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를 대표하는 문화로 야타이(屋台)를 꼽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그리 특별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전국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포장마차 풍경이니까요. 하지만 후쿠오카의 야타이 문화는 음식부터 술 그리고 퇴근 후와 휴일 풍경까지 후쿠오카의 밤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 야타이 문화를 오키나와에서도 즐길 수 있는 스팟이 있어 관광객들한테 인기를 끌고 있다죠. 제법 큰 규모의 식당가를 포장마차가 몰려있는 거리처럼 꾸며 놓은 것이 눈길을 끕니다.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나하 시 국제거리에 위치한 야타이 거리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오키나와 국제거리 포장마차촌'으로도 유명합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좌우로 빽빽하게 들어선 식당들과 벽과 천장에 매달린 장식들 때문에 일본 어느 밤거리에 들어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곳에 위치한 식당들은 저마다 독창적인 메뉴들을 내세워 손님들을 유혹합니다.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분위기와 메뉴들로 밤이면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기있는 곳입니다.
약 스무 개의 식당들이 밀집한 포장마차촌으로 중간쯤에서 각 점포의 정보와 대표 메뉴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풍의 메뉴부터 오키나와 특색이 가미된 특별한 곳까지 다양해서 한 곳만 가기가 아쉽습니다. 식당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메뉴와 분위기에 따라 1,2,3차 이렇게 이동하며 즐길 수 있는 것이 밀집된 야타이촌만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물론, 빈자리를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요.
그렇게 이 정감있는 야타이 골목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저와 일행이 찾은 곳은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아부리 센베로 푸도(炙りせんべろ風土)입니다. 냄비 요리들을 주로 판매하고 있는 이 식당은 오키나와 야타이촌 홈페이지에 냄비 식당 테츠오(鉄鍋食堂 鉄男)로 소개돼 있습니다. 이곳에 끌린 이유로 유리문에 붙은 한국어 메뉴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이 곳의 독특한 시스템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만원으로 곤드레 만드레'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메뉴는 천엔을 내면 취할 때까지 마실 수 있는 의미라고 합니다. 센엔(천엔)과 베로베로(헤롱헤롱)의 합성어인 센베로가 이런 뜻이었군요. 술 한 잔에 보통 500엔 정도 하는 식당에서 천 엔에 술 세잔 그리고 안주까지 제공되니 가성비로 이만한 것이 없다 싶습니다.
센베로 메뉴를 주문하면 이곳의 기본 안주와 함께 원하는 술을 고를 수 있습니다. 저는 오키나와 로컬 맥주인 오리온 맥주를 선택했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그리 인기가 있는 맥주는 아니라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도수가 높지 않고 상큼한 향이 있는 오리온 맥주가 싱가포르의 타이거 맥주 못지 않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맥주와 함께하기 좋은 기본 안주는 채소와 감자 치즈 등으로 만든 간단한 샐러드 위주입니다.
그럼 세 잔을 먹었는지 어떻게 확인하느냐, 주문과 동시에 받은 반가운 화투 세 장을 추가 주문할 때마다 한 장씩 내는 방식입니다. 안주도 그에 맞춰 나오니 간단히 술 한잔 즐길 분들은 센베로 세트로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ㄴ요. 국제거리 포장마차촌은 이 떠들썩한 분위기 맛이 또 절반이니까요.
가장 먼저 주문한 메뉴는 냄비 식당 테츠오의 대표 메뉴인 솜사탕 스키야키입니다. 냄비 속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곧 쓰러질 것처럼 커다란 솜사탕을 냄비 위에 올렸는데, 음식에 솜사탕을 넣은 발상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이 솜사탕은 스키야키의 단맛을 내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설탕 대신 솜사탕으로 맛을 내면서, 재미있는 비주얼이 더해진 셈입니다. 매장 한 켠에서 혼또니 카와이(?)한 점원이 즉석에서 솜사탕을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음식이 조리되기 시작하면 그 커다란 솜사탕은 이내 녹아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때서야 스키야키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고기와 당면, 버섯, 유부, 채소 등이 어우러진 자박한 모양새와 끓는 소리가 식욕을 자극하죠. 스키야키를 무척 좋아해서 이 메뉴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스키야키는 의외로 그 강한 단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메뉴인데, 솜사탕을 올린 스키야키가 단맛이 없을 리가 없겠죠? 하지만 제 입맛에는 좋았습니다. 날달걀을 풀어 고기와 채소를 찍어먹는 스키야키의 방식은 먹을 때마다 누가 고안했는지 박수를 치게 됩니다.
