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싸늘하게 불기 시작하자마자 감기에 걸렸습니다. 콜록대며 어느새 환절기 몸보신을 해야 할 나이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슬프더군요.
그래도 생각대로 몸보신은 해야겠기에 저녁약속을 거하게 잡았습니다. 역시 '몸보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장어입니다.
한적하고 여유로워서 좋아하는 성북동에 얼마전 새롭게 문을 연 장어구이집입니다. 상호명은 심플하게 '성북장어'
눈길은 끈 것은 흔히 떠올리는 장어구이집 답지 않게 모던한 실내. 실제로 식사하는 동안 가게에 총 세 커플이 있었을 정도로 분위기가 정갈했습니다. 이제 막 연인들의 저녁식사 장소로도 좋아 보였습니다.
-장어는 좀 위험한가요?-
성북 초등학교 앞 교차로 모서리에 위치한 성북장어집은 이 건물 2층에서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교차로를 향해 밝게 불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찾기에 어렵지 않습니다.
장어덮밥을 주문했습니다. 메뉴 주문에 맞춰 새롭게 밥을 짓는 시스템이라 식사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편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에는 전채로 나온 샐러드로 입맛을 돋우고 있으면 됩니다. 요거트 드레싱을 올린 샐러드가 오히려 배고픔을 더 가중시키긴 하지만요.
장어덮밥은 이렇게 개인상으로 차려집니다. 뚜껑을 덮은 무쇠솥에 장어덮밥이 있고, 구이와 함께 곁들일 생강, 고추냉이, 락교, 김치 그리고 장어구이 소스가 추가로 있어 입맛에 맞게 덮밥을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장어 양념구이는 채 썬 생강과 많이 먹지만 와사비를 곁들이면 색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고 팁을 알려 주시더군요. 달궈진 무쇠솥이 식사에 대한 기대감을 더합니다.
"와-"
뚜껑을 열고 나서 그녀와 저는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푸짐한 양도 양이지만 무쇠솥밥 위에 장어구이와 덮밥 재료를 올린 담음새가 너무 예뻤거든요.
장어구이는 그동안 먹었던 것보다 살이 훨씬 두툼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직 한사람만을 위해 지은 무쇠솥밥도 대접받는 느낌이 들더군요.
'성북장어'라는 심플하고 정직한 이름에 맞게 장어구이는 무척 실해 보입니다. 제가 먹어보았던 어떤 장어구이보다 살이 두툼하고 양념이 과하게 달지 않아 담백한 장어 고유의 맛을 즐기기에 좋았습니다. 덮밥 옆에 구이를 덜어 먹을 접시를 함께 주신 것을 보니 아무래도 덮밥보다는 구이를 따로 즐기는 것이 이 두툼한 장어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함께 나온 장국과 김치는 곁들임 음식 치고는 맛이 무척 좋았습니다. 밑반찬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보입니다.
이 두툼한 장어를 밥과 함께 비비는 것은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것 같더군요. 그래서 한 점을 접시에 덜어 생강과 와사비를 올렸습니다. 기호에 따라 양념을 더 얹어서 먹어도 되지만 저는 이대로 담백하게 즐기는 것이 더 좋더군요. 생강이야 자타공인 장어구이의 단짝이지만 고추냉이와의 조합도 기대 이상입니다. 그동안 장어구이의 느끼함이 문제인 분이 계시다면 고추냉이와 함께 드셔보시길 추천합니다.
"이렇게 아-"
장어 살이 두툼해서 한 점만으로도 입안이 가득 찹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몸보신에 제격이고 생강과 고추냉이 중 하나를 골라서 곁들이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렇게 한 점 먹고나니 아무래도 덮밥 보다는 구이를 즐기고 싶어 남은 구이도 접시에 덜고 싶더군요.
그래도 명색이 덮밥이니 덮밥스럽게도 한 번 즐겨보기로 합니다.
파와 고추냉이, 소스를 밥 위에 올리고 함께 담은 양파와 초생강 등과 비벼주면 덮밥이 완성됩니다.
무쇠솥에 지은 밥은 일반 밥보다 찰기가 있고 구수한 맛이 강해서 장어와 함께 먹으면 건강한 느낌이 들더군요.
잘 비빈 덮밥에 이렇게 구이 한 점을 올려 한입-!
음식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 느낌은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감기가 곧 떨어지리라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한적한 성북동과 어울리는 '건강식' 한 상이었습니다.
성북동에 종종 오는데, 그리고 그 때마다 이 교차로를 지나치는데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