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오키나와 여행의 마지막 밤은 마치 도착하자마자 찾아온 듯 빨랐습니다. 한바탕 무더위가 지난 오후, 맥주 생각이 간절했고 마침 점심 먹은 것이 소화가 다 됐는지 간만에 배가 고프더군요. 일본 여행 중에는 잘 느낄 수 없는 귀한 '허기'입니다. 마지막 저녁 식사는 다른 것보다 좀 특별하게 하고 싶어 고민한 메뉴는 역시나 결국 기어코 '고기'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의외로 고기를 먹을 일이 많지 않습니다. 해산물과 면 요리를 즐기느라 바빠서인 것 같습니다. 오키나와에서 고기 먹기 좋은 곳이 있다며 추천받은 곳은 야키니쿠 전문점 '야키니쿠 바카이치다이(焼肉バカ一代)'입니다.
오키나와 현청이 있는 국제거리 끝자락에 위치한 야키니쿠 바카이치다이는 이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고기 음식점이라고 합니다.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높은 등급의 고기로 일반 고기집과 차별화를 둔 것이 좋은 반응을 얻어 현지인들 뿐 아니라 일본 와규를 제대로 맛보고 싶은 여행객들에게도 알음알음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름에 비해 규모는 작은 식당이지만, 그래서 더 정감가는 보석같은 고기집이었습니다.
크지 않은 실내는 일본 특유의 정신없는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벽에는 빈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메뉴 소개들이 가득 붙어 있어 따로 메뉴판을 볼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고기부터 고기와 잘 어울리는 샐러드, 국물 요리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술까지 메뉴가 모두 구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관광객들도 제법 찾는 곳이 됐다는 식당 내부에는 곳곳에 한국인들의 손길이 보입니다. 여기서 이런 응원을 받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아쉽게도 아직 한국어 메뉴판이 없어 사진과 추천 위주로 주문을 해야 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알려지고 있어 조만간 한국어 메뉴판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메뉴들은 사진이 있어서 손가락과 '고레 고레'라는 짧은 말로 충분히 주문은 가능합니다.
바카이치다이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꼽자면 매장 한 켠의 소스 제조 코너, 이른바 '소스 유원지'입니다. 고기와 잘 어울리는 각종 향신료와 조미료가 한데 모여있는 곳인데, 여기서 자신만의 레시피로 소스를 제조해 고기와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다행히 여기엔 한국어로 각 향신료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소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소스를 가져와 섞기 전까지 어떤 맛인지 도통 가늠할 수 없는 스릴(?)이 있습니다. 뭐, 실패하더라도 다시 소스 유원지에 가서 보충이 가능하니 큰 걱정은 없습니다.
-살치살과 부채살 그리고 갈비-
뒤이어 다양한 고기들이 서빙됩니다. 바카이치다이에서 식사를 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고기의 가격과 양입니다. 일본 내 최고 등급의 고기를 판매하는 곳인만큼 고기의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높은 편인데요, 때문에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기보다는 비슷한 수준의 가격에 맞춘 양을 제공해 다양한 부위를 조금씩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른 고기집처럼 양껏 먹자면 만만치 않은 가격이 찍힌 계산서를 받아들게 되겠지만, 좋은 품질의 고기를 느긋하게 음미하는 목적으로 가면 입 속의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의 고기들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마블링'이 넓게 분포된, 그야말로 고소하고 녹아 내리는 고기들입니다. 그래서 많이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고기 접시는 두세 사람이 함께 먹기 좋은 양으로 구성됐습니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하나씩 보면 밑간부터 소스 그리고 곁들이는 사이드까지 저마다 최적화 한 레시피가 눈에 띕니다.
에베레스트 산처럼 높이 쌓아올린 '캬베레스트'와 자정까지 마셔야 할 것 같은 콜라 피쳐와 함께 고기 파티가 시작됩니다.
처음 주문한 이 곳의 대표 메뉴 살치살부터 입 안에서 고기가 녹아내리는 특별한 경험이 시작됩니다. 얇게 저민 고기는 어린이들이 먹어도 될 정도로 야들야들한 식감에 지방에서 오는 고소함이 입안에서 그야말로 폭발합니다. 마블링 덕에 자칫 느끼하게 느껴질 수 있을 때는 와사비를 살짝 올려 먹으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요.
일본 어딜 가나 우설은 빠지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이 유독 이 우설을 좋아하는데, 다른 부위보다 쫄깃한 식감에 부담스럽지 않은 담백함이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달걀을 올린 밑간의 부채살은 얇게 저민 살이 입에 넣자마자 녹아 내리는 것이 제 입맛에 가장 잘 맞더군요. 노릇하게 구워 달걀 노른자를 잔뜩 묻혀 먹는데 '고소함+고소함=개고소함'이라는 공식이 떠오릅니다. 얇은 고기의 식감은 술을 입에 가져 가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녹아 내리는 고기들로 와규의 진가를 맛봤다면 마무리는 우리 스타일로 뼈에 붙은 살을 씹어야 합니다. 불판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소갈비에 쫄깃한 식감이 일품인 항아리 갈비까지 마지막은 풍미 가득한 부위로 즐겼습니다. 바카이치다이는 여러명이 함께 찾아 다양한 메뉴을 주문해 좋은 등급의 고기를 조금씩 맛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고기 파티. 평소에 저보다 고기를 더 좋아하는 일행은 '인생의 행복'을 이야기할 정도로 들떠있었고 그동안 저는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고 말을 최대한 아꼈습니다. '고기 먹을 줄 아는' 일본 사람들이 꼽은 최고 등급의 고기는 그동안 일본에서 먹었던 고기들과는 또다른, 한 단계 위의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식사로 더없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고기 앞에서는 친구나 연인보다 가족들이 먼저 생각나는 제 모습도 발견했고요. 본토와 떨어진 오키나와에서 이렇게 멋진 일본 와규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살치살과 부채살은 꼭 다시 와서 먹으려고 합니다.
- 오키나와의 유명한 블루 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여행이 마무리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