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간 빈 머리로 허전하게 지낸 Summicron 35mm asph 렌즈에 드디어 후드를 씌워 줬습니다. 종종 필요하다고 생각 했음에도 비싼 가격 때문에 일년간을 망설였는데 올 해 더 많이 다녀 보고자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역시 이 문장이 떠오릅니다. '지르면 편하다'
Summicron 35mm 렌즈용 후드
라이카 35mm 렌즈는 Summicron 35mm pre-asph.로 시작 했습니다. '보케의 왕'이라 불리던 렌즈는 작은 크기와 매력적인 외관으로 큰 만족을 줬지만 실버 렌즈의 자태를 보고 한 순간에 카드를 내민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M9을 사용하던 중에 영입한 이 렌즈는 멋진 외관과 뛰어난 성능이 대단히 만족스러운 렌즈로 M typ 240으로 기변한 후에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렌즈는 플라스틱 사각 후드를 사용합니다. 간결한 디자인과 가볍고 관리하기 편한 플라스틱 소재 덕분에 매우 실용적입니다. 물론 라이카 액세서리 가격이 으레 그렇듯 플라스틱 쪼가리 주제에 가격이 무시무시합니다만, 처음 라이카를 사용할 때는 이 사각 후드를 단 렌즈가 그렇게 써 보고 싶었죠. DSLR 카메라를 쓸 때는 이런 스타일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작년 모스크바 여행에서 슬프게도 이 사각 후드는 장렬히 전사 했습니다. 덕분에 렌즈는 여전히 무사히 제 곁에 있지만 그 후 어딘가 휑한 느낌으로 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뭐 검정색 후드가 없으니 원래의 실버 렌즈가 더 돋보이기도 했지만 렌즈 보호나 잡광 제거 등의 본래 용도도 무시할 수 없기에 새 후드 구매를 쭉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매우 비싼 편이어서 망설인 시간이 어느덧 일년, 그 동안 후드 살 금액에서 조금(?) 더 보태 렌즈를 추가하고 후드값으로 차라리 제 스웨터 한 벌을 구매 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 여행을 앞두고 이제는 정말 하나 씌워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사각 후드 외에 다른 후드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그 중 마음을 흔든 사진이 있었으니,
원형 후드를 씌운 이 사진이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이 후드의 정보를 알아보니 12504 후드로 Summilux pre-asph.렌즈와 함께 발매된 후드라고 하더라고요. 현재는 블랙 페인트와 실버/블랙 크롬의 한정판 렌즈와 함께 발매되는 '특별한' 후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12504 후드를 구매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현재 단독으로 판매되는 상품이 아니라 혹시 카메라 숍에 중고 물품이 나오길 기다려야 했죠. 그리고,
며칠 전 우연히 평소 자주 종종 가던 숍의 인터넷 페이지에서 이 후드를 발견했습니다.
그래, 일년 고민 했으면 이제 됐다 하며 오랜만에 충무로로 갔습니다.
도착한 곳은 충무로 '우리사'. 라이카 관련 상품으로는 유명한 카메라 숍입니다. 점포는 작지만 저 안에 진열된 카메라와 렌즈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기다렸던 12504 후드를 렌즈에 끼워 보았습니다.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꼭 맞습니다. 필름 MP 카메라 보다는 못하지만 사각 후드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렵게 숍을 찾은 김에 35mm 구형 렌즈에 많이 사용하시는 IROOA 후드도 한 번 결합해 보았습니다. Summicron 35mm 1세대인 6군8매나 35mm Summaron 렌즈 등 구형 렌즈에 많이 사용하시는 후드인데 현행 렌즈와도 생각보다 잘 어울립니다. 경통과 일체감 좋은 이루아 후드의 실버 경통에 순간 마음이 빼앗겨 잠시 고민 했지만 결국 선택은 원래 결정대로 1번으로 했습니다.
아, 드디어 샀습니다. 오는 길엔 사진도 안 찍을 거면서 오랜만에 카메라를 어깨에 매고 후드를 만지작 거리며 왔습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카드 명세서 나오기 전까지는 즐기려고요.
돌아와서 다시 유심히 살펴 봅니다. 상태가 생각보다 깔끔해서 좋습니다. 후드에는 LEICA의 예전 명칭인 LEITZ WETZLAR GERMANY가 각인돼 있습니다. 최근 생산되는 후드의 문구는 LEICA CAMERA GERMANY인 것을 생각하면 연식이 좀 된 녀석 같습니다.
Summilux 35mm pre-asph. 와 대부분의 Summicron 35mm 등 39mm 필터 구경을 가진 렌즈들과 호환 된다는 소개입니다. 스크류 방식이 아니라 옆쪽 돌출 부분을 눌러 렌즈 체결부에 '물리는' 클립 방식입니다. 때문에 체결 후에도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단단히 고정되는 사각 후드와 달라 처음에는 조금 생소 했어요.
이렇게 후드를 씌우니 다른 렌즈가 된 것 같습니다. 라이카 제품들은 성능 못지 않게 디자인과 이런 '코스메틱'에도 많이들 신경 쓰시는데 그런 면에서 후드 가격은 매우 비싸지만 이렇게 드레스-업 해주니 새삼 보기가 좋아 들고 나가고 싶어 집니다. 역시 후드의 기능에 대한 제 생각들은 핑계였나 봅니다. 저는 이 후드가 갖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최종 목표는 가질 수 없는 이 실버 후드..
일년만에 후드도 구매하고, 렌즈도 채워가며 여행 준비가 잘 되어 갑니다. 정말로 당장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