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가방같지 않은 카메라 가방을 그토록 찾아 헤맸건만, 이건 노골적인 '카메라 가방'입니다. 영국 브랜드의 카메라 가방은 빌링햄(Billingham)이 무척 유명하고 선택권도 많은데 이 브랜드는 아직 국내에서 생소합니다. 듣기로는 선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두 브랜드 모두 깊은 역사를 자랑하지만 상대적으로 카메라 가방 시장에 일찍 손을 뻗은 빌링햄이 큰 성공을 거둔 데 반해 이곳은 이제서야 카메라 가방 시장에 진입을 꿈꾸고 있다고 합니다. 낚시 가방으로 알려진 영국 브랜드 브래디(Brady)의 카메라 전용 가방 Kennet입니다.
캔버스와 가죽을 이용한 가방 형태는 빌링햄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실루엣 역시 서로를 떠올릴 정도로 유사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조금만 유심히 보아도 디테일에서 꽤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빌링햄 가방에 단 한번도 욕심을 내지 않았던 제가 브래디 가방이 맘에 들어왔던 이유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나마 흔하지 않아서'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제 봄이 오고 사진 찍으러 나갈 일이 종종 있을 듯한데 카메라 가방이 하나 필요했다는 핑계도 함께.
Kennet 모델은 브래디 가방의 몇 안되는 '카메라 전용 가방'입니다. 일반 숄더백에 카메라 수납용 파우치를 포함해 판매하는 제품도 있지만 역시나 완성도에서는 전용 가방이 우위에 있습니다.
- 생각보다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곳입니다, 영 듣보는 아닌 -
Kennet 모델은 브래디 숄더백의 가장 기본 모델인 Ariel를 기반으로 카메라 수납을 위한 내부 파티션을 보강해 만든 제품입니다. 카메라를 빼고 넣을 때 손상이 발생하지 않는 숭마용 구 마감방식 -검색하며 처음 알았어요- 을 채택한 것은 Ariel과 동일하지만 렌즈와 보조장비 등의 수납할 수 있는 사이드 포켓이 추가됐습니다. 상단 덮개가 상대적으로 작게 제작돼 자주 여닫는 카메라 백의 특성을 배려한 것도 눈에 띕니다. 색상은 블랙과 카키. 기본적으로 카키 색상을 선호하지만 아무래도 여기저기 뒹굴 카메라 가방으로서는 블랙 색상이 관리가 용이합니다.
- 요 녀석이 Ariel -
- 브래디 Kennet 가방에 대한 설명, 라이카 스토어 반도 홈페이지 -
설명을 보고 기억나는 건 이태리, 영국, 영국. 이바닥은 역시 '있어 보이는 것'이 중요한 건지 이태리 캔버스 재질과 승마용으로 활용되는 버클과 부자재, 그리고 영국산 가죽을 사용한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자전거용 안장 가방도 영국 브랜드의 캔버스 가방인데 처음 받을때부터 헌 것 같은 빈티지한 외관을 제외하면 튼튼하고 멋스러워서 마음에 듭니다. 빌링햄과 함께 캔버스 가방은 영국 브랜드가 두각을 보이는 것 같네요.
브래디 Kennet 가방의 전면 실루엣입니다. 검정색 캔버스와 가죽이 극도로 절제된 모양새지만 금색 리벳과 버클 덕분에 적당히 화려해 보입니다. 덮개를 고정하는 가죽 스트랩은 사선 디자인으로 빌링햄 가방과 눈에 띄는 차이를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카메라 가방은 반듯한 직사각형 실루엣인데 반해 브래디 Kennet은 곡선이 많은 실루엣으로 제작됐습니다.
- 브래디 Kennet의 스트랩이 다소 발랄한 느낌이라면 빌링햄은 점잖은 인상이죠 -
빌링햄의 스트랩이 (| |), 브래디의 그것은 (/ \)으로 어쩐지 시무룩한 표정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흔하지 않아 좋습니다. 스트랩 모양과 전체 실루엣으로 가방의 인상을 평가하면 확실히 빌링햄 가방이 남성적인 느낌입니다. 브래디 Ariel 가방은 여성 패션 아이템으로도 사랑을 받고 있는데, 곡선 실루엣과 이 독특한 스트랩 형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버클과 리벳은 마구용으로 사용되는 황동으로 제작됐다고 합니다. 라이카 카메라를 사용하며 이 황동 소재의 내구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익히 듣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무게는 무겁지만 내구성에서는 확실히 믿음이 갑니다. 가죽은 영국산으로 베지터블 태닝 처리가 돼 내구성이 높고 시간이 가면서 특유의 멋이 있다고 하네요. 물론 이 가죽이 멋스러워질 때까지 캔버스가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지만 오래된 가죽의 멋을 상상하며 오랫동안 곁에 두는 즐거움이 있겠네요. 처음 저 버클을 보고 가방을 열 때마다 저 버클을 끌러야 하는 줄 알고 무척 놀랐습니다만 다행히 상단의 리벳으로 쉽게 여닫을 수 있습니다.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담는 가방인 만큼 어깨 피로를 줄이기 위해 패드가 기본으로 제공됩니다. 이 패드 역시 황동 리벳과 영국산 가죽으로 처리됐겠죠? 안쪽은 부드러운 천을 덧대 옷감 손상을 줄입니다. 이 어깨 패드의 존재에 대해 과거에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만 일반 가방에 카메라를 넣고 다녀보니 어깨와 몸이 느끼는 피로도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 후로는 카메라 가방에서 꼭 확인하는 요소입니다.
