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대부분의 여행은 '사진 중심'이 되었지만, 가끔 사진 욕심 없이 편하고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고플 때가 있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러 훌쩍 떠나거나, 혹은 셔터 누르는 시간마저 아까울 정도로 멋진 사람과 함게 떠나거나.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얼마 전 부산 여행은 긴 원고를 마무리한 뒤 남은 앙금들을 털어내고 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이고 뭐고 팽개치고 쉬고 먹고 즐기고만 싶었지만, 역시 그게 쉽게 되지 않더군요. 어느새 해운대 바닷가에 반쯤 주저 앉아, 해안가 마을 난간에 상체를 힘껏 내밀고 열심히 사진을 찍다보니, 이게 내 즐거움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는 여유를 최대한 즐기고자 작고 가벼운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올림푸스의 가장 작은 OM-D 시리즈 E-M10 Mark III, 그리고 가장 작고 가벼운 렌즈 중 하나인 14-42mm F3.5-5.6 표준줌 렌즈 조합을 챙겼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부산에 머무르며 이 카메라와 렌즈로 담은 사진, 그리고 사용하며 느낀 장단점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여행용 카메라로 여럿을 놓고 고민하시는 분들께 작게나마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가벼운 카메라
- OM-D E-M10 Mark III | 27mm | F7.1 | 1/2500 | ISO 200 -
사진찍는 것을 여행 최고의 낙으로 생각하는 포토그래퍼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여행이 주 목적인 이들에게 커다란 DSLR 카메라와 용도별 렌즈 구성은 자칫 여행을 고행길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평소 카메라, 렌즈 욕심 많던 저도 이번에는 가볍게 여행을 즐기고자 올림푸스 OM-D 시리즈 중 가장 작고 가벼운 E-M10 Mark III를 챙겼고, 렌즈 욕심을 버리고 14-42mm F3.5-5.6 기본 렌즈를 챙겼습니다. 아마 여행/일상용 카메라로 이 제품을 고려하는 분들이 처음 만나게 될, 그리고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될 조합입니다.
이 조합의 장점은 크기가 작아서, 겨울철 점퍼나 코트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스트랩을 카메라에 둘둘 말아 코트 주머니에 넣어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을 만나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습니다. 큰 카메라를 챙겨갈 경우 어깨에 맨 카메라 혹은 장비를 넣은 백팩 때문에 번거로울 때가 많은데, 가방 하나 챙기지 않고 가볍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습니다.
무게 역시 가벼운 편으로 카메라 410g, 렌즈 93g으로 총 500g 정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DSLR인 타사 제품이 카메라 무게만 약 450g이니 크기와 무게 모두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엔트리급 미러리스 카메라를 기준으로 하면 500g의 무게는 가벼운 편이 아닙니다. 올림푸스 OM-D 시리즈는 메탈 소재 채용과 패밀리 룩 등 휴대성보다는 성능과 외형의 완성도에 좀 더 초점을 둔 인상으로 성능과 휴대성을 모두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기획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사용하기에 500g의 무게는 부담 없는 수준이었고, 원할 때 언제든 꺼내 스마트폰보다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휴대성이 이만큼 좋지 않았다면, 카메라 챙기는 것을 포기하고 아이폰 X로 촬영하는 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600만 화소 이미지
- OM-D E-M10 Mark III | 42mm | F5.6 | 1/160 | ISO 200 -
주머니에 언제나 최신 스마트폰이 있음에도 굳이 미러리스 카메라를 챙긴 이유는 역시나 '좀 더 나은 이미지'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면서도 작고 가볍길 바라기 때문에 올림푸스 E-M10 Mark III와 같은 컴팩트 미러리스 카메라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고요. 이미지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카메라를 챙길 가치는 충분합니다. E-M10 Mark III는 160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채용했는데, 해상력과 색 표현, 심도 표현 등 모든 면에서 스마트폰보다 월등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여행을 스마트폰으로 담았다면 SNS에 몇 장 올리고 다시 보지 않을 사진이 됐겠지만, 그래도 '사진기'로 담았기에 두고두고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 1600만 화소 카메라는 이 카메라의 아쉬운 점 중 하나입니다. 2000만 화소 시대가 열린 올림푸스 카메라 시스템에서 한 세대 전의 160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탑재했기 때문에 컴팩트 디자인에 상위 제품에 픽적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던 과거 E-M10 시리즈에 비해 그 장점이 다소 빛이 바랬습니다. 개인적인 여행 기록용으로는 1600만 화소도 충분하지만, 역시나 더 좋은 이미지를 위해 카메라를 챙긴만큼 못내 아쉬웠습니다. 14-42mm F3.5-5.6 렌즈의 성능 역시 PRO 렌즈로 높아진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고요.
