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용해 본 수십 종의 카메라 중 단연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소니의 RX1. 가방 안에 매일 휴대할 수 있는 작은 크기에 35mm 풀 프레임 이미지 센서, 성능과 가능성을 고루 갖춘 Zeiss 35mm F2 렌즈까지 단연 제 이상형의 요소들을 갖췄고, 참 많이 좋아했고 보낸 후에도 열렬히 그리워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 돌아온 후속제품 RX1R II는 4200만 초고화소와 빠른 AF, 걸출하나 뷰파인더와 틸트 LCD, Wi-Fi 등의 편의 장치 보강으로 지난 시간만큼 성장한 모습입니다. 멋진 추억을 덕분에 이 카메라를 누구보다 그리워한 저는 지난 홍콩 여행을 이 카메라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감탄도 실망도 많이 했던 동반 여행의 추억을 통해 이 카메라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놀라운 크기와 성능만큼 가격마저 놀라워 정보를 찾기 힘든 이 카메라의 허와 실. 짧은 소견이나마 제가 느낀 것들을 나눠 보려고 합니다.
현재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카메라 중 가장 멋진 녀석 중의 하나인 것은 확실 하니까요.
혹시나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2013년 작성한 RX1과 RX1R 관련 포스팅 링크를 첨부합니다. RX1R II와 비교하는 재미도 있겠네요.
작은 카메라는 큰 여행을 만든다, 콤팩트의 힘.
제가 RX1을 사용한 기억도 어느새 3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기술은 무척 빠르게 발전했고 정말 멋진 카메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제가 지금 사용하는 카메라도 대부분 그 이후에 출시된 것들이고요. 하지만 3년 후 후속제품 RX1R II이 나온 현재도 '세상에서 가장 작은 풀프레임 카메라' RX1 시리즈의 가치는 유효합니다. 아직도 특별한 경쟁 제품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이카 Q가 비슷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지만 직접적인 경쟁 제품이 되기엔 구매 대상과 카메라 성향 자체가 다소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이 카메라는 '가장 작은 크기로 풀 프레임의 이미지를 즐길 수 있는 카메라'입니다. 여행과 일상에 간편하게 함께할 수 있는 콤팩트 카메라 중 단연 '가장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사진기이기도 하고요. 풀 프레임 카메라가 이만큼이나 작아지면서 얻게되는 장점은 뚜렷합니다. 가지고 다니기 편하다, 찍기 쉽다, 일상과 여행이 더욱 홀가분하고 즐거워진다. RX1R II의 가치는 바로 이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4200만 화소니 고속 AF, 팝업 뷰파인더, 틸트 LCD와 Wi-Fi 무선 통신 등 다른 수식어는 이 카메라가 이 크기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빛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때문에 이 카메라는 여전히 최고의 여행용 카메라입니다. 그리고 이 매력을 저는 함께 떠난 여행에서 그야말로 '만끽'했습니다.
SONY RX1R II
- 35mm 풀 프레임 Exmor R CMOS 이미지 센서
- 4240만 화소
- Zeiss Sonnar T* 35mm F2.0 렌즈
- Fast Hybrid AF
- ISO 100-25600
- XAVC S Full HD 동영상 촬영
- 236만 화소 0.39" 전자식 뷰파인더
- 3.0" 123만 화소 LCD (150도 틸트)
- 20cm 접사
- 5fps 연사
- Wi-Fi / NFC 무선통신
- 113.3 mm x 65.4 mm x 72.0 mm
- 507g / 480g
- 라이카의 35mm 풀프레임 콤팩트 카메라 라이카Q 와의 비교 -
RX1RII가 출시되기 전 약 3년의 시간 동안 비슷한 풀 프레임 콤팩트 카메라 콘셉트의 라이카 Q가 출시되어 아직도 이 둘 사이에서 고민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RX1의 35mm와 라이카 Q의 28mm 렌즈. 출시가 기준 100만원 이상의 가격차와 제품 크기에 따른 콘셉트 차이 등 직접 비교는 쉽지 않습니다만 현재 가장 뜨거운 풀 프레임 카메라 중 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두 카메라를 놓고 고민하시는 분들 부럽습니다.
혹 이 카메라의 외관이 궁금하신 분은 이전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RX1과 대부분 같아서 큰 흥미는 없습니다.
