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스타일, 클래식 이미지
올림푸스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
기적같은 두번째 체코, 프라하 여행을 함께하며 의미있는 장면들을 남겨준 올림푸스 PEN-F. 멋진 스타일에 반해 출시 발표때부터 갖고 싶었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첫 프라하 여행을 함께했던 E-M5 Mark II에 이어 다시 한번 올림푸스 카메라와 프라하 여행을 가고 싶었습니다. 운 좋게도 바람이 이뤄져 이제 막 출시한 따끈따끈한 PEN-F 블랙과 M.ZUIKO 12mm F2.0 렌즈로 두번째 프라하, 겨울의 풍경들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무척 의미있는 여행 그리고 인연이었습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사용해 본 이 카메라에 대한 설익은 평가는 이전 포스팅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올림푸스 PEN-F와 함께 다녀온 프라하, 체코 여행 : http://mistyfriday.tistory.com/2619
두번째 프라하 여행을 함께한 올림푸스 PEN-F, 특징과 장단점에 대해 : http://mistyfriday.tistory.com/2620
PEN-F의 단짝, M.ZUIKO 12mm F2.0으로 담은 프라하 여행 : http://mistyfriday.tistory.com/2622
이번에는 이 카메라의 여러 기능 중 개인적으로 강한 인상을 받았던 모노크롬 프로파일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나눠 보려고 합니다. 아트 필터 효과 등 디지털 필터 효과를 좋아하지 않는 제가 유독 이 모노크롬 프로파일로는 꽤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던 것이겠죠. 일반적인 컬러 모드의 '흑백 모드' 촬영과 달리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은 이미지 톤과 대비, 노이즈 등을 아날로그 필름 이미지에 근접하게 재현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필름 카메라를 진득하게 사용하지 않았던 제가 흑백 필름 이미지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쉽게 내릴 수 없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몇몇 전시에서 보았던 과거 사진 작가들의 흑백 이미지를 연상 시키는 톤과 그레인을 연상할 수 있었으니 현대의 디지털 카메라 사용자들에게 아날로그 감성을 맛볼 수 있게 한다는 의도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독특한 이미지의 매력에 전면 다이얼 조작만으로 편리하게 컬러 / 모노크롬 프로파일을 넘나들 수 있는 편리함까지 갖춰 제대로 이미지를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PEN-F의 이 기능에 반했습니다. 원체 흑백사진을 좋아하거든요. 게다가 일반 흑백 사진보다 대비가 강한 하이 컨트라스트 흑백 사진을 보정작업 없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라 전면 다이얼을 꽤 많이 사용했던 기억입니다.
아주 오래된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Český Krumlov)
체코의 최남단에 위치한 시골마을 '체스키 크룸로프'를 1박 2일간 여행하면서 이 모노크롬 프로파일 기능을 가장 많이 사용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건물이 4-500년 이상 된, 중세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 마을의 풍경을 담는 데 투박한 흑백 이미지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물론 아직 다 믿을 수 없는 기능이기에 RAW+JPG로 보험을 들었지만 그 날 저녁 숙소에서 확인한 흑백 이미지가 레트로 스타일의 PEN-F 화면 속에서 꽤 매력적으로 빛났습니다. 그래서 이 체코의 시골 마을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에 대한 소감을 남기려고 합니다.
PEN-F의 독창적인 '모노크롬 프로파일(Monochrome Profile)'
필름 PEN-F 카메라의 스타일을 재해석한 레트로 스타일과 함께 PEN-F에는 강한 대비와 거친 느낌을 주는 아날로그 흑백 이미지를 연출하는 모노크롬 프로파일 기능이 새롭게 채용됐습니다. 현재까지는 PEN-F만의 기능으로 이전 OM-D 카메라에서 얻을 수 없던 강한 인상의 흑백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기능입니다. 컬러 프로파일과 함께 전면의 다이얼에 전용 기능으로 배치돼 활용도 역시 높습니다. 컬러 크리에이터와 아트 필터, 컬러/모노크롬 프로파일 4가지 촬영 모드가 지정된 전면 다이얼은 그 자체로 오리지널 필름 PEN-F 카메라의 디자인을 충실히 재현하면서 다양한 촬영을 가능하게 하는 인터페이스의 핵심이 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다이얼을 무척 좋아합니다.
- 올림푸스 한국 홈페이지의 모노크롬 프로파일 관련 설명 -
모노크롬 프로파일은 총 3개의 설정을 제공합니다. 1번 설정은 일반적인 '흑백 모드' 정도의 톤과 그레인으로 장면을 표현하는데 이 역시도 기존 OM-D의 흑백 모드보다 조금 더 강한 대비가 설정돼 있습니다. 2,3번 설정이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설정으로 강한 대비와 필름 느낌의 그레인 표현이 적용된 클래식 필름 B&W가 2번, 적외선 필터를 사용한 것과 같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클래식 필름 IR이 3번 설정입니다. 주로 인물 피부와 하늘, 구름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표현하고자 할때 3번 설정을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출국 직전에 이 카메라를 수령하게 되어 2,3번 설정을 제대로 테스트할 수 없었고, LCD 상에 더욱 만족스러운 그리고 평소 제가 선호하는 톤을 가진 2번 클래식 필름 B&W 설정으로 대부분의 흑백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이와 함께 필름의 입자 표현을 재현한 '그레인' 역시 옵션으로 설정할 수 있는데, 단계가 높을수록 노이즈가 많아지며 오래된 흑백 사진의 느낌이 살아납니다. 하지만 너무 높게 설정하면 이미지 디테일이 무너지므로 가급적 1,2단계 정도만 사용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카메라의 ISO 설정에 따른 노이즈에 그레인 설정이 함께 적용되면 자칫 불만족스러운 이미지가 튀어나오기도 하더라고요. 반대로 그레인 설정을 낮게 설정하면 깔끔하고 매끈한 이미지가 되겠지만 아날로그 이미지의 느낌은 줄어들 것입니다.
