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나기 전에 몸보신을 하기로 했습니다. 흔한 메뉴들을 떠올리며 고민하다 얼마 전 지나가다 우연히 본 홋카이도식 징기스칸 요리가 생각났습니다. “양고기 어때?” “좋지.” 홍대,상수,합정 지역에 징기스칸 양고기 음식점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꽤 많더군요. 그 중에서도 유난히 유명한 곳 ‘이치류’에 대해 알게됐고, 먹고 싶다고 쉽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기에 큰 마음 먹고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첫경험을 제대로 해 보자면서요.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고, 미쉐린 가이드에 2년 연속 등재된 곳은 서울에서 징기스칸 양고기 집으로 가장 유명한 곳들 중 한 곳입니다. 생 양갈비와 생 살칫살, 생 등심 세 가지를 판매하는데 하루 판매하는 양이 각각 30인분으로 정해져 있고 모두 판매되면 영업이 종료됩니다. 인파를 보니 조금만 늦어도 헛걸음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치류 홍대 본점은 홍대역과 합정역 사이, 홍대 예술거리 근처에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캐슬 프라하 근처에 있어서 찾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점심 시간엔 운영하지 않고, 오후 다섯시에 오픈 하는데, 급한 마음에 오픈 20분 전에 도착해 기다렸습니다. 대기가 많은 곳이라 긴장했는데 다행히 평일 오픈 시간이라 대기 없이 오픈 때 입장했습니다.
크지 않은 매장 내부는 모두 바 형식좌석으로 되어 있으며 대략 열 다섯 명 정도가 한 번에 앉을 수 있습니다. 고기부터 채소까지 모두 직원분이 구워 주는 방식이라 따로 테이블 좌석은 없습니다. 일행은 아니지만 다들 도란도락 둘러 앉아 먹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인기가 많은 곳이라 오픈과 동시에 좌석이 가득 차더군요. 시간이 되신다면 가급적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휴, 다행이다-
판매하는 양고기 종류는 총 세가지입니다. 처음 방문할 경우 직원분이 친절하게 메뉴 추천을 해 주시는데, 두 명이 방문할 경우 보통 세 종류의 고기를 각각 하나씩 주문한다고 하더군요. 메뉴판 표시 기준 아래쪽으로 갈 수록 육향이 진해지니 살칫살부터 등심, 갈비 순으로 먹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구워 주시고요.
주문한 고기가 나왔습니다. 생고기의 빛깔이 그야말로 아름답습니다. 양이 많은 편이 아니라 두 사람이 3종의 고기를 하나씩 주문해야 적당하겠더군요.
기본적인 상차림은 이렇습니다. 품질 좋은 생고기를 먹기 때문에 특별한 반찬 없이 고기 맛을 돋워 줄 양념장과 소금이 준비되고, 배추 절임과 삶은 메주콩이 더해집니다. 양념장에는 취향대로 고춧가루를 뿌리고, 고기를 찍어 먹을 소금까지 덜어 놓으면 고기 먹을 준비 완료.
생 살칫살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고기가 구워집니다. 불판에는 양 비계를 올려 기름진 맛과 향을 더하고 함께 먹을 파와 양파가 함께 구워집니다. 개인적으로 고기 못지 않게 구운 파와 양파가 맛있어서 무척 많이 먹었습니다. 특히 생맥주와 함께하는 맛이 일품입니다. 채소는 계속 채워지기 때문에 마음껏 먹어도 좋습니다.
다 구워진 생 살칫살 한 점을 구운 파,양파와 함께 소스 혹은 소금을 찍어 한 입. 두툼한 생고기는 식감이 무척 부드러우면서도 씹을 때마다 안에 있는 육즙이 터집니다. 양고기 특유의 향도 거의 나지 않기 때문에 양고기를 즐기지 않는 분들도 생살칫살과 생등심 까지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고기는 전부 직원분들이 돌아가며 구워 주시기 때문에 편하게 담소를 나누며 즐길 수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나란히 바에 앉아 몸과 술잔을 기울이며 보내는 시간이 참 좋죠. 잘 구워진 고기들이 사진처럼 채소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고기를 먹는 순서는 육향의 세기로 정해집니다. 기름기가 적은 생살칫살에서 생등심, 그리고 마무리로 양고기 향 물씬 나는 생갈비를 먹게 됩니다. 저는 갈비가 가장 부드럽고 맛있었지만 양 특유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식감과 맛, 향을 모두 생각하면 생등심이 가장 무난하게 느껴지더군요. 물론 여기 방문한 대부분의 손님들은 마치 코스요리처럼 각 고기들을 차례로 맛보게 되지만요.
마무리는 양 생갈비- 뼈가 붙어 있는 갈빗대 두 대를 통째로 올려 굽습니다. 여기서 결국 참지 못하고 나마 비루를 외치게 됩니다.
한국에서 쉽게 맛 볼 수 없는 기린 생맥주가 있어 반가웠습니다. 노즐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며 맛이 무척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거품의 부드러움과 맛이 일본에서 먹었을 때와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좋았습니다. 대신 가격은 435ml 한 잔에 만 원으로 비싼 편입니다. 아, 그래도 갈비는.. 갈비는.... 나마가 있어야죠.
거기에 품질 좋은 쌀로 짓는다는 공기밥을 추가했습니다. 갈비니까요.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은 고기와 함께 즐기거나 육향 밴 양념을 넣어 비벼 먹으면 맛있다고 합니다. 1인당 한 그릇밖에 주문할 수 없다는 말에 저질러 버렸습니다.
밥알을 탐하는 사이에 갈빗대가 보기 좋게 구워지고, 큰 살덩이는 한 입에 먹기 좋게 잘라서, 뼈 부분은 적당히 살을 남겨 손으로 들고 뜯어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갈비는 역시 뜯어야 제 맛- 양고기를 좋아하는 제게 양 생갈비는 부드럽고 기름진 고기 맛에 특유의 향까지 더해져 단연 최고로 꼽는 메뉴가 됐습니다. 여기서 사실 참지 못하고 갈비를 추가할 뻔했죠.
역시 고기는 밥과 함께 먹어야 한다며 갈비를 뜯은 후에는 이 곳만의 마무리가 있습니다. 남은 밥에 구운 파, 양파를 올리고 보리차를 부어 먹는 오차즈케. 구수한 맛이 강한데, 그래서 깔끔한 식사 마무리로 좋습니다.
징기스칸 스타일의 양고기는 처음이었는데, 다른 곳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식사였습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 음식이라 자주 방문할 수는 없겠지만, 본격적인 여름나기 전 보양으로 아주 좋았습니다.
으- 시간을 돌리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