RX1을 사용할 때에 이 카메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여행 기회를 꿈 꿨습니다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RX1RII와 함께 홍콩을 여행하며 무척 즐거웠습니다. 물론 아직 이 낯선 카메라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해 쭉 사용하던 라이카 카메라를 함께 가져 갔지만 같은 35mm 풀 프레임 카메라임에도 이 카메라가 손에 익은 제 카메라를 압도하는 순간이 꽤 많았습니다. 대부분은 좁은 실내와 복잡한 거리, 까만 밤, 조용한 실내 등 그동안 카메라를 꺼내기 망설였던 '찰나'였고, 그 결과 제게는 그동안 없던 장르의 사진들이 새롭게 생겼습니다. 비행기나 택시 안에서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비가 오는 홍콩의 밤거리에서 한 손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왼 손에 우산이 있던 이 날, 평소라면 사진을 찍지 못했을 거에요
카메라가 작아지니 주변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마주 선 깜찍한 아이 모델의 표정도 한결 자연스럽습니다. 자연스러운 거리 풍경이나 순간 겹쳐지는 묘한 장면 연출에 감흥을 느끼는 제게는 이 작은 카메라로 새롭게 얻은 촬영 스타일이 역시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늘 사용하던 크고 무거운 카메라보다 이 카메라를 꺼내는 비중이 커졌습니다. 카메라가 가벼워진 만큼 그 안에 담기는 장면 역시 조금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졌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작품 사진을 찍을 것이 아니라면 여행의 추억을 사진으로 '딱, 딱' 끊어 내는 이 카메라의 작은 크기와 빠른 AF가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일행이 있을 때 사진을 찍느라 종종 일행을 놓치거나 기다리게 하기 마련인데 이 카메라는 걸음을 살짝만 멈추고 금방 담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카메라가 작기만 한 카메라는 아니죠. 아주 작고 가벼워 마치 똑딱이 카메라처럼 눌러 대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카메라는 풀 프레임 카메라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이미지 센서, 4240만 화소의 놀라움
DSC-RX1RM2 | 35mm | F2.0 | 1/125 | ISO 800 | 7952 × 5304
사실 제게는 풀 프레임 카메라가 이만큼 작다는 것만으로 충분 합니다만 RX1R II는 크기 이상의 놀라움을 보입니다. 이 카메라의 트레이드마크인 풀 프레임 이미지 센서는 4240만 화소의 Exmor R CMOS 이미지 센서로 현재 소니의 최상위 미러리스 카메라인 A7R II에 탑재된 것과 동일합니다. 즉 이미지 품질로서는 현재 소니의 카메라 중 최상위에 해당 한다는 것이죠. 물론 가격 역시 가장 윗자리를 차지합니다. 초고화소와 함께 399개의 위상차 AF 영역을 포함해 초고속 Hybrid AF 성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숫자'로 압도하는 42400000화소.
100% 확대 이미지
RX1R II의 접사를 이용해 사과 한 알을 찍고 100% 확대해 확인해보니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생생하게 표현됩니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던 아주 작은 부분까지 다 담아내는 4240만 화소의 디테일은 숫자로 전달하는 것보다 실제로 볼 때 그 힘을 더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초고화소는 이미지 일부분을 추출해 사용할 때 보다 나은 결과물을 보장하기에 RX1R II이 가진 35mm 단렌즈의 한계를 어느정도 상쇄하고 있습니다. 표면 질감, 머리카락 한 올까지 표현하는 능력은 고화소 이미지에서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이점 이겠죠.
[ RX1R II의 4200만 고화소 이미지]
100% 확대 |
촬영한 이미지를 100% 확대해 보며 느끼는 놀라움은 2000만 화소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실제로 동물원의 저 주먹만한 원숭이는 나무 사이에서 눈으로 발견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장면 전체를 찍고 100% 확대하니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잘 보였습니다. 화면에 무척 작게 찍힌 자동차의 번호판까지 식별 가능한 디테일 역시 만족스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숭이 종이라는 이 원숭이는 주먹만한 크기에 관람로가 꽤 멀리 위치해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4240만 화소 이미지가 제 몫을 해냈습니다. MF 촬영으로 대략 초점을 맞추고 촬영한 후 이미지를 확대해 보면 원숭이의 표정과 움직임을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촬영한 이미지를 용도에 맞게 크롭(Crop)해 사용하면 망원 렌즈 부럽지 않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죠. 35mm 단렌즈에 대한 걱정을 고화소 덕분에 한결 덜었습니다.