전문 사진기의 컬러 표현
- OM-D E-M10 Mark III | 14mm | F4.5 | 1/1600 | ISO 200 -
노을이 내리는 바닷가 마을, 여행 오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게 하는 이 멋진 컬러는 역시나 사진기로 담아야 그 감동의 절반이나마 건질 수 있습니다. 흰여울 문화마을에서 올 겨울 최고의 노을을 감상했는데, E-M10 Mark III와 아이폰 X으로 번갈아 담은 사진들을 보니 카메라를 챙기길 잘했다 싶습니다. 여기에 화상 효과나 컬러 크리에이터, 아트 필터등을 활용하면 좀 더 극적인 효과를 연출할 수 있죠. 뭐 요즘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워낙 다양하고 좋다지만 그래도 이미지 품질에선 큰 차이가 납니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올림푸스 카메라가 표현하는 노을의 색을 좋아합니다.
올림푸스 카메라는 커스텀 컬러 모드가 유독 많은데, 화상 효과/컬러 크리에이터 둘을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후속 제품에 추가된 컬러 크리에이터가 기존 화상 효과를 보완하고 있는 형태인데, 사실 너무 다양한 옵션과 메뉴는 사용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므로 차기 제품에서는 조금 더 직관적이고 유용한 방식으로 간략화하면 좋겠습니다.
다이내믹 레인지(DR)
- OM-D E-M10 Mark III | 14mm | F4 | 1/400 | ISO 200 -
전경과 배경의 노출차가 큰 장면은 눈에 보이는 것처럼 담기가 힘듭니다. 그럴땐 주로 RAW 촬영 후 명/암부 보정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피사체들을 살려내는 편인데, E-M10 Mark III의 경우 명부 표현에선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암부는 기대했던 것만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라이트룸을 이용한 이미지 보정 과정입니다.
원본 이미지에서는 나른하게 누워서 늦은 오후를 즐기는 반려견의 표정을 노을과 함께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암부 복원을 통해 원하는 만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장점 때문에 대부분 RAW 촬영을 고집하는데,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는 이 부분에서 그 한계가 뚜렷한만큼 이것 하나만으로도 여행에서 카메라를 챙겨야 할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이미지 센서의 성능 자체는 고감도 노이즈나 명/암부 복원 능력에서 상위 제품인 E-M1 Mark II, PEN-F와 비교하면 부족함이 체감됩니다. E-M10 Mark III가 PEN-F 수준의 이미지 센서를 탑재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바람 혹은 욕심이겠죠.
야경 촬영
- OM-D E-M10 Mark III | 14mm | F14 | 6.0 | ISO 250 -
흰여울길을 빠져 나가기 전에, 어느새 바닷가에 짙게 깔린 어둠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삼각대는 없었지만, 해변의 난간에 카메라를 놓고 셔터 속도와 조리개 값을 조절해 장노출 이미지를 촬영했습니다. 덕분에 빛이 부족한 야간에도 낮은 감도의 깔끔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E-M10 Mark III는 OM-D 시리즈 중 가장 작고 가벼운, 그리고 저렴한 시리즈이지만 이 정도의 야경 촬영에는 부족함 없는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작고 가벼운 14-42mm F3.5-5.6 표준줌 렌즈 역시 일반 촬영에서는 이미지 품질에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높은 조리개 값의 장노출 촬영에서는 PRO 렌즈 못지 않은 표현을 보였고요.
- OM-D E-M10 Mark III | 17mm | F3.8 | 1/80 | ISO 200 -
- OM-D E-M10 Mark III | 14mm | F16 | 20.0 | ISO 200 -
그 외에도 MF 촬영을 이용한 보케 연출 등 해가 진 후에도 여행을 다양하게 기록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 없이 스마트폰만 있었다면 여행지의 밤은 기억 속에만 간직해야 했을지도 모르죠. 낮에는 긴가민가 했던 카메라의 가치가 해가 지니 확실히 돋보였습니다. '역시 카메라 없는 여행은 상상할 수 없어' 정도 될까요?
