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포토그래퍼가 된 시대,
사람들은 그에 맞는 카메라를 요구합니다.
막 찍어도 잘 나오는 것이 좋은 카메라라지만 그저 습관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것 만으로는, 그리고 그렇게 얻은 결과물만으로는 이 녀석을 완전히 믿기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큼 아름답게, 기대했던 것만큼 근사하게 나오지 않을 때도 종종 있고요. 그래서 별도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촬영 혹은 보정을 하지만, 사진을 찍는 것보다 길게는 수십 배의 시간을 보정하는 데 보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애초에 좀 더 잘 찍을 순 없을까?' 라고요.
수년 전부터 스마트폰이 디지털 카메라의 위치를 실제로 위협하기 시작했고, 결국 밀어냈습니다. 이제 작은 크기의 컴팩트 카메라는 찾아 보기 힘들어졌죠. 그만큼 스마트폰 카메라에 대한 기대도 전보다 몰라보게 커졌는데, 이에 부응하기 위해 최근 스마트폰은 화질과 촬영 기능의 업그레이드와 동시에 디지털 카메라의 전유물과 같았던 수동 촬영 모드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 아이폰은 빼고 -
- 갤럭시 S8의 프로 모드 촬영 화면 -
안드로이드 진영의 선두주자(?) 삼성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 S8에는 '프로 모드'라는 이름의 수동 촬영 모드가 탑재됐습니다. 물론 삼성 스마트폰은 예전 모델부터 꾸준히 수동 모드를 탑재해 왔습니다만, 이전에는 그리 좋은 평을 얻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카메라 성능 자체가 지금보다 현격히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카메라의 이미지 센서와 렌즈가 과거 똑딱이 디카와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스마트폰 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를 대체한 요즘에는 평가와 주목도가 전과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약 한 달간 갤럭시 S8의 카메라를 사용해보며 느낀 점, 그 중에서 프로 모드에 대한 소감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이 정도면 굳이 컴팩트 카메라는 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썩 괜찮은 경험이었습니다.
< 갤럭시 S8의 프로 모드로 촬영한 사진 >
"화면을 밀어 포토그래퍼 되기"
카메라 촬영 화면에서 화면을 밀어 프로 모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프로 모드 외에도 아웃 포커스, 음식 모드 등 눈에 띄는 촬영 모드가 있는데, 손쉬운 촬영으로 배경 흐림과 색감 보정 등 좋은 효과들을 얻을 수 있는 기능들입니다. 반면 프로 모드는 노출부터 셔터 속도, ISO 감도, WB 그리고 초점까지 사용자가 직접 설정/변경하는 촬영 모드입니다. 디지털 카메라에서도 잘 사용하지 않는 수동 모드를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려니 처음에는 어렵고 까다롭게 느껴지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가볍게 셔터만 눌러 얻은 자동 모드와 다른 근사한 결과물이 종종 튀어나옵니다.
갤럭시 S8의 프로 모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동 설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노출 보정
노출은 사진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자동 모드로 촬영할 경우 어둠과 밝음의 차가 심한 장면에서 곤란을 겪거나 빛이 부족할 때 흔들림이 발생하기 십상인데, 노출 보정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곤란을 크게 줄일 수 있거든요. 때문에 노출 보정 하나만으로도 갤럭시 S8의 프로 모드는 그 존재 가치가 충분합니다. 촬영 하면 아래(세로 촬영) 혹은 왼쪽(가로 모드)의 설정 메뉴 중 가장 끝에 있는 +,- 아이콘을 터치해 -2 ev부터 +2 ev까지 노출 보정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카메라 설정 노출값으로 촬영 -
- 노출 -2ev 보정 촬영 -
동일한 환경에서 카메라가 설정한 적정 노출과 노출 보정을 이용해 촬영한 두 장의 이미지를 보면 프로 모드의 노출 보정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카메라가 설정한 노출로 촬영한 이미지는 화면 전체가 밝게 찍혔지만 흰 꽃잎 쪽 노출이 과다해 화이트 홀이 발생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노출 보정을 이용해 -2 ev 낮춘 결과물로 꽃의 흰 잎의 질감이 제대로 표현됐습니다. 동시에 주 피사체인 앞쪽 꽃 한송이가 부각되는 효과도 얻게 됐고요.
