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친절한 라이카 Q를 사용하는 내내 M 특유의 투박함과 불친절을 그리워했으니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라고 하겠습니다. M-P를 통해 오랜만에 다시 M을 사용하고 있는데, 광학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장면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며 렌즈 초점링을 돌려 초점을 잡는 과정이 이만큼 즐거운 행위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사실 M으로의 복귀를 결정하게 한 이유 중 팔할은 이 렌즈, Summilux-M 35mm ASPH. 였습니다. 카메라보다 렌즈를 먼저 구매할 생각일 정도로 35mm 렌즈 중 최고라는 이 렌즈를 열망하고 있었죠. 원래는 블랙 바디에 블랙 렌즈로 구성할 계획이었으나 운 좋게도(?) 실버/오렌지 컬러의 M-P를 사용하고 있고, 렌즈는 실버를 구하지 못해 블랙 렌즈를 사용중입니다. 외형의 아쉬움을 볼때마다 느끼지만, 제가 원하던 조합이라 아직까지는 만족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이카 M Typ240에 대한 뜨거운 소회는 약 이년 전 블로그에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정도로 이 카메라에 대해 모두 이야기할 수 없고, 여전히 저는 이 카메라를 배우는 중이지만 다시 이 카메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마도 몇번의 진한 여행이 더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 제가 요즘 '가장 애정하고 있는' 35mm 렌즈에 대한 첫인상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LEICA SUMMILUX-M 35mm F/1.4 ASPH (FLE)
- 초점거리 35.6mm
- 5군 9매 구성
- 조리개 F1.4 - F16
- 초점거리 0.7m ~ ∞
- 필터 규격 E46
- 스크류 타입 스틸 후드
- 56 x 46 mm
- 320g
35mm 렌즈를 좋아하는 제게 이 렌즈는 언젠가는 와야했던 종착지 그리고 동시에 풀어내야 할 숙제같은 존재입니다. 크기와 무게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의 문제로 이전에는 M Typ240과 Summicron-M 35mm F2 ASPH. 렌즈를 사용했지만, 그 렌즈의 매력에 빠질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이 렌즈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M을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이 렌즈가 아니라면 차라리 Q를 계속 사용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다행히 카메라와 렌즈 모두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LEICA SUMMILUX-M 35mm F1.4 ASPH 렌즈는 라이카 M 렌즈 중 가장 밝은 35mm 렌즈이자 시스템 전체를 대표하는 렌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동일 화각대에 F2의 Summicron, F2.4 혹은 F2.5의 Summarit 렌즈 등이 있지만 역시나 이 렌즈가 성능이 가장 뛰어납니다. 현재 판매 중인 FLE 버전은 국내 분류 기준 5세대로 2010년에 블랙 모델이, 2015년에 실버 모델이 출시됐습니다. 5군 9매의 구성으로 이전 세대 ASPH 렌즈에서 문제가 됐던 포커스 시프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플로팅 엘리먼트(FLE)가 채용돼 편의상 FLE 버전으로 불립니다.
- Summilux-M 35mm F1.4 ASPH 렌즈와 Summicron-M 35mm F2 ASPH 렌즈 비교 -
M 시스템을 대표하는 35mm 렌즈로 이 둘, Summilux와 Summicron 렌즈를 꼽습니다. 이것은 물론 현행 기준으로 올드 렌즈까지 눈을 넓히면 그 선택지가 몇 배는 다양해집니다. 하지만 '디지털엔 현행'이라는 생각으로 저는 M과 M-P에 현행 렌즈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렌즈를 비교하면 간단히 '더 밟은 조리개 값과 그만큼 더 커진 크기와 무게'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사실 두 렌즈는 이미지 성향까지 다른 렌즈라 어느 한쪽의 손을 쉽게 들어주기 어렵다는 평이 많습니다. Summicron이 강한 대비로 많은 이들이 라이카 M 시리즈에 기대하는 인상적인 연출을 가능하게 한다면, Summilux는 부드럽고 맑은 이미지로 좀 더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물론 이것은 그동안 제가 지인들에게 들어온 평가로 앞으로 사용하면서 동의하거나 혹은 '별 차이 없는데?'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죠.
