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제게 카메라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첩과 볼펜이야 대강 글씨만 써지면 영수증 뒷면던 호텔에 비치된 볼펜이던 상관이 없지만 사진을 기록하는 카메라야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행을 앞두고 항상 어떤 카메라를 가져갈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데, 대부분 최신 카메라를 가져가려 하지만 최신 카메라가 무조건 좋지는 않기 때문에 이것저것 비교해 보게 됩니다. 모르긴 몰라도 여행 숫자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은 수의 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물론 이 카메라에 대한 고민은 대부분 해진 후, 그러니까 빛이 부족한 어둠 속에서의 기록을 좀 더 선명하고 깔끔하게 남기기 위한 고민이 많습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접근 방법을 선택하는데 좀 더 밝은 조리개값의 렌즈를 선택하거나 높은 ISO에서 노이즈가 적은 카메라 혹은 손떨림 보정 장치로 더 낮은 감도를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를 선택합니다. 앞으로도 이 고민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위 사진들처럼 햇살 충분한 날이야 어떤 카메라를 가져가도, 아니 최신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블로그용 혹은 작은 책자용 사진으로 사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밤이 짧고 낮이 긴 백야의 도시에 여행 간다면 카메라 고민이 절반은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 여행 중에서는 낮보다 밤이 훨씬 긴 도시, 그리고 내내 날이 흐리고 비가 내려 낮에도 어둑어둑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여행 그리고 일상을 기록할 카메라를 고르며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 오늘은 제가 사용중인 올림푸스 PEN-F의 '어둠 앞에서의 능력'을 테스트, 평가해보려 합니다. 어둠 앞에서 유독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마이크로 포서드 포맷의 최신 카메라인만큼 다른 카메라보다 이 고감도 이미지 품질 평가가 좀 더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떨 때는 참 괜찮은데, 역시 힘들 때가 많아"
PEN-F로 여행의 어둠을 담다보면 드는 생각입니다. 어떨 때는 '아, 최신 카메라가 이래서 좋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한 고감도 이미지를 안겨주는가 하면, 몇몇 상황에서는 여지없이 아쉬운 결과를 보이거든요. PEN-F는 지난해 출시했지만 올림푸스 카메라 중에서는 E-M1 Mark II 다음가는, 여전히 상위 라인업입니다. 위 사진은 실내, 야간 등 다양한 환경에서 촬영한 고감도의 이미지로 대부분 ISO 1600 이상의 고감도, 더러는 ISO 12800의 매우 높은 감도로 촬영됐습니다. 어떤 것은 매우 깔끔한가 하면 맨 아래 사진은 일부러 그레인 효과를 준듯 노이즈가 눈에 띄죠.
저감도 이미지에 후보정으로 노이즈 효과를 넣을 수는 있지만 높은 감도로 촬영된 이미지를 깔끔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멋진 밤의 장면을 담은 옛 여행 사진을 보면 아쉬움이 들곤 하죠. 좀 더 좋은 카메라로, 요즘 카메라로 담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고요. 저도 불과 2년 전 사진만 봐도 그런 아쉬움이 듭니다.
그래서 여건이 허락된다면 삼각대를 사용하려 합니다. 다만 짐이 너무 무거운 것은 여행을 즐기는 데 방해가 돼 미니 삼각대를 들고 가급적 낮은 감도를 사용하려고 하죠.
혹은 여러 카메라를 챙겨 마음에 드는 장면을 모두 찍은 후 개중에 가장 나은 것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여행 중 서너 대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기도 합니다.
PEN-F를 사용하며 이 카메라의 고감도 이미지는 어느 정도 성능인지, 얼마만큼 여행지의 밤에 힘을 발휘할지 궁금해졌습니다. 실제로 여행 중 촬영한 PEN-F의 고감도 이미지는 '최신 카메라'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좋기도 했고, 아직 고개를 갸우뚱하게도 했으니까요.