화면 전체의 노출의 평균 값으로 촬영되는 자동 모드의 결과물은 너무 밝거나 혹은 너무 어두울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노출 보정을 사용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혹은 의도에 맞춘 연출이 가능해집니다.
< 노출 보정 기능을 활용한 이미지 >
2. WB (화이트 밸런스)
압축 포맷인 JPG 특성상 촬영 당시에 색 온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면 후보정으로 되살리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노란 빛의 실내 조명 아래에서의 촬영이 많은 스마트폰 사진의 경우 WB를 적절히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결과물의 완성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RAW 촬영 후 보정을 한다면 걱정이 없습니다만-
- AWB(왼쪽)와 5500K WB 설정(오른쪽) 결과물 비교 -
- AWB(왼쪽)와 8800K WB 설정(오른쪽) 결과물 비교 -
프로 모드의 WB 항목을 선택하면 바 위의 점을 움직여 WB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주로 왜곡된 실내/외 조명 환경에서 피사체의 색을 실제에 가깝게 재현하는 데 사용하지만, 활용하기에 따라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인 컬러를 연출하는 데에도 활용됩니다. 평범한 노을을 WB만 조금 변경해주면 애니메이션의 배경처럼 보라색으로 촬영하는 등 자동 모드에서 얻을 수 없는 색다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 프로 모드에서 WB를 변경해 촬영한 이미지 >
3. 셔터 속도
- 셔터 속도 1/2000초 설정 -
- 연속 촬영 이미지 -
셔터 속도 설정은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분들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고급 설정(?)입니다. 짧은 셔터 속도를 설정해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에 대응하고, F1.7로 고정된 조리개 값을 갖는 렌즈에 맞춰 감도와 셔터 속도로 노출을 설정하는 데 사용됩니다. 역시 바 위의 점을 터치 & 슬라이드로 움직여 원하는 셔터 속도를 설정하는데, 최초 1/24000초부터 최대 10초까지 설정할 수 있습니다. 야간에 1초 이상의 긴 셔터 속도를 설정하고 삼각대로 스마트폰을 고정시키면 디지털 카메라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장노출 촬영도 시도할 수 있습니다.
- 셔터 속도 설정 화면 -
- 셔터 속도 10초 설정 -
- 셔터 속도 4초 설정 -
4. ISO 감도
- ISO 320 | 1/15초 설정 -
광량에 따라 조절하는 ISO 감도는 낮은 감도에서는 깨끗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빛이 필요하고, 높은 ISO 감도는 광량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촬영이 가능하지만 노이즈가 발생해 화질이 저하됩니다. 프로 모드의 ISO 감도 조절 탭에서는 최소 ISO 50부터 최대 ISO 800까지 감도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 모드에서는 광량에 따라 ISO 50보다 낮은 그리고 ISO 800보다 높은 감도가 적용되기도 합니다. 갤럭시 S8의 감도별 화질과 노이즈를 아래 비교해 보았습니다.
- ISO 자동 | 수동 설정 화면 -
- ISO 50 | ISO 100 -
- ISO 200 | ISO 400 -
- ISO 800 -
자동 모드에서는 빛이 부족할 때 강제로 높은 감도로 설정돼 노이즈가 증가하는데, 이 때 프로 모드에서 낮은 감도를 설정하고 카메라를 고정 시키거나 노출 보정을 이용해 어둡게 촬영하면 상대적으로 깨끗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ISO 감도는 디지털 카메라 사용자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옵션이지만, 스마트폰 카메라에서 프로 모드를 이용해 감도를 설정할 수 있는 것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동일한 환경에서 ISO 감도와 셔터 속도를 적절히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거든요. 더불어 경쟁 제품인 아이폰 7 플러스의 카메라보다 동일 감도에서의 이미지 품질도 훨씬 뛰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ISO 200 이미지 -
- ISO 400 이미지 -
5. 색조
색조 조절은 앞서 설명한 수동 촬영 설정과 조금 동떨어져 있지만 이미지를 직접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프로 모드의 일원(?)으로 선택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색감 조절 모드인데, 화창한/아련한/빛바랜/선명한/포근한 등 몇 가지 프리셋을 제공하고 사용자가 직접 컬러 설정을 변경할 수 있는 사용자 옵션을 제공합니다. 화창한, 선명한 등의 효과는 날씨와 장면에 맞춰 선택하면 더 화려한 풍경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빛바랜/아련한 효과는 VSCO, 인스타그램에 있는 필터 효과와 비슷한 결과물을 안겨줍니다.
