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난 50mm 렌즈가 하나 필요했었어'
실내/접사용 서브 카메라를 구매하려는 계획을 이 렌즈를 보는 순간 잠시 잊었습니다.
그렇게 이 렌즈는 제 인생에 한 번도 없던 존재였다 불과 십여분만에 안으로 파고 들어왔습니다.
작은 크기의 50mm F2.8 렌즈, 라이카 Elmar 50mm, 흔히 '레드핏 엘마'라고 부르는 렌즈입니다.
나이가 무려...!!
LEICA ELMAR-M 50mm
- 1957년부터 1974년까지 제조
- 50mm 초점거리
- F2.8-16 조리개
- 침동식 구조
- 15개의 원형 조리개 날
- 약 21mm(침동시), 47mm(확장시)의 길이
- 220g의 무게
- 39mm 필터 지름
최후기 생산이 1974년이니 무려 저보다 열살 가량 많은 나이입니다. 제 렌즈의 시리얼이 23XX로 시작되니 74년보다 훨씬 이전에 제작된, 40년이 넘은 렌즈일 것입니다. 올드 렌즈를 많이 사용해보지 않았습니다만, 만남에는 항상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아무래도 현행 렌즈의 '쨍한' 샤프니스를 선호하는 제게 이 렌즈의 '글로우'니 '부드러운 묘사' 같은 특성들이 제 취향에 맞지 않을까봐 걱정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사실 아직도 이 렌즈에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사용 중인 Summicron 35mm ASPH 렌즈가 워낙에 선명한 녀석이라서요.
이 렌즈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침동식 구조로 50mm 렌즈임에도 이렇게 작은 크기라는 점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종종 50mm가 필요할 때 주머니나 가방 포켓에서 꺼내 몇 장을 담을 렌즈가 필요했거든요. 그런 점에서 기존 Summicron이나 Summilux 렌즈는 크기와 부피가 확실히 부담이 됐고, 이 Elmar 50mm 렌즈가 적당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가격도 그렇고요.
하지만 너무도 디지털 스러운 M Typ 240은 올드 렌즈와는 외형의 조화가 그리 좋지 못합니다. 뭐, 외관을 조금 포기하고 휴대성을 선택했다고 해 두죠.
이 렌즈는 침동식 구조로 사용하지 않을 때는 이렇게 경통을 후퇴시켜 작은 크기로 보관합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 경통을 당겨 고정시키게 되는데,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일반적인 DSLR이나 미러리스용 렌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어찌 보면 연약한 형태이지요? 저 간신히 사이를 잇는 경통이 35mm 필름과 이미지 센서에 빛을 전달한다니 신기합니다. 어쨌건 이 렌즈로 촬영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렇게 경통을 당겨야 하고 초점링과 조리개 링을 조작해야 하죠.
생소한 모양도 모양이거니와 가운데가 휑한 이 경통은 촬영하는 데 만만찮은 적응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별 의식하지 않았던 왼손가락이 꽤나 무안해지는 구조더군요.
구형 렌즈답게 조리개 역시 1스톱 간격으로만 조정이 가능합니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초점 조절 놉이 있고, 무한대 잠금도 지원한다는 것이었어요.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역시나 M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형입니다. 아, 가볍긴 무척 가볍더군요. 이건 기존 35mm 실버 렌즈가 워낙 무거워서겠지만.
-근데 또 이렇게 앞에서 보니 멋지네요-
올드 렌즈인만큼 LEICA 브랜드 대신 LEITZ WETZLAR 브랜드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폰트 역시 현재의 라이카 폰트와 다른 것을 사용하고 있고요.
-Summicron-M 35mm F2 ASPH 렌즈와 Elmar-M 50mm F2.8 렌즈. 30여년의 터울이 있지만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가족입니다-
35mm 하나만으로 일년을 꼬박 썼습니다. 모스크바, 프라하, 오사카부터 홍콩까지 오직 35mm만으로 많이도 다니고 또 찍었습니다. 이제 적응이 조금 끝났다 싶어 50mm를 추가해 둘로 다녀 보려고 합니다. 물론 언제 또 이 50mm가 퇴출될 지는 알 수 없지만요. 일단 올드렌즈 특유의 클래식한 외형과 휴대성에서는 합격점. 카메라와의 어울림이나 화질에 있어선 아직 물음표입니다.
날도 춥고, 시간도 많지 않아 이 Elmar 렌즈를 아직 제대로 사용해 보지 못했습니다만, 간단히 찍어본 사진 몇 장으로 설익은 소감을 남기자면,
- ELMAR 50mm로 촬영한 이미지 (LEICA M Typ240) -
"지금은 모르겠는데, 곧 맘에 들어올 것 같다"
하루정도 별 것 아닌 셔터를 날려보니 이 렌즈의 단점이 아주 많이 보입니다. 촬영 때마다 경통을 빼서 고정시키는 번거로움은 물론, 조리개 조절도 세세하지 못하고 초점링을 돌릴 때 전면 경통 전체가 돌아가 조리개를 바꾸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올드렌즈다 보니 현행 렌즈에선 걱정 없이 최대 개방으로 찍었는데 이 렌즈의 F2.8을 사용하면서는 머릿속에 의문 부호가 생겼습니다.
생각대로 F2.8 이미지는 대체로 현행 렌즈보다 소프트한 편이고 침동식의 불편함은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적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존 사용하던 35mm Summicron ASPH 조합보다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장비가 가벼워지고 렌즈를 수납하니 점퍼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슬림해졌습니다. 올드 렌즈 특유의 느낌은 역광에선 매우 약했지만 미세한 빛에서 오묘한 느낌을 줬습니다. 보정 없이도 이른바 '감성 사진'을 연출 해줬달까요?
좋은 듯 별로이기도 하고, 맘에 들지 않지만 묘하게 매력있는 이 렌즈는 Summicron 50mm 다시 찾아보게 만들면서도 당분간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아직 제 손에 익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결국 제가 이 렌즈를 제어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현행 렌즈의 완벽함과는 다른 의외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이 렌즈도 한 일년쯤 써보고 평가를 해 볼까봐요. 그 때까지 제 곁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