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푸스 PEN-F를 약 두 달간 사용하는 동안 대부분의 촬영은 17mm 단렌즈 하나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날 때는 12mm 광각 렌즈 하나를 더 챙기지만 그 외에는 마치 렌즈 일체형 카메라처럼 17mm 렌즈가 꼭 붙어있죠. 원체도 좋아하는 렌즈지만 PEN-F와의 조합은 다른 카메라보다 좀 더 특별한 느낌입니다. 금속 소재와 중후한 블랙 색상, 그리고 크기의 조화에서 오는 외형의 아름다움이 그렇고, 모든 촬영에 활용할 수 있는 편안한 프레임과 F1.8의 밝은 조리개 활용도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PEN-F보다 훨씬 먼저 태어났지만 사용하다보면 마치 오래전부터 PEN-F를 위해 기획되고 만들어져 이 때를 기다린 것만 같은 이 렌즈에 대해 간단히 평가하려고 합니다.
올림푸스 M.ZUIKO DIGITAL 17mm F1.8
- 초점거리 : 17mm (35mm 환산 약 34mm)
- 구성 : 6군 9매 (DAS 렌즈 2매, 비구면렌즈 2매, HR 렌즈 1매)
- 조리개 : F1.8 ~ F22
- 화각 : 65도
- 최소 초점거리 : 25 cm
- 최대 촬영 배율 : 0.08배 (35mm 환산 0.16배)
- 조리개 매수 : 7매 (원형)
- 필터 구경 : 46mm
- 57.5 x 35.5 mm
- 120 g
F1.8의 밝은 개방 조리개 값을 가지면서 총 길이가 35.5mm, 무게는 120g에 불과한 이 렌즈는 마이크로 포서드 시스템이 갖는 '경박단소'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렌즈 중 하나입니다. 숫자로 설명된 사양 외에도 올림푸스의 M.ZUIKO 프리미엄 렌즈군으로서 일반 렌즈보다 광학, 촬영 성능에서 높은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PEN-F의 렌즈킷으로 구성돼 그 유명세가 전보다 높아졌지만 기존에도 PEN 시리즈와 가장 잘 어울리는 렌즈로 선호도가 무척 높았습니다. 성능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가성비'렌즈로 꼽히기도 합니다. 저 역시 12mm F2.0 렌즈와 함께 PEN-F와 가장 잘 어울리는 렌즈로 꼽고 있습니다.
- 철제 후드를 결합한 블랙/실버 렌즈 -
렌즈는 작고 가볍지만 손으로 쥐고 초점링을 돌리거나 뒤로 당겨 포커스 클러치 동작을 해보면 M.ZUIKO 프리미엄 렌즈군다운 완성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최상위 렌즈인 PRO 렌즈군에 있는 방진방습 설계는 제외됐는데, 그것마저 PEN-F와 어울립니다. 별매인 철제 후드 역시 일체감이 좋아서 결합하면 그 후드 가격만치 더 비싼 렌즈같아 보입니다. 최대한 컴팩트하게 장비를 구성하려는 저는 후드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이크로 포서드 그리고 올림푸스의 스탠더드
- 마이크로 포서드의 첫 번째 17mm 렌즈는 인기가 별로 없었죠 -
M.ZUIKO DIGITAL 17mm F1.8 렌즈는 올림푸스의 두 번째 17mm 렌즈입니다. 기존 17mm 렌즈인 M.ZUIKO DIGITAL 17mm F2.8 렌즈는 첫 번째 PEN 시리즈 E-P1과 함께 발매된 렌즈로 스타일과 휴대성에 초점을 둔 렌즈였습니다. 당시로서는 놀랍도록 작은 크기, 가벼운 무게의 단렌즈로 그리고 PEN 시리즈의 기본 렌즈로 사랑을 받았지만 F2.8의 어두운 조리개 값과 아쉬운 화질 때문에 사용자의 만족도는 높지 않았습니다. 만약 상위 시리즈인 M.ZUIKO DIGITAL 17mm F1.8가 나오지 않았다면, 나왔더라도 이 정도 완성도가 아니었다면 마이크로 포서드 시스템이 이만큼 성장했을지 의문일 정도로 이 렌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35mm 환산 약 34mm의 이 초점거리는 50mm와 함께 가장 선호도가 높으니까요.
PEN-F를 위한 단 하나의 렌즈
현재 PEN-F와 12mm, 17mm 단렌즈 두 개를 사용하고 있지만 둘 중 하나만 사용해야 한다면 단연 17mm 렌즈 하나만을 남길 것입니다. 35mm 환산 34mm의 초점거리, 65도의 화각이 갖는 매력은 다른 렌즈가 쉽게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쉬운대로 풍경, 그런대로 인물 그리고 아주아주 만족스러운 스냅 촬영까지. 하나의 렌즈로 모든 장면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있고 포토그래퍼의 능력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보이는 렌즈입니다. 무엇보다 외형에서도 PEN-F와 가장 잘 어울립니다.
