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홍콩여행 - #18 에필로그, 열 장의 사진으로 추억하는 홍콩

어느덧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2015년과 2016년의 차이니 실제보다 더 오래된 것 같기도 합니다. 운 좋게 지난 12월 2015년 마지막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제게는 미지의 땅이었던 홍콩으로요. 선입견 때문에 한 번도 여행을 생각하지 않았던 홍콩은 도착한지 한시간이 채 되지 않아 특유의 화려하고 다양한 색으로 제 눈을 현혹 시켰고 2박 3일간 그것들에 취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녔습니다. 홍콩 오션 파크의 눈부시듯 화려한 크리스마스 축제와 눈으로 더 만족했던 음식들이 있었고, 모양새에 꽤나 신경쓰는 듯한 사람들의 움직임, 보정한 사진처럼 강렬한 색의 야경이 있었습니다.

다녀온 곳, 먹은 것, 즐기고 본 것들만 이야기하다 보니 맘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아 마지막으로 지난 겨울 홍콩여행의 소회를 열 장의 장면과 함께 털어놓으려 합니다.

#1 홍콩 국제 공항, 이 여행에 몰입하게 한 그 식당의 색

이 장면은 지난 여행의 베스트 씬은 아니었지만 결코 잊혀지지 않을 장면입니다. 생애 가장 힘들었던 네 시간의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차량을 기다리던 길에 발견한 터미널의 작은 식당, 창 밖에 걸린 닭과 오리, 오징어 등 고기들이 내는 색과 식당의 조명, 그 사이로 무심하게 그것들을 자르고 썰어대는 사람들의 표정에 순간 정신을 빼앗겨서 가지고 간 두 대의 카메라로 족히 스무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도착할 때까지도 한 번도 기대한 적 없는 홍콩이란 곳이 이 식당의 색과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아주 흥미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2박 3일간 오션파크와 센트럴, 코즈웨이 베이, 침사추이, 소호, 란 콰이 펑 등 바쁘게 돌아다닌 곳곳에서 이 곳보다 더 강렬한 색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으로 행복한 여행을 했습니다. 물론 더 멋진 장면들을 많이 보았지만 이 장면은 제 홍콩 여행의 시작과도 같은 것이라 특별합니다. 아쉽게도 이 장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홍콩과 그리고 이 여행과 아직 서먹했던 때였거든요.

#2 맛있는 음식, 품위있는 사람과 장소들

그렇게 이어진 첫번째 식사, 홍콩 타임스퀘어의 멋진 중식 레스토랑에서 익숙하고 또 새로운 다양한 음식들로 홍콩에서 맞는 첫번째 밤을 자축 했습니다. 대부분의 여행을 혼자 다닌 제게 여러 일행 그리고 현지인과 함께하는 '만찬'은 영 어색했지만 곧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들과 저의 차이점 그리고 꼭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금방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날 먹은 요리들은 중화권 음식에 대한 제 선입견을 말끔히 씻어낼 정도로 맛이 좋았습니다. 공항에서 만난 멋진 색과 대비가 특별한 저녁 식사로 이어지며 여행에 대한 기대는 최고조로 올랐고 이 때부터 저는 2박 3일의 짧은 여행 시간을 원망하며 다음 여행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제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모에 부드러운 표정이 좋았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으면 마주보고 서로 웃음이 터졌는데 이럴 땐 오히려 제가 이 사람들의 말을 하지 못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날 Pak Loh Chiu Chow에는 저녁 식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홀을 가득 채웠고 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무척 여유로웠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도시는 무척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곳이었지만 여행 내내 여유로운 느낌이 들었던 것은 이 날 보았던 이 장면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3 쓴웃음 같던 거리, 코즈웨이 베이

분명 제게는 밝고 환한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첫날부터 저를 곤란하게 만든 폭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저녁식사 후 한시간 조금 넘게 코즈웨이 베이 골목 골목을 특별한 목적지 없이 걸으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낡은 건물들을 유독 따갑게 빗방울이 때리는 모습이 어딘가 서글픈 표정같아 보인다고. 대낮 못지 않게 환한 명품 브랜드의 간판 조명 사이 골목길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낡았고 그 빈부의 격차처럼 골목은 무척 어두웠습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반복하는 골목의 풍경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연신 감탄하며 걷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 손으로 우산을 드느라 마음에 드는 몇몇 장면은 결국 놓치고 사진 한 장 찍으려면 몇 초를 낑낑대야 했지만 그만큼 장면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각인돼 있습니다.

