양떼처럼 몽글몽글 늘어선 구름, 파란 가을 하늘과 주황빛 노을이 만드는 그림 혹은 거짓말같은 색 놀이까지. 예정된 일몰 시간이 되자 능선 너머 색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이 장면을 좀 더 기억에 남게 담을 방법을 고민하다 타임랩스 촬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삼각대가 없어 식수대에 카메라를 놓고 소지품으로 렌즈를 위로 향하게 들어 올려 구도를 잡았습니다. 총 촬영 수는 199장, 촬영 간격은 3초. 올 해 본 노을 중 가장 화려한 것으로 기억될 이 날 일몰의 절정 10분을 담아 동영상으로 변환했습니다. PEN-F의 경우 Full HD에서는 15fps 동영상까지만 지원이 돼서, 199장의 사진을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영상으로 제작했습니다.



두고 두고 볼 가을 노을 영상이 하나 생겼습니다. 사진과는 또 다른 매력에 앞으로 저도 일상의 장면들을 짧게나마 V-log로 남겨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쉽게도 PEN-F가 4K 동영상을 지원하지 않아 기변을 고민해야 할까 싶기도 하네요.

살랑살랑 부는 찬바람에 멋진 가을 노을까지 보고 나니, 여행이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과연 여름이 끝나긴 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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