-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로 향하는 길, 버스 밖 풍경 -
-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정차역인 체스케 부데요비체(České Budějovice) -
강한 대비의 흑백 사진이 평범한 장면을 왠지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버스에서 찍은 창 밖의 풍경, 이름 모를 정류장으로 걸어들어가는 인파. 컬러 사진이었다면 별 것 아닌 장면들에 과하다 싶은 강한 대비가 더해지니 눈으로 보기에도 매우 강렬합니다. 햇살이 내리쬔 정류장처럼 명암 대비가 큰 장면에서는 그 효과가 더욱 큽니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체스키 크룸로프 전경 -
프라하에서 버스를 타고 약 세시간, 시골마을 입구를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이 곳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끝까지 의심했지만 마치 창덕궁의 비원을 연상시키듯 걸어들어가며 모습을 보인 체스키 크룸로프 풍경은 '동화 속 도시'라는 설명이 꼭 들어맞았습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쉬지 않고 성과 도시 전경이 보이는 전망대를 연거푸 올랐습니다. 전망대에 올라 설때마다 펼쳐지는 각기 다르지만 하나같이 환상적인 풍경들에 프라하를 여행할 때보다 많은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지금 보니 같은 장소에서 찍은 똑같은 사진들인데 그 때는 한 순간이라도 놓칠까 계속 셔터를 눌렀습니다.
물론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 모드로 촬영한 사진 역시 많습니다. 스마트폰 화면보다 작은 LCD 상에서는 다소 높은 그레인 설정의 이미지가 흑백 필름 느낌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 선택했는데 PC로 확인해보니 윤곽선이 다소 거칠고 2000만 화소의 섬세한 표현을 저해하는 느낌이 들어 못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옛날 사진같아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도시의 건물 대부분이 수백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라니 말이예요.
- 골목마다 깃든 중세 유럽의 정취 -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스키 크룸로프는 근래에 지어진 건물이라봐야 4-500년이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물론 상점과 숙박 시설로 운영되는 건물들은 내부 공사를 통해 현대 시설을 갖췄지만 건물 외부와 거리 풍경은 여전히 그 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두어 시간이면 대부분 둘러볼 수 있다는 크지 않은 도시의 골목 골목을 혹여 하나라도 놓칠까 해가 질때까지 탐방(?)한 이유도 그 정취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입니다. 프라하의 그것과는 또 다른 이 낭만, 굳이 표현을 하자면 프라하의 그것보다 조금 더 진하게 응축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곳의 건물들은 물론 조각품 하나를 볼 때도 '이것은 몇백년 전에 만들어졌을까?'라고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물론 성과 건물을 비롯해 모든 것이 건재하기 때문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고 내부를 기웃거리는 것이 이곳에서는 어렵지 않습니다. 해가 질 시간이 가까워지면 부족한 빛 때문에 높은 감도가 설정되며 그레인 효과와 함께 더욱 거친 흑백 이미지를 만드는데요, 사실 JPG 이미지의 높은 노이즈에 그레인 효과까지 더해지니 이미지 품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빛이 부족한 야간에는 되도록 그레인 효과를 낮게 설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체스키 크룸로프 성 -
- 성 전망대로 가는 길을 밝힌 아침 햇살 -
사실 이 멋진 시골 마을은 동유럽 특유의 주황빛 건물과 도시를 굽이굽이 흐르는 블타바 강의 선 그리고 성과 교회 등의 첨탑이 만드는 스카이 라인을 함께 볼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오직 흑백사진으로만 담고 감상하기엔 아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몇몇 장면, 예를 들면 위 사진처럼 중세 건물과 빛이 만드는 장면에서는 흑백 사진이 조금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다시 전망대로 가던 길에 만난 환한 햇살에 무척 기분이 좋았던 기억입니다.
- 궁금해 하실 혹은 흑백 사진에 답답하신 분들을 위한 사진 한 장 -
- 이 도시의 낭만, 그 일부인 사람들 -
강한 대비의 흑백 사진은 컬러 사진보다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더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눈을 현혹하는 색을 버리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찍어도 옛날과 꼭 같은 도시, 그리고 찍는대로 오래된 것만 같은 사진을 만드는 카메라. 그래서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 사진들은 프라하보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더 큰 매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흑백 사진이 만능이 아니라는 당연한 답도 함께 얻었고요.
- 다시 프라하로 돌아오는 길에 -
PEN-F만의 이 강하고 거친, 어찌보면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는 이 흑백 사진이 흑백이 매력적이라는 몇몇 카메라보다 더 멋진 이미지를 안겨 준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과 분명 다른 결과물을 안겨 준다고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충실한 하이 컨트라스트 흑백 사진 위에 톤부터 그레인 효과 등 비교적 다양한 옵션을 얹을 수 있다는 장점 그리고 전면 다이얼로 무척 편하게 흑백/컬러를 넘나들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함께 여행한 PEN-F의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역시나 남에게 보여주는 사진들은 화려한 컬러 사진이지만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여행의 추억과 함께 감상하는 그리고 제 휴대폰 배경 화면으로 간직하는 사진들은 색보다는 감정이 풍부한 흑백 사진입니다.
지금은 PEN-F의 레트로 스타일을 대표하는 모노크롬 프로파일의 매력, 하지만 앞으로는 PEN-F 뿐 아니라 많은 올림푸스 카메라 사용자들이 그 깊은 이미지를 느끼고 간직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