비에 흠뻑 젖은 특별한 감정으로 홍콩을 맞이한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썩 괜찮은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나머지 이틀이 초여름처럼 환하고 맑지 않았다면 아마 이 날을 원망했을지도 모르겠어요.

#4 두 팔 벌려 맞아준 홍콩 오션 파크

2박 3일 짧은 겨울 여행의 주무대였던 홍콩 오션파크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 여행은 홍콩 오션파크에서 조금 일찍 크리스마스를 맞기 위해 떠났었고, 포근한 날씨와 가벼운 차림으로 겨울 축제를 맞는 특별함을 만끽했습니다. 혼을 쏙 빼앗긴 펭귄 체험과 아직도 아찔한 롤러코스터 헤어 레이저, 다시 타자고 하면 한참 망설일 케이블 카와 20m 대형 트리 앞에서의 기념 촬영 등 이틀의 시간동안 즐긴 오션 파크의 겨울 축제는 정말 오랜만에 저를 아이처럼 소리 지르게 했습니다. 홍콩에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환상 같은데 오션 파크 관람은 수족관과 놀이동산, 휴양림과 동물원 등 변화 무쌍한 경험들 덕분에 그 속에서 또 하나의 환상 탐험을 한 것 같았습니다.

이틀 내내 머물었던 곳이라 이제 한동안은 다시 가고싶지 않겠지만 연인과 함께라면 또 모르겠어요.

#5 만화경 아이스 쇼로 시작된 크리스마스 축제

오션 파크를 방문한 첫 날 감상한 만화경 아이스 쇼 역시 기억에 남는 경험입니다. 이 쇼를 시작으로 2015년 오션 파크 축제가 시작 됐고 지금 이 글을 쓰는 현재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온화한 이 도시의 날씨에서 잠시 떠나 쌀쌀한 날씨에 얼음판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움직임을 감상하는 재미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무희들의 화려한 의상도 의상이지만 무대에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색색 조명과 대형 스크린의 장면들이 이 축제의 테마인 '만화경'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보는 이런 쇼는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이 만화경 아이스 쇼는 꼭 한번 볼 가치가 있습니다.

#6 온화한 날씨가 덧칠한 색,색,색.

다녀온 후 저는 홍콩의 '색'을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굳이 묶는다면 한국과 같은 아시아권 국가인데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중화권 특유의 강한 색에 대한 선호 때문인지 홍콩에서 본 장면들은 형태보다 색으로 많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제가 갔던 도시 중 단연 가장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풍경뿐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건물과 구조물, 그리고 그들의 옷차림과 표정으로도 이어집니다. 심지어 사과 한 알까지 마치 물감을 칠한 듯 새빨간 이 도시, 낮에는 햇살을 받아 더욱 진해진 색으로, 밤에는 비현실처럼 강렬한 조명으로 쉬지 않고 눈을 간지르는 이 곳의 색은 여행하는 제 감정까지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이유없이 점점 더 즐거워지고 들뜨는 제 모습을 보니 색이 과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 종종 이 도시의 강렬한 색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7 여행을 잠시 잊었던 여행

날씨와 풍경도, 음식, 사람과 발에 닿는 길의 촉감까지 낯설지 않았습니다. 비교적 가까운 곳인데다 어딘가 제가 사는 곳과 닮은 것들을 거리 곳곳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 종종 이 곳이 네 시간을 날아 도착하는 말 통하지 않는 도시라는 것을 잊을 정도였습니다. 오션 파크 내 올드 홍콩은 옛 홍콩 거리를 재현해 놓은 짧은 거리였는데 이 곳이 묘하게 제가 어릴 적 다녔던 거리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더군요. 비록 글자들은 낯설었지만 이 짧은 거리를 끝에서 끝으로 몇 번이나 왕복하며 한번 더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식사를 하고 아침 산책을 하며 다르지만 낯설지 않은 이 곳을 더욱 적극적으로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올 날이 되자 마침내는 이 거리와 제가 사는 곳이 너무 닮아보여 굳이 신기하게 느끼지도, 사진을 찍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서울에 돌아오고 나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묘하게 편안하고 익숙한 여행이었습니다. 다시 홍콩 여행 일정이 잡힌다면 환전 빼고는 아무 준비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8 다시 없을 특별한 경험들