전자식 로우 패스 필터
RX1의 후속 제품이 RX1 II가 아닌 RX1R II인 것은 로우패스 필터 유/무로 구분되던 RX1/RX1R 라인업이 RX1R II로 통합 되었기 때문입니다. RX1RII는 최초로 전자식 로우 패스필터 시스템을 채용해 해상력을 극대화한 LPF OFF와 모아레 현상 억제를 위한 LPF ON 촬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패브릭 등 조밀한 패턴의 피사체에서 발생하는 모아레 현상을 전자식 로우패스 필터로 억제하면서 풍경 촬영에서는 로우패스 필터 효과를 해제해 4240만 화소의 해상력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대부분이 자유 촬영이있던 터라 저는 대부분의 촬영을 LPF Auto로 해서 그 차이를 심도 있게 테스트 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몇몇 촬영에서 LPF 효과를 바꿔가며 촬영해 보았는데 100% 확대에서 다소 차이는 있었습니다만 4240만 화소 이미지 자체가 워낙 선예하고 Zeiss 35mm F2 Sonnar T* 렌즈의 성능이 뛰어나 LPF 설정 이미지가 해상력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최대 ISO 409600의 고감도 촬영
향상된 이미지 센서 성능과 Bionz X 프로세서의 조합으로 고감도 이미지 품질에서도 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RX1R II의 최대 ISO는 409600으로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초고감도를 지원합니다. 실제 사용해보니 ISO 6400까지는 노이즈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RX1의 저감도 이미지에서는 충분히 만족하면서도 ISO 3200 이상의 고감도에서 아쉬움을 느낀 기억이 있는데 새로운 센서와 프로세서로 대폭 업데이트 된 느낌입니다.
RX1R II | 35mm | F2.2 | 1/60 | ISO 1600
100% 확대
이제는 비교적 저감도에 속하는 ISO 1600의 테스트 결과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습니다. 현재 출시된 대부분의 카메라들이 ISO 1600에서는 깨끗한 결과물을 내 주거든요. 다만 RX1R II의 이미지는 그보다 조금 더 고운 느낌입니다. 잔 노이즈가 보이긴 하지만 윤곽선과 명/암부 경계가 매우 또렷해 리사이즈한 이미지에서는 노이즈를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RX1R II | 35mm | F2.0 | 1/60 | ISO 2500
100% 확대
RX1R II | 35mm | F2.0 | 1/125 | ISO 3200
100% 확대
ISO 2500과 ISO 3200은 실내/야간에서 사용자를 가장 고민하게 만드는 저/고감도의 경계에 해당합니다. 이 정도 감도에서도 RX1R II 이미지는 ISO 1600의 이미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암부 노이즈가 다소 증가했지만 역시나 모니터나 스마트폰, 태블릿 화면 크기로 보았을 때는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RX1R II | 35mm | F4.0 | 1/100 | ISO 6400
100% 확대
RX1R II | 35mm | F2.0 | 1/15 | ISO 6400
100% 확대
ISO 6400 촬영부터 노이즈가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윤곽선이 조금씩 모호해지고 컬러 노이즈도 조금씩 올라오네요. 하지만 이 확대 이미지가 4240만 화소의 초고화소 이미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디테일 손실이 적은 편입니다. 실제로 저도 여행 내내 ISO 설정을 최대 ISO를 6400으로 제한한 '자동 설정'으로 촬영 했습니다. 그리고 야간의 ISO 6400 이미지에서도 화질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고감도를 걱정하지 않고 야간/실내 촬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동안 사용하던 라이카 카메라와 가장 큰 차이 중 하나였습니다. 또 후속 제품이 나오면 그 땐 RX1R II의 고감도 성능과 비교하며 아쉬움을 토로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RX1R II의 고감도 이미지 품질은 동급 카메라는 물론 현재 출시된 카메라를 통틀어서도 최상위에 있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35mm, Zeiss Sonnar T* 렌즈
이 작은 카메라의 출시 가격은 389만원입니다. 작다고 '콤팩트 카메라'로 얕봤다가는 화들짝 놀랄 액수입니다. 물론 이 카메라 안에 든 센서나 렌즈, 성능 등의 가치를 하나하나 듣게 된다면 수긍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선뜻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닙니다. 실제 이 카메라의 구매층 역시 극소수의 마니아층에 한정돼 있고요.