역사와 전통의(?) 제작방식 때문인지 바닥면에 별다른 처리는 되어있지 않습니다. 전용 카메라 가방의 경우 손상을 방지하고 충격을 줄이기 위해 가방 하단 모서리에 리벳이 배치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그것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나봐요. 게다가 캔버스 재질이다 보니 땅에 내려놓을 때 신경이 쓰이겠지만 '이태리산' 캔버스라고 하니 짱짱하게 버텨줄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카메라 가방으로서 Kennet의 정체성이라 하면 역시 내부 파티션을 기본으로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가방 내부 전체에 폭신한 스펀지를 덧대 카메라 장비를 안전하게 수납할 수 있도록 했고 벨크로 방식의 칸막이 두개로 내부 공간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카메라 파티션 보다 내부 재질이 훨씬 부드럽고 폭신한 느낌이라 손에 닿는 질감이 좋았습니다. 카메라의 충격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는 없지만 작은 충격에는 확실히 일반 가방보다 안심이 됩니다. 가방 내부는 물론 덮개 안쪽에도 동일한 소재의 부드러운 천이 덧대여져 있습니다. 보다 단단히 장비를 보호함과 동시에 상당한 수준의 방수 효과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전면에는 두개의 대형 포켓이 있어 개인 소지품을 수납할 수 있습니다. 크기를 보니 렌즈 등은 넣기 힘든 크기고 필터나 릴리즈, 배터리 등의 보조 장비와 지갑, 수첩 등의 개인 소지품을 넣기 적합합니다.
사이드 가방도 카메라 가방에 꼭 필요합니다. 촬영하다보면 덮개 열고 닫는 것도 번거로워서 자주 교체하는 렌즈나 플래시 등을 보관할 사이드 포켓이 생각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Kennet 백의 양쪽에 각 한개씩 총 두개의 사이드 포켓이 있고 가방 내부와 동일한 스펀지 재질로 되어 있습니다.
가방 외부를 훑어본 후 제 카메라를 꺼내 보았는데,
생각보다 이 가방 큽니다. RF 카메라용 작은 가방을 원했던 제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 Kennet 백의 외부 크기는 35 x 25 x 11 cm로 일반적인 카메라 가방 크기입니다. DSLR 장비도 충분히 넣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카메라를 넣어도 3개로 나눈 내부 파티션의 한칸밖에 차지하지 않습니다. 나머지 공간에는 여분의 렌즈나 소지품을 넣어 채우면 되겠습니다.
- 물론 카메라를 더 넣어도 됩니다 -
옷차림이 제한적이고 카메라를 넣고 빼는 번거로움도 있는데다 렌즈 하나만 사용하는 제 촬영 습관 때문에 전용 카메라 가방 사용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막상 제 맘에 드는 가방을 찾으니 장점들이 보입니다. 우선 카메라를 보관할 때 용이하고 우천 시 악천후에도 카메라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자주 카메라를 휴대하고 외출하는 저는 일반 가방에 카메라를 휴대하는 편인데 소지품과 함께 담았을 때 장비가 손상되는 것도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가방에 어울리는 옷차림이 한정적이고 카메라 한대를 위해 큰 가방을 챙겨야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하지만 가방 자체의 완성도 -캔버스와 가죽, 리벳의 품질- 에는 매우 만족하고 있어 앞으로 다른 카메라 가방 욕심내지 않고 사용해보려 합니다.
저는 아직 가본 적 없는 영국에서 온 카메라 가방, 부디 곱게 늙고낡아 카메라는 종종 바뀌더라도 가방만은 오래오래 곁에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오년 십년쯤 후에 이 가방의 소감을 다시한 번 남길 수 있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