특별한 기회로 찾은 오션파크에서는 그에 걸맞은 이색적인 경험이 많았습니다. 대형 수족관 그랜드 아쿠아리움을 배경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넵튠스 레스토랑은 누구나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고 홍콩섬의 해안선을 내려다보며 특제 등갈비 요리를 뜯었던 베이뷰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역시 그랬습니다. 주로 식사를 하며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은 먹는 것에 약한가 봐요.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 생각보다도 잠시나마 그런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에 큰 가치를 둔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이런 기회가 다시 올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지만 굳이 이런 특별한 식사나 체험이 아니더라도 이 여행이 다시 이 모습 그대로 제게 돌아올 리는 없겠죠. 다양한 관람과 체험, 식사와 그 후의 짜릿한 심야 외출까지. 홍콩에서의 경험들은 하나같이 다 새 것이었고 그래서 그 속에 있는 동안에 잊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지금 이렇게 그 시간을 그리워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거든요.

#9 우연히 돌아본 바로 그 곳에 펼쳐진 가슴 설렌 홍콩의 야경

말로만 듣고 간혹 사진으로만 감상한 홍콩의 야경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바쁜 일정에 생각보다 자유 시간이 적었고 저녁 식사 후의 짬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것이 점심식사 후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밤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홍콩에서의 두번째 밤, 바쁜 시간을 조금이라도 잡고자 택시를 타고 스타페리 선착장으로 향했고 단돈 2.5 홍콩 달러에 즐긴 스타 페리의 멋진 야경이 기대감을 고조 시켰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침사추이 초입, 시계탑 앞 광장은 사방으로 눈이 닿는 곳마다 사진으로 보던 바로 그 홍콩의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그 절정은 재미없는 3D 라이트 쇼에 지쳐 고개를 등 뒤로 돌렸을 때 펼쳐졌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치장한 홍콩 센트럴의 화려한 야경 속으로 빨간 범선이 파고드는 장면이 사진으로 보던 장면보다 더 멋져서 이내 완전히 돌아 앉게 됐습니다.

이 야경을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찍은 후에야 '홍콩에 왔구나'라는 중얼거림으로 짧은 홍콩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바쁜 일정을 핑계로 이 외출을 포기 했다면 제 홍콩 여행의 감동도 이야기도 절반 이하로 줄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문득 저 범선을 직접 타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12월 홍콩의 겨울 야경은 화려하고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10 밤에 더 아름다운 도시, 홍콩

공식적인 여행 일정은 돌아오는 날 오후 공항에 출발할 때까지 빡빡하게 채워졌지만 제 홍콩 여행의 마지막 장면은 두번째 밤 소호와 란 콰이 펑에서 마주친 장면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소호 거리 풍경에 떠밀려 내려오던 중에 찍은 이 장면에는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고 하나하나가 힘이 있어 좋았습니다. 한국이었다면 이렇게 시끄러운 거리를 당장 탈출해 집이나 숙소로 향했겠지만 이것마저 이 도시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묘하게 흥분돼서 소호부터 란 콰이 펑까지 짧지 않은 길을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몇 장이나 얻게 됐습니다.

조명은 비현실적으로 붉고 노랗고 그 사이 골목길은 흔한 가로등 하나 없어 칠흑 같았습니다. 그 대비가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해서 쉽게 잊을 수 없습니다. 이 날 열 두시가 넘는 시각까지 이 곳을 배회 했고 바가지 요금을 지불하며 겨우 숙소에 돌아 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지난 홍콩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것을 꼽으라면 이 소호와 란 콰이 펑의 밤을 너무 일찍 놓았다는 것입니다. 혹 다시 홍콩에 가게 된다면 하루는 꼭 해가 지기 전 늦은 오후부터 다음 해가 뜰 때까지 이 화려한 밤풍경 속에서 저 역시 이 이야기 중 하나가 되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여행도 이야기도 끝났습니다.

여기까지가 2015년 제 여행을 마무리한 2015년 12월의 장면입니다.

2박 3일의 터무니 없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첫 홍콩 여행을 맘껏 즐겼습니다. 봄처럼 온화한 날씨와 맛있는 먹거리로 처음 걷는 땅의 어색함이나 낯선 표정의 어려움같은 것이 없었던, 그래서 종종 이것이 여행이라는 것조차 잊고 한참을 걸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짧은 여행 이야기가 다녀온 시간보다 몇 배는 더 긴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다시, 가능한 한 빨리 다음 여행 이야기로 마주 앉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