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창 밖으로 확인한 아침, 트램에서 내려 둘러보는 오후 그리고 식사를 마친 저녁. 낯선 도시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저를 감동시키지만 유독 겹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딜 여행하건 제가 있는 곳에는 꼭 비가 와요. :( 일 년에 흐린 날이 오일 남짓 된다는 항구 도시에서도 제가 도착한 날 비가 내렸고, 꽁꽁 언 모스크바의 겨울 풍경도 제가 다가서니 눈이 녹아 비가 되더군요. 그래서 제 지인들은 저와 여행하는 걸 꺼리기 시작했습니다. 숨겨야 할 것을 참지 못하고 말한 제 입이 방정이죠.
2016년 PEN-F 출시 이후 여행 때마다 거의 함께하고 있습니다. 작은 크기와 디자인,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12mm, 17mm 렌즈와의 조화까지. 여행용 가벼운 카메라로 이만한 것이 없다며 잘 쓰고 있는데, 여행 중 PEN-F가 야속해지는 순간이 몇 있다면 첫번째는 멋진 장면을 아쉽게도 Full HD 동영상으로밖에 담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어김없이 비가 오는 제 여행에서 PEN-F는 완전히 안심할 수 없는 카메라라는 것입니다.
지난 대만 여행에선 일주일 내내 비가 왔습니다. 돌아오기 전 여행 마지막 날 딱 하루 참았던 햇살을 몽땅 뿜어내는데 지나고나니 마지막이 좋아 다 좋았다고 하지만 여행중엔 종종 울적해했던 기억입니다. 평소 비를 좋아하지만 태양없이 사는 것이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죠. 2월을 보내는 대만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단수이는 지하철 입구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우중충한 것이 워런마터우행을 아예 포기하게 만들었고 기대했던 지우펀과 예류 지질공원 역시 비에 가려 희미하게만 남아 있습니다. 지우펀에서는 여차하면 1박을 묵고 일출 풍경까지 담아 오겠다며 삼각대 쥔 손에 힘을 잔뜩 줬지만, 아침 열시부터 약 열한 시간가량 머무는 동안 잠시도 비가 그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결국 허탈한 웃음을 지어야 했습니다. 후에 들으니 화창한 날씨 아래 지우펀을 보는 것이 제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더군요. 마침 지우펀에 간 날 비가 가장 많이 왔는데, 그래서 아쉽게도 PEN-F에 떨어진 물을 닦아내랴, 이동할 때 품에 안고 비 안맞게 간수하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입니다.
내내 빗속에 갇혀(?) 있었던 대만 여행을 통해 '여행용 카메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행 카메라를 고르는 조건은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 그리고 들고 다닐때 흐뭇한 디자인 정도였는데 거기에 '방적'설계가 추가된 것이죠. 비를 몰고 다니는 제 여행이기에 무척 중요한 요소입니다. PEN-F는 아쉽게도 방진방적 설계를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OM-D 시리즈 카메라들은 경쟁사보다 방진방수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올림푸스와의 첫 인연이었던 E-M5 Mark II를 통해 일찍이 이를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벌써 출시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올림푸스 카메라를 추천할 때 선택지 안에 들어갈 정도로 E-M5 Mark II는 화질과 성능 그리고 현재는 가격의 균형까지 좋은 카메라입니다. 프라하 여행을 E-M5 Mark II로 담았는데 출발전 담당자분이 자신있게 던진 '비 오는 날에 한 번 찍어보세요'라는 말을 실제로 증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 때문에 고장이 나면 책임을 진다기에 저만 우비를 입고 비오는 프라하를 활보했던 기억입니다.
프라하의 봄은 그 자체로 어구가 될 정도로 아름다움이 정평이 나 있지만 그 눈부신 화려한만큼 무척 섬세해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경우가 많다더군요. 제가 봄의 프라하에 머물던 4월에도 하루에 한 번씩은 길고 짧은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조금 전까지 이렇게 그림처럼 화창하다가도,
갑자기 이렇게 와락 하고 소나기가 쏟아지곤 했죠. 그럼 우선 몸을 피하기 마련이고, 몸에 지닌 물건 중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해 껴안거나 가방에 넣기 마련인데, 이 여행에서는 '방진방적'이라는 말을 믿고 비가 오는 장면을 혹은 그 속을 걸으며 사진과 영상을 담았습니다. 물론 같은 방진방수 설계가 적용된 12-40mm F2.8 PRO 렌즈를 함께 사용했습니다.