- 두 렌즈의 외형 비교 -
완전히 동일한 카메라는 아니지만 M과 M-P는 껍데기만 다른 사실상 같은 카메라이기 때문에 간접적인 비교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F2의 비교적 밝은 조리개값에 비해 컴팩트한 Summicron 35mm 렌즈는 M 시스템에 뛰어난 기동성을 부가합니다. 사진에는 제법 큰 원형 메탈 후드를 씌웠지만 후드를 빼면 렌즈 높이가 카메라 두께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에 반해 Summilux 35mm 렌즈는 비교적 두꺼운 M-P 카메라에 마운트해도 그 존재감이 확실합니다. 경통의 길이가 렌즈 두께보다 확연히 긴 것은 물론, 후드까지 체결하면 Summicron 렌즈의 간결함이 그리워질 정도로 듬직해지죠. 실물을 보기 전에는 이 렌즈에 대한 기대뿐이었지만 카메라에 마운트하고 직접 그 무게를 들어보니 조리개 값이 조금 어둡더라도 작고 가벼운 F2 렌즈를 사용하는 것이 제 성향에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Summilux 렌즈가 있어도 여전히 Summicron 렌즈가 큰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 렌즈는 체감 무게 차이도 상당한데, Summilux 35mm 렌즈의 무게가 320g, Summicron 35mm 렌즈가 약 250g으로 카메라에 마운트 했을 때 그 차이가 제법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전에 황동 소재로 블랙 렌즈보다 월등히 무거운 실버 컬러의 Summicron 35mm 렌즈를 사용했던 터라 실제 무게는 오히려 전보다 줄었습니다. 실버 렌즈의 무게가 340g이었으니 컬러 하나만 보고 꽤 큰 무게 부담을 감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LEICA SUMMILUX-M 35mm F/1.4 ASPH (FLE) 렌즈의 '첫인상'
- LEICA M-P | 35mm | F5.6 | 1/1000s | ISO 200 -
- LEICA M-P | 35mm | F1.4 | 1/45s | ISO 500 -
좀처럼 사진 찍을 틈이 없는 최근 일상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무더위까지 겹쳐 이 카메라와 렌즈로 촬영한 사진은 몇 장 없지만, 그럼에도 그 몇 장의 이미지를 통해 이전에 사용하던 Summicron 35mm 렌즈와 다른 Summilux 35mm 렌즈의 성향을 발견했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하던 선생님들의 말씀, 그리고 지인들의 이야기대로 현행 Summilux 렌즈는 맑고 부드럽게 장면을 표현했습니다. Summicron 35mm 렌즈로 사용하던 이전 사진들을 넘겨보면 확실히 Summilux 렌즈의 결과물이 뉴트럴한 느낌인데, 그러면서도 샤프니스는 최대개방에서도 대단히 높아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상을 줍니다. 일전에 사용했던 Summilux-M 50mm F1.4 ASPH과 상당히 유사하게 느껴집니다. 여름밤에 찍은 두 번째 이미지는 Summicron이었다면 밤하늘과 섀도우 부분이 더 깊게 표현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LEICA M + Summicron-M 35mm F2 ASPH 로 촬영한 이미지 ]
2년여간 제 여행을 함께했던 라이카 M과 Summicron 35mm 렌즈의 결과물을 돌아보면, 채도와 컨트라스트가 꽤 높은 편이라 해당값은 특별히 많은 보정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록합니다. 특히 붉은색 표현이 진해서 종종 밤거리 조명을 비현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죠. 동일한 환경에서 Summilux 35mm 렌즈는 어떤 결과물을 만들지 상상해보니 이보다는 좀 더 시크한 표정이 떠오릅니다. Summicron 렌즈의 강한 대비가 열정적이라면 Summilux 렌즈의 부드러움은 무심하게 느껴진달까요. 물론 앞으로 촬영을 하며 이 생각은 바뀔 수도 있겠습니다만, 짧은 기간동안 몇 장의 이미지를 통해 얻은 것은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고 담아야겠다는 결론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라이카의 현행 렌즈다운 샤프니스입니다.
위 이미지는 모두 F1.4 최대 개방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이제 막 F1.4 렌즈를 사용하게 됐으니 당분간은 이 밝은 조리개를 충분히 즐겨보려 합니다. 해상력이 가장 떨어지는 최대 개방 촬영이지만 이 렌즈는 그 예상이 무색할 정도로 해상력이 뛰어납니다. M-P의 2400만 화소가 이 렌즈의 성능을 충분히 담아내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만 개방 촬영이니만큼 색수차가 다소 발생하고, 생각보다 꽤 거슬리는데, 이는 F2의 Summicron 렌즈를 사용할 때 신경쓰지 않던 부분이라 앞으로도 촬영하며 유심히 지켜보게 될 것 같습니다.
35mm에서 F2와 F1.4의 연출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나며 뛰어난 샤프니스 덕분에 이미지가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집니다. F1.4라는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 밝은 조리개값의 존재가 촬영과 결과물에 적지않은 이미지를 미치게 될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아래는 짧은 기간동안 M-P와 Summilux-M 35mm F1.4 ASPH 렌즈로 촬영한 이미지입니다. 이미지 성향과 특징을 가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LEICA M-P | 35mm | F8 | 1/750s | ISO 200 -
- LEICA M-P | 35mm | F1.4 | 1/250s | ISO 200 -
- LEICA M-P | 35mm | F1.4 | 1/1500s | ISO 200 -
- LEICA M-P | 35mm | F1.4 | 1/125s | ISO 200 -
- LEICA M-P | 35mm | F2 | 1/30s | ISO 4000 (왼쪽) / LEICA M-P | 35mm | F1.4 | 1/30s | ISO 250 (오른쪽) -
- LEICA M-P | 35mm | F1.4 | 1/30s | ISO 320 -
기대가 매우 컸던 Summilux-M 35mm F1.4 ASPH 렌즈는 Summilux 50mm를 통해 각인된 부드럽고 맑은 이미지, 개방 촬영의 뛰어난 샤프니스를 제가 사랑하는 35mm 프레임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높은 기대를 이미 어느정도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개방 촬영에서의 색수차가 다소 신경쓰이고 작고 편한 Summicron의 존재가 종종 그립긴 하지만 최고의 35mm 렌즈로 담을 앞으로의 여행과 일상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Summicron 35mm와는 이미지 성향이 달라 생각보다 긴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 같네요.
앞으로도 M-P와 단 하나의 35mm 렌즈를 사용하며 종종 개인적인 평을 남겨보겠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여정이니 할 이야기가 많아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