남은 육수에는 당연히(?) 면을 넣어 끓입니다. 일반 면과 다른 굉장히 넓은 면이 나왔는데, 씹는 식감이 독특하고 너비만큼 밀가루 향이 제대로 나서 면덕후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됐습니다. 사실 스키야키는 이렇게 면까지 먹어야 제대로 먹은거라죠. 대표 메뉴인 솜사탕 스키야키는 비주얼과 단맛 때문에 여성 분들이 특히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성 반 호기심 반으로 추가 메뉴가 계속되는 우리의 식사는 오키나와에서도 어김없이 계속됩니다. 오키나와에 왔으니 스테이크를 먹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곳 스테이크는 한 점 한 점 맥주와 함께 먹기 좋은 찹스테이크로 넉넉히 두른 소스와 토핑이 한국인 입맛에도 딱 맞습니다. 고기는 살짝 덜 익혀 식감을 살렸고요.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스테이크가 꼽히는데, 때문에 스테이크 전문 식당뿐 아니라 이자카야에서도 다양한 스테이크 요리를 식사 혹은 안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듯 다른 이 메뉴는 마구로 스테이크, 즉 참치 스테이크입니다. 두툼하게 썬 참치 살을 구워 양념과 함께 낸 것인데 고기의 쫄깃함과 다른 참치의 폭신한 식감을 즐기는 메뉴입니다. 양념은 찹스테이크와 비슷한데, 개인적으로 이 메뉴는 양념 없이 구워 소금이나 간장, 유즈코쇼 등으로 재료 맛을 살렸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젓가락은 쉬지 않고 참치를 향하고, 맥주를 연거푸 마셨습니다.
이후로도 다양한 메뉴들을 주문했는데, 안주로 먹기 좋도록 많지 않은 양을 적당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다양한 메뉴를 주문할 수 있으니까요. 더불어 대부분의 메뉴들이 같은 철제 프라이팬에 담겨 나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같은 그릇에 담긴 서로 다른 모양의 음식들을 보는 즐거움이었달까요. 콜라겐 가득한 족발의 껍질을 팬에 넣고 졸인 족발 요리는 쫄깃쫄깃한 식감이 인상적이었고, 곱창 구이는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곱창과 양배추의 조화를 색다른 방식으로 맛볼 수 있는 메뉴였습니다. 곱창 요리는 기름이 무척 많아 맥주가 꼭 필요하겠더군요.
이 날 유일하게 다시 한 번 추가 주문했던 메뉴는 치즈 교자입니다. 팬에 구운 만두에 두 가지 치즈를 올린 것인데, 만두와 치즈 이 호불호 없는 둘의 조화를 싫어할 리가 없습니다. 맥주와 어울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요.
그렇게 늦은 오후부터 시작된 술자리가 이어지는 동안 어느새 주변은 어둑어둑해지고 그에 맞춰 포장마차촌에 있는 등이 불을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노란 조명이 켜진 거리를 보니 이게 이 야타이촌의 진짜 매력이라는 생각, 그리고 이 곳의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로 여행 마지막 날 밤 다시 이 야타이촌을 찾았을 때, 결국 빈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하루에 두 집씩만 들러도 열흘이 걸리는 매력이 있습니다. 함께 여행 온 이들과 밤을 보내기에 포장마차촌은 오키나와에서 가장 좋은 곳 중 하나가 아닐까요. 치즈 교자에 오리온 맥주 조합은 한여름이 되면 더욱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