< 비 오던 날의 프라하 풍경 >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부터 공항으로 출발한 늦은 오후까지 쉬지않고 비가 내렸습니다. 아름다운 중세유럽 건물들이 색을 잃어 바라보는 저까지 어딘가 울적해질 정도로 무거운 날이었는데, 그럼에도 다녀와서 한동안 이 짧은 오후를 많이 떠올리고 그리워했습니다. 마지막 장면들이라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앞선 나흘간 프라하의 봄을 아낌없이 보여준 도시가 마지막으로 우는 듯 뿌린 빗 속의 장면이 생각보다 꽤나 운치있고 그럴듯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행의 베스트 씬을 꼽을 때 어김없이 이 오후의 사진이 두어장은 빠지지 않고 들어갑니다.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고, 여행의 불운이라고만 생각했던 '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됐죠.
- 이 날 함께해준 @엄지 씨와의 추억이 참 짙게 남아 있습니다. -
빗속의 올림푸스 카메라
- OM-D E-M1 -
그래서 얼마전 싱가포르와 일본 여행을 앞두고 카메라를 선택하며 다른때와 달리 '비'를 고려해보게 됐습니다. 다행히 일본은 비 걱정이 덜했지만 싱가포르는 매일 비가 내리는 시기였던지라 방진방수 성능이 매우 중요했거든요. 현재 올림푸스 카메라 중 방진방수 설계가 적용된 카메라는 E-M1과 E-M5 Mark II 그리고 최신작 E-M1 Mark II 등이 있습니다. 물론 출시 시기나 성능 그리고 가격을 보았을 때 E-M1 Mark II가 최상의 선택이 되겠죠.
- OM-D E-M1 Mark II (왼쪽), OM-D E-M5 Mark II (오른쪽) -
그래서 항상 함께하던 PEN-F 대신 E-M1 Mark II와 싱가포르 여행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비가 왔습니다. 예상대로 매일 왔습니다. 그 덕에 올림푸스 카메라의 방적 성능을 제대로 테스트해볼 수 있었습니다.
E-M1 Mark II는 올림푸스의 미러리스 카메라 중 가장 좋고 동시에 큰 카메라입니다. 그래서 되도록 구성을 간결하게 하기 위해 올인원 줌렌즈 12-100mm F4 IS PRO 렌즈 하나만을 챙겼습니다. 이 렌즈 역시 방진방수 설계가 적용돼 있어 E-M1 Mark II와 조합하면 화질, 성능, 내구성 모든 면에서 여행에 최적화된 조합이 됩니다. 최근 여행 붐이 일고 있는데, 이름이 알려지고 실사용자들의 평이 나오면 지금보다 그 가치를 더 인정받을 세트가 될 것입니다.
싱가포르에 머무는 동안 늦은 오후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하늘이 오분도 되지 않는 찰나에 표정을 싹 바꾸더니 제법 거센 소나기를 뿌려댔죠. 이곳 사람들은 익숙한지 적당한 곳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어차피 한 두 시간 후면 그칠 비니까요.
팔라완 해변의 아시아 최남단 전망대에 있는 동안에 내린 스콜은 '이거 밤까지 안 그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만큼 강하게 쏟아졌습니다. 나무로 된 큰 전망대 지붕이 소용없을 정도로 거센 바람과 함께 파고들어와서 옷이며 카메라가 순식간에 흠뻑 젖었습니다. 문득 대만에서 PEN-F에 묻은 물을 닦던 생각이 났습니다.
늦은 오후에 어김없이 비를 만났고, 처음엔 습관처럼 비를 피했지만 매일 조금씩 그 빗속으로 들어가 잠시 무더위가 식는 그 순간의 표정들을 담았습니다. 사람들은 비를 그리 싫어하지 않아 보였거든요. 아침부터 삼십 도가 넘는 무더운 도시에서 늦은 오후마다 내리는 비는 어찌보면 오늘 하루를 뜨겁게 보낸 사람들에게 여유를 가져다 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비를 맞고 뛰어가는 사람들 표정이 밝아 보이기도 했고요.
프라하에 이어 싱가포르에서도 비 오는 날, 빗속 풍경에서 찍은 장면들이 여럿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대만만큼은 아니었지만 비가 무척 많이 왔던 싱가포르, 앞으로 여행 카메라를 고를때 날씨도 신경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EN-F는 무척 가볍고 세련된 카메라지만 싱가포르였다면 이만큼 다양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칠것 같지 않던 세찬 비도 결국 멎고, 언제 그랬냐는듯 아름다운 노을이 펼쳐지곤 합니다. 이런 게 여행이죠. 한바탕 비가 쏟아졌기에 이 장면이 더 소중하고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면에서 이 모든 장면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카메라의 방진방적 성능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진가들, 혹은 사진을 좋아하는 여행가들에게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겠습니다. 습도와 수분에 대한 내구성을 일부러 체크하지 않았던 저도 이제 여행전 날씨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카메라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가장 좋겠다고도 하지만, 비 오는 날의 여행도 좋습니다. 어쩌면 보통날과 다른 그 특별함이 화창한 날보다 더 좋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을 담을 카메라가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게 꼭 E-M1 Mark II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