그중 이 카메라의 렌즈에 대해 설명 하라고 한다면 389원의 절반에 가까운, 적어도 150만원의 가치는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만큼 RX1R II에 장착된 Zeiss Sonnar T* 35mm F2 렌즈는 '풀 프레임'이라는 이 카메라의 상징성 못지 않은 핵심 요소입니다. 카메라 크기에 비해 다소 크지만 풀 프레임의 35mm 렌즈임을 감안하면 매우 작고 F2.0의 밝은 개방 조리개 값을 가지고 있습니다. Zeiss의 명성에 걸맞은 높은 광학 성능과 최대 20cm 까지 근접할 수 있는 접사 모드도 지원합니다. 만약 RX1 시리즈에 소니의 G 렌즈가 탑재 됐다면 아마 저는 구매를 고려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Zeiss Sonnar T* 렌즈는 이 카메라의 화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Zeiss Sonnar T* 35mm F2
35mm 초점거리
7군 8매 구성 (비구면 AA 렌즈 3매)
F2.0 - 16의 조리개 값
9매의 원형 조리개
Zeiss T* 코팅
기계식 조리개 링
20cm 매크로 모드
49mm 필터 구경
비구면 렌즈 3매를 포함한 7군 8매의 구성에 F2.0의 최대 개방 조리개 값, T* 코팅, 20cm 매크로 모드까지, RX1 출시 후 렌즈 교환식 미러리스 A7 시리즈 사용자들이 '따로 떼서 팔아라'라는 요청을 할 정도로 우수한 렌즈입니다. 무엇보다 렌즈 고정식 카메라의 이점을 살려 크기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화질 역시 최적화 했습니다. 여러모로 35mm 렌즈 하나만 사용하는 제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구조입니다. 사양과 더불어 실제 성능에서도 이 Zeiss Sonnar T* 렌즈는 수많은 FE 마운트 Zeiss 교환렌즈에 뒤지지 않는 고성능을 자랑합니다. 해상력이 특히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주변부 화질과 AF 성능은 아쉽다는 평가입니다.
무엇이든 찍을 수 있는 35mm 렌즈
-풍경 사진-
-거리 스냅 / 여행 사진-
35mm 렌즈에 대한 예찬은 제 블로그의 수많은 포스팅이 이미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초점거리,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F2.0 조리개. 라이카 Summicron 35mm F2 ASPH. 렌즈로 시작된 35mm 사랑이 소니, 캐논, 올림푸스 등 많은 브랜드의 다양한 카메라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35mm의 장점은 광각보다 집중력 있고, 표준보다 친절하다는 것입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렌즈'랄까요. 실제로 풍경, 여행, 인물, 정물, 일상 스냅사진까지 제가 마주치게 되는 장면에서 35mm 렌즈는 다소간 아쉬움은 느낄지 모르지만 좌절을 안겨주지는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뭐든 촬영할 수 있는 '전천후 렌즈'입니다. 물론 35mm 하나만 고집한 제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요.
50mm는 조금 물러나야 하고, 28mm는 아무래도 제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35mm가 딱 좋습니다. 이런 35mm 렌즈의 매력을 아시는 분은 RX1R II 하나만으로 렌즈 교환에 대한 욕심 없이 모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렌즈 고정식 카메라'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표현의 폭이 굉장히 좁을 것이라 걱정하시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 아쉬우면 내가 조금 움직이면 되니까요. 필요할 때 조금 다가서고 물러나는 것이 무겁고 큰 카메라를 종일 매고 혹은 모시고 다니는 것보다 제게는 합리적 이었습니다.