아래는 열악한 여행지의 환경에서 얻은 소중한 이미지입니다. ISO 8000 이상의 고감도를 사용했는데, 이전에 사용하던 카메라였다면 아마 촬영 자체가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 ISO 8000 촬영 이미지-
- 확대 -
- ISO 12800 촬영 이미지-
- 확대 -
- ISO 25600 촬영 이미지-
- 확대 -
의외로 ISO 8000 이상의 고감도에서도 노이즈가 심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노이즈 입자 자체는 꽤 거칠지만 샤프니스가 살아있고 윤곽선 표현이 흐트러지지 않아 작게 줄였을 때 깨끗하게 느껴집니다. ISO 12800에서의 결과 역시 마찬가지며 최고 감도인 ISO 25600 역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다만 고감도로 갈수록 광량의 영향에 따라 결과물의 품질이 천차만별인데, 빛이 부족한 환경에서 노출을 낮춰 찍는 이미지보다는 감도가 더 높더라도 과다 노출로 촬영해 후보정으로 노출을 잡는 편이 컬러 노이즈와 WB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PEN-F의 ISO 감도별 화질을 E-M1 Mark II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 ISO 감도별 노이즈 비교 >
OM-D E-M1 Mark II (왼쪽) || PEN-F (오른쪽)
- ISO 64(E-M1 Mark II) | ISO 100 -
- ISO 200 -
- ISO 400 -
- ISO 800 -
- ISO 1600 -
- ISO 3200 -
- ISO6400 -
- ISO 12800 -
- ISO 25600 -
완전히 동일한 환경에서 촬영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비교는 되지 못하지만 두 카메라의 이미지 처리 방식 차이에서 오는 서로다른 결과물의 성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E-M1 Mark II의 경우 컬러 노이즈와 거친 입자 표현을 줄이기 위해 디테일을 매끈하게 뭉개는 듯한 소프트웨어 처리가 상대적으로 눈에 띕니다. 반면 PEN-F의 이미지는 노이즈는 상대적으로 많지만 샤프니스가 유지돼 있습니다. 노이즈 자체로는 E-M1 Mark II의 손을 들어줄 수 있겠지만 성향에 따라 디테일한 표현에서 이점이 있는 PEN-F의 결과물을 더 좋아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PEN-F와 E-M1 Mark II를 사용하며 둘 중 하위 기종임에도 PEN-F의 이미지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그것이 멋진 디자인뿐 아니라 이런 이미지 처리 방식, 거기에서 오는 표현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JPG(왼쪽) | RAW(오른쪽) -
또 한가지, JPG와 RAW 촬영에도 노이즈 패턴에 차이가 있습니다. 센서의 출력물 그대로인 RAW 촬영은 ISO 25600에 해당하는 노이즈가 여과없이 보이는 반면, 이미지 처리를 거친 JPG 이미지는 노이즈를 줄이면서 윤곽선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두 이미지 중 노이즈의 양은 왼쪽이 적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RAW 이미지가 더 마음에 듭니다.
몇가지 간단 테스트와 비교를 통해 PEN-F로 고감도 촬영을 하기 위한 몇 가지 팁을 알게 됐습니다. 노이즈 자체를 줄이기 위해서는 RAW 이미지보다는 이미지 처리를 거친 JPG 이미지가 유리하며, 깨끗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낮은 감도를 설정하고 노출을 언더로 촬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더 높은 감도의 오버 노출 촬영이 후보정에서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PEN-F의 고감도 이미지가 샤프니스 중심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E-M1 Mark II보다 다소 거칠게 느껴진다는 것까지. 개인적으로 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E-M1 Mark II와 PEN-F 중 어느 카메라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제 성향과 촬영 패턴을 생각했을 때 PEN-F가 더 좋은 선택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아무래도 4K 동영상은 아쉽겠지만 말이죠.
앞으로 카메라는 더 발전할테니 몇년 후면이면 이 비교도 큰 의미없는 '구식'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 역시 사진 그리고 여행을 즐기는 과정이니 마냥 답답하지만은 않은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