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여행 둘째날, 밤을 새다시피 하고 향일암의 일출을 보고 왔습니다. 새벽 네 시 반에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걸려 향일암 입구에 도착한 뒤 수많은 계단을 낑낑대며 또 삼사십분 오른 뒤에야 일출 전망대로 유명한 관음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꼭두새벽부터 카메라 가방을 짊어지고 가파른 돌계단을 올랐더니 쌀쌀한 새벽 공기에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더군요. 사실 계단 오르다 몇 번이고 다시 내려갈까 망설였지만, 그 시간에 딱히 갈 곳이 없었던 것이 저를 독려했습니다.
- 구름 때문에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 좋았던 향일암에서의 일출 -
그렇게 오전 여섯 시부터 일곱 시가 조금 넘는 시각까지 한 시간 가량 일출을 감상하고 다시 여수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라 지체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아침을 먹고 향한 곳은 KTX 안에서 여수에 대해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나왔던 고소동 천사 벽화마을이었습니다. 요즘 여기저기 벽화마을이 참 많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설명을 보니 여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같더라고요.
- 구름 때문에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 좋았던 향일암에서의 일출 -
예쁜 색으로 지붕을 칠한, 바다가 보이는 마을. 제가 가 본 벽화마을 중 상당수는 달동네나 소외된 동네를 밝게 꾸미고 사람들이 찾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조성된 곳이 상당수였는데 사실 여수 천사벽화마을은 그렇게까지는 보이지 않고, 바다 전망이 좋은 주거 밀집 지역을 특색있게 꾸며 놓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지붕은 얼마 전 새단장한 듯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예쁘게 칠했고, 좁은 골목길에는 벽화들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구역을 나눠 테마별로 풍경부터 만화 주인공, 역사 속 장면까지 다양한 벽화들을 그려넣은 것도 여수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로 보입니다.
저는 이순신 광장쪽 입구를 따라 계단을 올랐는데, 큰 계단을 오르니 상가들이 밀집된 제법 큰 길이 나오더군요. 벽화들을 잘 보기 위해서는 좀 더 천천히 올라왔어야 했는데, 이왕 올라온 것 다시 걸음을 돌리기도 그렇고, 마침 나른하기도 하여 고소동에서 가보고 싶었던 루프탑 카페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원래 다른 곳을 추천 받았는데, 검색해 본 결과 이 카페의 뷰가 더 맘에 들어서 오르막을 좀 더 탔습니다. 이름도 멋진 낭만카페였습니다.
고소동의 가장 높은 지점 즈음에 위치하는 낭만 카페는 낡고 소박한 동네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세련된 새 건물에다 3층 규모여서 금방 눈에 띕니다. 건물이 높아서 옥상 뷰가 좋겠다며 기대가 되더군요.
카운터는 2층에 있습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깔끔합니다. 개인적으로 모던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너무 '도시스럽긴' 했습니다만.
음료 값도 서울과 비슷한 편으로 다른 곳보다는 조금 비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 좋게도 아침 첫 손님으로 들어선 저는 아인슈패너를 주문했습니다. 여수에서 아인슈패너를 모닝 커피로 마실 줄이야..!
제가 느낀 낭만 카페의 매력은 1,2,3층 그리고 옥상까지 어디 있으나 돌산도와 여수 바다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뷰였습니다. 창이 커서 따로 전등을 켜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환하더군요.
3층도 커다란 창이 중심이지만 2층보다는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 소파를 여러개 놓아 편안히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했습니다. 연인 단위로 여행 온 분들께 좋아 보이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사진은 1층 분위기. 3층의 편안한 분위기와는 조금 다르죠? 층마다 실내 느낌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3층에 짐을 놓고 옥상에 잠시 올라왔습니다. 아침 첫 손님이라 아무도 없는 옥상에 들어서는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요. 마침 날씨도 초여름처럼 따뜻해서 옥상을 한 바퀴 둘러본 후 3층에 있는 짐을 아예 모두 챙겨 올라왔습니다. 옥상 뷰를 내세운 카페답게 옥상 공간 전체에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테이블과 소파를 배치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3층보다는 좀 복작거리겠지만, 그런 게 또 여행의 맛이죠.
한쪽 구석은 사진 찍기 좋게 사각 프레임으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도 마음에 들었고, 저 다음에 오신 분들도 이 자리에 앉아 SNS용 사진들을 찍어 가시더군요. 여수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앉아 있으니 커피보다는 눈 앞 풍경에 정신이 팔려서 커피는 전부 식은 다음에야 마실 수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여수대교와 장군도 그리고 바다. 개인적으로 여수 바다 풍경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도였습니다. 꼭 전망대가 아니더라도 옥상 어디서나 이같은 뷰를 볼 수 있으니 여수를 여행하신다면 커피 한 잔 값에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인슈패너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런 곳에선 맛보다 뷰가 절반이죠.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오후 햇살에 취해서 삼사십분 낮잠을 잤던 그날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