빠른 AF의 대응 능력
- OM-D E-M10 Mark III | 42mm | F7.1 | 1/1600 | ISO 200 -
사실 MF 카메라를 주로 사용하는 입장에서 AF의 속도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종종 초점 잡기에 실패해 수동 초점보다 느리고 답답한 AF 카메라를 사용할 때면 그 중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E-M10 Mark III는 엔트리급 미러리스 카메라지만 121개의 AF 포인트가 화면에 넓게 분포돼 AF 속도와 정확성에 신경을 썼는데, 위상차 AF 센서를 적극 배치한 E-M1 Mark II에는 비할 수 없지만 속도 자체는 상당히 기민한 편이라 일반적인 촬영에선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 정확성은 좀 떨어져서 종종 연속으로 반셔터를 동작해도 포커스 아웃이 지속될 때가 있었습니다. 위 이미지는 제 곁으로 날아가는 갈매기를 카메라의 AF에만 의존해 촬영한 것인데, 순간적인 움직임을 잘 담았습니다. 가끔 멍청하긴 해도 이 크기의 카메라에 이 정도면 준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화면 터치로 원하는 지점에 초점을 바로 설정할 수 있는 것, 포인터 크기를 변경할 수 있어 작은 피사체를 담을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 기대하지 않아서인지 E-M10 Mark III의 AF 성능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습니다. 엔트리급 사용자에게는 충분할 것입니다.
여행의 소소한 즐거움 앞에서
- OM-D E-M10 Mark III | 20mm | F4.2 | 1/60 | ISO 1600 -
여행의 즐거움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식입니다. 실내 촬영이 대부분인 음식 사진에서는 높은 ISO 감도에서 얼마나 깔끔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지가 관건인데, 이 기준에서 E-M10 Mark III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위 이미지는 ISO 1600으로 촬영한 이미지로 일반적인 크기로 감상할 때 노이즈가 눈에 띄지 않아 깔끔한 인상을 줍니다.
- OM-D E-M10 Mark III | 30mm | F5.2 | 1/60 | ISO 1600 -
실제로 E-M10 Mark III는 ISO 3200까지는 망설임 없이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위 이미지는 RAW 촬영 후 JPG로 변환한 것으로, 노이즈 감소 프로세스가 적용되는 JPG 촬영에서는 좀 더 매끈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샤프니스에서는 손해를 보게 되므로 취향과 피사체에 맞춰 선택이 가능합니다. 함께 사용한 14-42mm F3.5-5.6 표준줌 렌즈는 크기가 작은 대신 조리개 값이 어두워 실내 촬영에 약점이 있는데, 카메라의 고감도 이미지 품질이 좋아 어려움 없이 음식과 디저트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45mm F1.2 PRO 렌즈
- OM-D E-M10 Mark III | 45mm | F1.2 | 1/80 | ISO 800 -
하나 더, 혹시나 해서 챙겨갔던 45mm F1.2 PRO 렌즈와의 조합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이 작은 카메라와 PRO 렌즈의 조합은 외형적으로는 그리 조화롭지 못하지만 F1.2의 밝은 조리개 값과 PRO 렌즈다운 고화질로 14-42mm F3.5-5.6 렌즈를 사용하며 느꼈던 아쉬움들을 해소해줬습니다. 무엇보다 여행의 장면들을 더 근사하게 담아내는 심도 표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F1.2의 밝은 조리개 값이 갖는 특별함은 14-42mm F3.5-5.6 렌즈를 사용할 때보다 저를 사진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클로즈업을 이용한 주제 부각, 아웃 포커스 촬영 등이 주 내용인데, 그럼에도 가볍게 떠난 이 여행에 어울리지 않는데다, 이 렌즈를 마운트할 경우 코트 주머니에 카메라가 들어가지 않아 주로 숙소와 인근에서만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며 기분을 냈습니다. 45mm F1.2 PRO 렌즈에 대한 소감과 이미지는 차후 포스팅을 통해 추가할 계획입니다.
여행용 카메라의 기본 소양 - 가벼움, 다양함, 그리고 고화질
짧은 여행기간 동안 OM-D E-M10 Mark III로 추억을 기록하며 느낀 여행용 카메라의 소양은 휴대성과 화질 그리고 다양한 시선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여행 그 자체가 방해받지 않도록 작고 가벼울 수록 좋다는 생각을 코트 주머니 속 E-M10 Mark III와 14-42mm F3.5-5.6 렌즈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고, 스마트폰이었다면 포기해야 했을 장면들을 사진으로 담고 또 돌아와서 넘겨보며 '그래도 사진기를 챙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작고 가벼운 14-42mm F3.5-5.6 렌즈는 PRO 렌즈 위주로 사용해 온 제게는 화질에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광각부터 준망원까지 다양한 시선으로 여행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용으로는 오히려 고성능 단렌즈보다 더 매력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사진이 중심인 여행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큰 카메라와 여러 개의 렌즈를 챙겨야겠죠. 하지만 주인공이 여행 그 자체라면 이정도 카메라를 주머니 혹은 가방에 넣어두고 언제 만날지 모를 여행의 기적을 대비하는 것이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E-M10 Mark III는 여행용 카메라로 괜찮은 답안 중 하나입니다. 결과물요?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작품 사진 찍으러 가는 것 아니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