50mm가 어딘가 촬영자가 지정한 특정 피사체에 시선을 강요한다면 35mm는 주인공과 배경이 적당한 조화를 보여 좋습니다. 5-10m 가량의 거리도 제 취향에 맞습니다. 생각보다 넓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장면의 이야기들을 아쉬움 없이 담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광각에 비해 왜곡이 적어 결과물을 편하게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35mm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런 장점 때문에 여행 내내 35mm 고정 렌즈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었습니다. 가끔 멀리 있는 작은 동물들을 당겨 보고 싶은 맘은 있었지만, 그럴 때 4240만 고화소가 달래 줬고요.
시선이 워낙 편하기 때문에 구도를 선정 하기에도 용이합니다. 예를 들어 테이블 위의 음식은 50mm 렌즈로 찍으면 음식만이 부각되지만, 35mm 렌즈라면 테이블 세팅과 함께 촬영할 수 있죠, 테이블 앞에서 일어나 까치발을 들고 음식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됩니다. F2.0의 조리개 값은 어두운 실내에서도 안정적인 촬영을 도와줬고 이 때의 심도 역시 적당 했습니다. 물론 20cm의 접사에서는 F4.0 이상의 조리개 값을 사용해야 조금 더 맛깔스럽게 표현이 가능합니다.
이 35mm 렌즈 하나로 저는 홍콩의 풍경과 밤거리, 음식과 숙소, 선물까지 모든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넓은 풍경을 다 담지 못한 아쉬움이나 먼 강 건너 장면을 더욱 임팩트 있게 담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보다는 편안한 시선으로 담긴 35mm 이미지에 대한 만족감이 더욱 큽니다.
RX1 시리즈를 비롯한 렌즈 고정식 하이엔드 카메라를 구매 하려는 분들에게 많은 '마니아'들이 '렌즈 하나로는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다거나 혹은 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렌즈 하나만으로 꽤 오랜 시간을 미련하게 보낸 저는 표현과 시선을 넓히기에는 단렌즈 하나로 다양한 장면에 대응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28/35/50 혹은 21/85/200mm까지 각 사진가에게 맞는 렌즈가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취향의 문제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크기와 화질을 최적화한 렌즈 고정식 카메라에 익숙하고,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런면에서 RX1R II은 35mm F2 렌즈만으로도 제게 굉장히 가치 있는 카메라였습니다.
최적화된 렌즈 성능에 대해서는 익히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로 주변부까지 굉장히 뛰어난 화질을 보였습니다. F2.0에서 조금 소프트해서 색다른 연출을 할 수 있어도 괜찮았을텐데 최대 개방부터 상당히 샤프한, 그야말로 '최신 디지털 카메라'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물론 작은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주변부 화질 저하 등의 한계도 있지만 제게 크게 문제되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부족함 없는 F2.0 조리개 값
Zeiss Sonnar T* 렌즈는 F2.0의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을 갖는 밝은 렌즈입니다. 풀 프레임 카메라의 F2.0 촬영은 매우 아름다운 배경 흐림을 연출하고 실내 촬영에서 셔터 속도 확보가 용이한 실질적인 장점도 있습니다. 위 이미지는 20cm 매크로 모드의 F2.0 촬영으로 매우 얕은 심도 표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웃 포커스를 위해 더 큰 카메라와 렌즈를 구매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35mm F2.0이면 부족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물론 '아웃 포커스 마니아'분들은 F1.4 / F1.2를 위해 조금 더 투자 하시겠지만.
F2.0 최대 개방과 근접 촬영을 적절히 활용하면 풀프레임 카메라 특유의 얕은 심도를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인물 촬영에 다소 불리한 35mm 렌즈이지만 상반신 정도는 아웃 포커스로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F2.0 최대 개방 촬영의 화질이 무척 좋아서 아웃 포커스 된 배경 위로 피사체가 매우 또렷하게 표현돼 이미지가 매우 세련되고 깔끔한 인상을 줍니다. 다른 35mm 렌즈를 사용할 때는 최대 개방에서의 주변부 화질과 비네팅, 해상력 저하 등을 신경 쓰며 조리개를 F2.8/4.0으로 설정해 정작 F2.0의 묘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적이 많은데 RX1R II의 최적화 된 구조에서는 이런 아쉬움을 쉽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왜곡
이런 고성능 렌즈에도 역시나 단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의 카메라를 위한 단 하나의 렌즈는 최적화된 설계로 A7의 웬만한 교환렌즈보다 뛰어난 화질을 보이지만 카메라 콘셉트에 맞춰 크기를 극단적으로 줄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주변부 화질의 한계가 발생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주변부 왜곡입니다. 애초에 걱정한 주변부 광량 저하는 불만을 느끼지 못했지만 모서리쪽으로 갈수록 눈에 띄는 왜곡이 신경 쓰이더군요. 아무래도 렌즈 사양에 비해 크기를 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인가 봅니다.