One for All, 17mm
많은 짐을 꺼낼 수 없는 비행기 안에서는 주로 PEN-F와 17mm 렌즈를 무릎 위에 놓았다가 창 밖에 펼쳐진 멋진 하늘을 담습니다. 17mm 초점거리는 풍경 촬영에 최적화 된 렌즈는 아니지만 장면과의 거리가 확보된다면 눈에 보이는 멋진 풍경을 담백하게 담아내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12mm 렌즈가 풍경에 무척 좋지만 17mm 렌즈보다 스냅, 인물, 정물 등 여타 다른 장르에서 전반적으로 열세가 뚜렷한 것을 생각하면 17mm 렌즈가 확실히 좀 더 범용입니다.
광각 렌즈보다 눈에 보이는 장면 그대로에 가깝기 때문에 눈에 띈 주제를 좀 더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프레임을 구성하기에도 좀 더 좋고요. 단순히 '넓고 광활하게'만 찍는 것이 풍경 사진이라고 생각한다면 17mm는 답답한 렌즈지만 '풍경 사진의 구성'이란 점에서는 충분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사진첩에는 PEN-F와 M.ZUIKO DIGITAL 17mm F1.8 렌즈로 촬영한 풍경 사진 역시 12mm 렌즈 결과물 못지 않게 많습니다.
풍경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 중 확실한 주제들이 튀어 나오는 동적인 장면에선 17mm 렌즈가 큰 힘을 발휘합니다. 12mm보다 덜 산만하고, 25mm 보다 덜 답답한 17mm만의 시선이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순간입니다. 여행지의 풍경 사진을 제외한 모든 장면을 이 17mm 렌즈 하나로 촬영하는 이유입니다. 스트릿 스냅 촬영을 즐기는 제게는 이 렌즈가 장면과 가장 적당한 거리를 확보해 줍니다. 제가 발견한 주제를 표현하기에도 유리하고요. 만약 클로즈업 촬영이 필요하다면 가까이 다가가면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사진적 언어 F1.8
F1.8은 이 렌즈의 '17mm 프레임'과 함께 가장 중요한 화두입니다. 조리개로 빛을 제어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느낌으로 장면을 연출하는 사진적 언어가 아니라면 요즘 부쩍 좋아진 스마트폰 카메라를 두고 이 카메라를 번거롭게 챙길 이유가 절반쯤 줄어드니까요. M.ZUIKO DIGITAL 17mm F1.8의 F1.8 최대 조리개 값은 사용자에 따라 이 렌즈의 최대 장점 혹은 최악의 단점이 되는 요소입니다. 작고 가벼운 렌즈의 휴대성에 중점을 둔다면 F1.8의 아웃포커스 효과는 기대 이상일 것이고, 컴팩트 카메라나 스마트폰 카메라와 차별화되는 이 배경 흐림에 가장 큰 중점을 둔다면 쉬 극복되지 않는 한계일 것입니다.
F1.8의 밝은 조리개 값으로 갖는 이득이 몇 있지만, 가장 먼저 그리고 쉽게 다가오는 장점은 역시 개방 촬영의 아웃 포커스 효과입니다. 가벼운 일상의 장면을 촬영을 할 때, PEN-F는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촬영할 수 있으면서, F1.8에서 충분한 심도 연출이 가능합니다. 이 조합으로 가장 많이 촬영하는 것 역시 이런 종류의 사진들입니다. 25mm F1.2 PRO 렌즈를 사용하면 아웃포커스 효과 자체는 더 커질지 몰라도, 이것은 PEN-F의 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PEN-F와 M.ZUIKO DIGITAL 17mm F1.8 렌즈의 최대 개방 촬영은 배경 흐림 자체에 주목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지만, 심도 표현과 피사체의 선예도의 대비로 표현하는 사진적 연출에선 그 기본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경쟁 포맷에 비해 작은 마이크로 포서드의 이미지 센서 크기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 '아웃포커스' 하나만 제외하면 컴팩트한 시스템 구성, 상대적으로 뛰어난 주변부 화질 등 장점도 제법 뚜렷하기에 개인적으로는 촬영 목적과 성향의 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경쟁 상대인 APS-C 포맷의 DSLR 카메라와 PEN-F의 아웃 포커스 효과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APS-C 포맷 카메라에는 환산 화각이 비슷한 24mm F2.8 단렌즈를 마운트해서 촬영했습니다.
