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여행을 앞두고 가장 기대했던 장소는 마리나베이가 아닌 특색있는 싱가포르의 골목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 둘째날 아침, 부기스(Bugis)역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아랍스트리트와 리틀 인디아, 벽화 마을 하지 레인까지 골목 여행을 즐기다 보면 반나절은 가뿐히 지나갑니다. 뜨거운 싱가포르 날씨가 문제였지 정말 걷기만 해도 즐거운 여행이어썽요. 흡사 골목을 따라 국경을 넘는 듯 독특한 경험이 특히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인도 분위기 물씬 나는 리틀 인디아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리틀 인디아는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이 거주지로 싱가포르 속의 작은 인도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사람들의 생김새뿐 아니라 거리 분위기, 건축물, 힌두교 사원과 인도 요리 레스토랑들이 인도에 와있는 느낌을 주고 향신료와 잡화, 민족 의상 등을 판매하는 상점이 줄지어 있습니다. MRT 리틀 인디아 역에서 가까운데, 저는 아랍 스트리트에서 도보로 이동했습니다. 거리가 제법 되긴 하지만 가는 길에 볼거리가 많아서 즐겁게 걷는 여행을 했어요. 차비도 들지 않았을뿐더러, 여권을 꺼낼 필요도 없이 어느새 작은 인도에 들어서는 경험이었습니다.
거리를 걷다보면 영락없이 인도의 거리를 걷는 기분입니다. 제가 인도를 가보지 않아서 이정도 냄새(?)만 나도 여기가 인도구나!하고 오버를 하는지도 모르지만, 조금전까지 명품 매장 즐비한 소머셋 거리를 걷던 터라 그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느껴집니다. 이 거리는 마리나 베이나 싱가포르 중심지처럼 깔끔하지 않고 건물의 형태와 색도 완전히 다릅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생김새도 그렇고요.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이 전체의 약 9%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그들이 이 지역을 완전히 고향처럼 만들어놓은 것이 재미있습니다. 어느 나라에나 있다는 차이나타운을 볼 때와는 그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좀더 이국적인 향이 강했습니다.
리틀 인디아 거리를 처음 들어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색채와 뜨거운 분위기가 제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멋져서 이후부터 저는 뭔가에 홀린듯 이 거리를 탐닉하며 이 여행 중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리틀 인디아는 과감한 색채와 사람들의 에너지가 대단한 곳이었습니다. 아마 거리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곳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실 것 같아요. 이곳이 인도와 같지는 않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포토제닉한 민족이라고 치켜세운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거리 풍경이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리틀 인디아의 거리 풍경에서 받은 감동이 없었다면 제가 싱가포르를 '골목 여행'에 비유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 골목에는 이렇게 벽을 가득 채운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역시 색을 사용하는 그들의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틀 인디아는 인디아계 싱가포르인들의 거주지면서 동시에 무스타파센터 쇼핑몰을 중심으로 한 유명 쇼핑/관광스팟인데, 이런 벽화와 거리의 소품들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MRT로 몇정거장만 가면 그 화려한 마리나 베이가 있다니, 쉽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뜨거운 오후 햇살을 피하는 이 작은 공원은 나무에 우산을 매달아 그늘을 만든 모습이 예술 작품처럼 멋지더군요. 다양한 색 혹은 같은 톤 색의 우산을 매단 그들의 색에 대한 센스를 이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두 시가 갓 지난,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이었는데 사람들이 이 우산 아래서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낮잠을 청하고 있더군요.
리틀 인디아의 랜드마크 스리 비라마칼리아만 사원 & 스리 스리니바사 페루말 사원
아랍 스트리트의 중심에 아랍 사원 술탄 모스크가 있듯, 리틀 인디아에는 두 개의 힌두교 사원이 있습니다. 힌두교의 신들이 지붕에 앉아있는 이국적인 형상으로 조각상들이 화려해서 직접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내부는 실제 힌두교 신자들이 기도를 하는 공간이라 입장에 제한이 있고 안에선 정숙해야 합니다.
아직 인도에 가본 적 없는 제게는 이 사원의 형태가 대단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신의 모양을 빚은 조각상을 하나하나 보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아서 한번에 훑어 보고 포기했지만, 술탄 모스크와는 완전히 다른 사원이 머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것이 싱가포르니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더군요.
리틀 인디아의 풍경을 이야기할때 '사람'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인도는 인물 촬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촬영지이기도 하고요. 거리 위 사람들의 표정이나 벽에 기대있는 포즈, 무리를 지어 앉아있는 모습들을 보면 이 사람들은 포토제닉한 능력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표정도 표정이거니와 강렬한 색의 건물과 옷과 대비돼 그 인상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사진으로도 잘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리틀 인디아에서 가장 많이 본 상점 중 하나는 '휴대폰 상점'이었습니다. IT 최강국 중 하나인 인도의 피는 싱가포르로 거주지를 옮긴 이들에게도 여전히 이어진건지 최신 스마트폰에는 어김없이 남성들이 가득 모여있었고, 너나할것없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거나 환담을 즐기는데, 하나같이 발을 테이블 안쪽으로 접어 발바닥을 보이는 것이 재미있더군요. 리틀 인디아는 여러모로 싱가포르에서 가장 특별하고 이색적인 풍경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리 풍경에 취해 점심 먹는 것도 잊었던 오후, 곧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어둑해진 후에야 정신이 들어 주린 배를 달랠 것을 찾습니다. 그나마도 더위에 지쳐 인도 음식이 아닌 2.5달러짜리 코코넛 하나로 갈증이나 달래는 것에 그쳤지만요. 리틀 인디아에서 제가 한거라곤 거리의 색과 멋을 만끽하며 제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은 것뿐이지만 그것이 이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남았습니다. 반나절만에 몇 개 도시를 오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싱가포르 골목 여행은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정말 추천하는 코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