물론 이 왜곡은 소프트웨어 보정 옵션으로 반듯하게 '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로 RAW 촬영을 하는 사용자로서 보정 효과의 덕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RAW에서 느낀 이 왜곡의 아쉬움이 중요한 순간에 한번씩 마음을 아프게 하더군요.
일직선으로 뻗은 풍경에서 중심부가 다소 볼록해 보이는 왜곡은 제 의도와 맞지 않아 불만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후보정으로 왜곡을 보정하는 작업을 한 번 더 거쳐야 했습니다. 물론 요즘 라이트룸 등 관련 소프트웨어의 보정 기능이 대단히 좋아서 간단한 작업만으로도 의도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지만 이 왜곡이 제가 느낀 Zeiss Sonnar T*의 유일한 하지만 꽤 큰 단점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세월만큼 향상된 기능과 편의성
RX1R II은 약 3년만에, '후속제품이 나오지 않으려나 봐'라고 생각할 무렵 나온 RX1의 후속 제품으로 그 긴 세월 만큼의 업데이트가 이뤄졌습니다. 대표적인 이미지 센서의 변화 외에도 팝업식 뷰파인더와 틸트 LCD, 무선 통신 등이 더해져 기존 시리즈의 아쉬움을 대부분 해소하고 있습니다. 특히 카메라의 기본 성능 중 하나인 AF에서 현존 최고 성능의 이미지 센서로 명예 회복을 꾀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Fast Hybrid AF, How Fast?
RX1R II의 4240만 화소 Exmor R CMOS 이미지 센서는 센서 자체에 위상차 AF 센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용해 총 399개의 위상차 영역을 제공하는 Hybrid AF 시스템을 채용 했는데요, A7R II를 통해 검증받은 초고속 AF와 동체추적 성능이 RX1R II에서도 도입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발표 당시 대단 했었습니다. 실제로 사용해 본 RX1R II의 AF 성능은 굳이 RX1을 곁에 두고 한번씩 번갈아 테스트해 보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만큼의 향상입니다. 화면 중심부에 위치한 위상차 AF 영역에 피사체가 들어온다면 거의 실패하지 않을 정도의 정확성까지 갖췄습니다.
덕분에 RX1이었으면 매우 답답했을 심지어 촬영을 실패했을 법한 상황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진을 얻을 수 있던 것이 이러한 변화로 사용자가 얻는 실질적인 이점이 되겠죠. 사진의 성공/실패가 갈리는 순간을 종종 마주할테니까요. 특히 어두운 밤이나 실내에서 그 효과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다만 이 AF 성능이 간접적으로 체험한 A7R II과 동급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다'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렌즈 구조 상의 한계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초점을 검출하기 위해 대물렌즈가 이동하는 구간이 긴 편이라 근/원거리 피사체를 반복해 촬영하게 되면 가끔 AF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동안 사용해 본 수많은 AF 카메라와 비교하면 이 카메라의 AF 성능은 분명히 상급입니다. 다만 A7R II의 초고속 AF가 워낙 인상적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더불어 홍콩에서 저는 RX1R II의 AF 시스템이 아니었으면 얻지 못했을 사진들을 꽤 많이 얻었습니다.