- F1.8 -
- F2.0 -
- F2.8 -
- F4 -
- F5.6 -
- F8 -
비슷한 환산 초점거리를 갖는 두 렌즈로 같은 프레임을 구성해서 심도 표현을 비교하니 그 차이를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센서 크기가 큰 APS-C 규격 DSLR 카메라가 역시 배경흐림 정도가 더 크지만 그 갭이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PEN-F와 17mm F1.8렌즈 조합의 F2.0 촬영 결과물이 APS-C 카메라, 24mm F2.8 렌즈의 F2.8 렌즈와 육안으로 비슷해 보입니다. 약 한 스톱 내외의 심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때문에 전체 시스템의 부피가 작은 마이크로 포서드가 갖는 장점이 분명합니다. 약 한 스톱 가량의 심도 표현 차이를 감수하면 상대적으로 더 작고, 가벼운 카메라를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밝은 조리개값이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장점은 빛을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대표적인 PRO 렌즈인 12-40mm F2.8 PRO 렌즈보다 밝은 F1.8의 조리개 값은 빛이 부족한 환경에서 좀 더 나은 결과물을 안겨줍니다. 구형 카메라에 비해 고감도 이미지 품질이 향상된 최신 카메라에서는 그 효과가 더욱 부각됩니다. 물론 이보다 더 밝은 F1.2 렌즈가 더 나은 결과물을 안겨주겠지만 밝은 조리개값을 구현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렌즈의 크기와 구경 자체가 증가하기 때문에 M.ZUIKO DIGITAL 17mm F1.8 렌즈의 크기와 F1.8 조리개 값은 아주 적당한 타협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렌즈의 F1.8 그리고 PEN-F의 5축 손떨림 보정 둘이 없었다면 촬영 자체가 힘들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제법 만나곤 했습니다.
놀라움이 되는 거리 25cm
M.ZUIKO DIGITAL 17mm F1.8 렌즈의 최단 촬영 거리는 25cm로 다른 렌즈보다 특별히 뛰어나지 않지만 일상의 장면들을 다가가서 찍기에는 그리 부족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촬영하다 보면 대부분의 장면에서 원하는 만큼 충분히 다가갈 수 있는 성능입니다. 이 렌즈를 일상용 전천후 렌즈로 사용하고 있는 저는 특히 음식 촬영에서 이 최단 촬영거리의 장점을 톡톡히 누리고 있습니다. 12mm 광각 렌즈도 상당한 근접 촬영 성능을 보이지만 광각 특성상 배경 정리가 17mm 렌즈쪽이 월등히 유리합니다. 아웃포커스 효과 역시 좋고요.
눈에 보이는 것보다 조금 더 넓은 화각 덕분에 음식을 테이블 위에서 직선으로 내려 찍기에도 적합합니다. 팔을 조금 위로 뻗어 담기에 딱 좋은 화각이죠. 만약 테이블 가득 진수성찬이 차려져 한 번에 담기 어렵다면 팔을 조금 더 뻗고 LCD를 회전시키면 한결 더 넓게 담을 수도 있습니다. 원하는 촬영 거리를 자유 자재로 선택할 수 있는 장점에 왜곡없이 반듯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PEN-F의 음식 사진용 렌즈에 이보다 더 좋은 렌즈가 없습니다.
PEN-F의 시작과 끝에 M.ZUIKO DIGITAL 17mm F1.8
처음 PEN-F의 상자를 열던 그 날 가장 먼저 사진을 찍게 해 준 렌즈, 탁월한 외형의 조화 때문에 쉽게 빼지 못하고 제짝처럼 붙어있는 렌즈. M.ZUIKO DIGITAL 17mm F1.8 렌즈는 특별한 몇몇 순간을 제외하면 앞으로도 PEN-F와 늘 함께하며 일상과 여행의 장면들을 담아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 중후한 디자인이 PEN-F와 제짝처럼 잘 어울리면서도 화질과 심도 표현, 활용의 폭에서 35mm 단렌즈의 기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제품입니다. 올림푸스의 마이크로 포서드 카메라를 사용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사용해보면 좋을 렌즈입니다.
- 어쩌면 조만간 세 번째 17mm 렌즈가 나온다고 하죠? -
아직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25mm F1.2 PRO 렌즈의 17mm 버전이 선보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 M.ZUIKO DIGITAL 17mm F1.8 렌즈는 최고의 17mm 렌즈의 자리에서 내려올지도 모르지만 PEN-F 그리고 다음 PEN 시리즈 사용자에게는 크고 무거운 17mm F1.2 렌즈보다 17mm F1.8 렌즈가 변함없이 매력적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M.ZUIKO DIGITAL 17mm F1.8 렌즈를 올림푸스 마이크로 포서드 시스템을 대표하는 렌즈 중 하나로 꼽습니다. 휴대성과 화질, 성능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 사용할 수록 마음에 듭니다.
다음 기회에는 이 렌즈를 좀 더 깊고 진하게 사용해보고 화질과 이 렌즈만의 가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