- 노을 지는 시간, '선명한' 효과 사용 -
- '화창한' 효과 사용 -
- '빛바랜' 효과 사용 -
< 색조 설정별 이미지 >
- 기본 | 화창한 -
- 아련한 | 빛바랜 -
- 선명한 | 포근한 -
모든 색조 설정은 세부 설정을 지원합니다. 설정할 수 있는 항목 역시 그림자/하이라이트/채도/대비/틴트/색온도까지 총 6가지로 웬만한 후보정 앱보다 더 자유롭게 이미지 보정이 가능합니다. 찍기 전에 색과 명암을 조절하는 점에서 후보정 앱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항목이 너무 많아서 색조까지 활용하다 보면 스마트폰 카메라의 장점인 간편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터치 화면뿐인 꽤나 불편한 카메라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가급적 기본 효과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6. 초점
갤럭시 S8의 프로 모드를 사용하면서 셔터 속도와 ISO 감도, 노출뿐 아니라 초점까지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초점 탭을 눌러 표시되는 바를 터치&슬라이드 하면 카메라의 초점 모드가 수동으로 전환됩니다.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거나 의도적인 포커스 아웃으로 보케 등을 연출할 때 효과적으로 활용됩니다.
- 수동 초점을 이용한 미세 초점 검출 활용 -
- 수동 초점을 이용한 보케 연출 -
- 수동 초점을 이용한 보케 연출 -
초점 모드가 수동으로 변경되면 화면 내 초점이 맞은 영역을 녹색으로 표시하는 피킹 기능이 활성화 됩니다. 미러리스 카메라의 수동 초점 모드에 탑재된 기능인데, 스마트폰 카메라의 수동 촬영 지원치고는 매우 훌륭합니다. 야간 조명에 수동 초점으로 동그란 보케를 만들어 사진에 담아보면 이 수동 기능이 쓸 데 없이 번거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기존 스마트폰의 수동 촬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좋은 시도라고 평가합니다.
이쯤이면, 스마트폰으로 포토그래퍼가 될 수 있을까요?
갤럭시 S8에 탑재된 프로 모드는 최초가 아닙니다. 수년 전 사용한 갤럭시 노트 5에도 수동 모드와 RAW 촬영 모드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갤럭시 S8의 프로 모드를 그보다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그 때보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 자체가 향상됐고, 스마트폰 시장 과열/컴팩트 디지털 카메라 시장 축소로 전보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카메라'로서 더욱 주목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으로 일상과 여행을 담는 시대, 그래서 그 카메라의 잠재력을 끌어 올리는 프로 모드는 자동 모드뿐인 아이폰 7 플러스보다 카메라만큼은 갤럭시 S8이 단연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됩니다.
직접 사용해 본 갤럭시 S8의 프로 모드는 기본적인 촬영 설정들 -노출 보정과 ISO 감도, WB-은 물론 수동 초점 촬영까지 가능한 폭 넓은 활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더불어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10초 장노출 촬영, 보케 연출 등이 더해져 사람들이 디지털 카메라와 비교해 갈증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상당 부분 해소한 것 역시 만족스러웠습고요. 갤럭시 S8로 일상을 담고 여행을 다녀와 사진을 넘겨보다 보니 스마트폰 카메라가 정말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그 열세가 커지고만 있는 아이폰이 올해 분발한다면 스마트폰 카메라가 가장 주목받는 해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