렌즈 교체 없이 즐기는 20cm 접사
20cm의 매크로 모드는 기존 RX1 시리즈와 동일합니다. 렌즈가 같으니까요. 그래서 이것이 RX1R II만의 장점은 아니지만 하나의 카메라로 여행을 한다고 가정하면 일반 촬영과 매크로 촬영을 겸하는 이 렌즈의 성능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렌즈 경통의 매크로 조절 링을 돌려 촬영 모드를 전환하는 방식 역시 버튼을 통한 메뉴 설정보다 직관적이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풀 프레임의 풍푸한 표현과 4240만 고화소 덕분에 접사 결과물 역시 만족스럽습니다. 주로 음식 사진에서 활용했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라이카 카메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영역을 채워준 것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유용했던 편의 기능
그 외에도 이 카메라만의 특징인 팝업식 뷰파인더와 틸트 LCD에 대한 소감을 빼놓을 수 없겠죠. 작은 카메라의 4240만 화소 센서와 35mm F2.0렌즈가 만들어주는 이미지에 절대적인 가치를 둔 제 평가에서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부가기능'이기 때문에 큰 인상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틸트 LCD는 종종 하이/로우 앵글에서 도움을 받았지만 요즘 카메라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서요. 다만 팝업 형식의 전자 뷰파인더는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존 RX1이 메인 카메라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결국 방출하게 됐던 이유는 뷰파인더의 부재였는데요, 그것을 제법 큰 -A7 시리즈의 그것에 비견될만한- 뷰파인더로 채워 줬습니다. 그것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카메라 안에 수납하여 휴대성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형태로 말입니다. 파인더는 아직 전자식 뷰파인더의 이질감이 조금 남아 있지만 높은 해상도 덕분에 뷰가 깔끔하고 파인더 크기 역시 고급 카메라 답게 충분했습니다. RX1 시리즈의 외장 EVF 가격을 생각하면 매우 환영할만한 변화입니다. 그리고 실사용에서도 그 장점을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느낄 수 있습니다.
작은 크기에도 고급 카메라의 인터페이스를 유지한 것은 RX1 시리즈가 시작부터 매우 잘 설계된 제품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렌즈의 기계식 조리개 링과 노출보정 다이얼 덕분에 프로 사용자들도 부족하지 않는 조작감을 느낄 수 있고 Fn 버튼 설정을 통해 대부분의 설정을 메뉴 진입없이 변경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고급화는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혹 크기를 조금 더 줄이기 위해 인터페이스를 포기한다면 그것으로 이 시리즈는 가치의 절반을 잃게 될 테니까요.
아주 잘 만든 웰 메이드 '가전' 사진기
적고 나니 단점도 불편한 것도 많은 카메라 같습니다. 게다가 초고화소 때문에 이전보다 더 '예민'해진 것 같은 인상도 있습니다. 하지만 RX1 시리즈가 갖는 가치와 힘이 3년이 지난 현재, 후속 제품을 통해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했습니다. 처음 이 카메라를 보고 받은 충격 못지 않게 이 작은 카메라로 촬영한 4200만 화소 이미지를 보는 즐거움이 대단했습니다. 현재 제가 마음에 두고 있는 모든 카메라 중 단순히 '결과물'을 기준으로 순위를 나열한다면 RX1R II은 단연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할 카메라입니다.
하지만 '가전'이라는 말엔 역시나 부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지의 기본이 되는 이미지 센서와 렌즈 등의 하드웨어부터 구조상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이미지 보정 효과, Wi-Fi 등의 소프트웨어까지 나무랄 데 없는 카메라지만 사진을 찍다보면 '결과물'에 너무 집중해 '찍는 재미'에 다소 소홀한 느낌이 있습니다. 가격대비 다소 부족한 만듦새나 버튼과 다이얼의 조작감이 클래식 카메라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기대했던 제게는 못내 아쉬웠습니다.
물론 여전히 이 카메라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풀프레임 카메라이며 센서와 렌즈의 성능 역시 최상급입니다. 이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싶던 RX1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멋진 것들을 챙겨 세상에 나왔고 저는 몇가지 아주 작은 단점만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때문에 제가 줄곧 이야기했던 휴대성과 뛰어난 화질 그 둘에 가장 큰 가치를 두신다면 이 카메라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35mm 렌즈 하나만으로 사진 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감히 '완벽'을 논할 정도의 디지털 카메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 평가에는 '가전'이란 주석이 붙지만요.
'손 맛'이라는 트집을 잡았지만 홍콩 여행에서 저는 RX1R II의 매력을 만끽했습니다. 이 카메라가 아니었으면 소중한 몇 장면을 그냥 흘려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여행에도 기회가 된다면 작은 가방에 이 RX1R II를 챙기고 싶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카메라를 궁금해 하시고 아직 고민 중인 분들에게 지난 제 경험이 작게나마 팁이 되길 바랍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