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보니 그렇게 됐다
or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
새해의 시작, 그 일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하루 아니 반나절만에 시작해서 곧 끝난 일입니다.
35mm Summicron ASPH 렌즈 하나로 일년을 꼬박 지내며 '이게 곧 내 눈이야'라는 거창한 다짐으로 가지고 있는 28mm Elmarit, 50mm Summilux 렌즈를 방출한지 일년여만에 다시 채워졌습니다. 우연히 좋은 상태의 렌즈를 발견해 단숨해 갖게 됐는데 내내 머릿속에는 '갈수록 구하기 힘들어질거야'라는 생각이 맴돌았죠.
이렇게 시간이 지나 세워놓고 나니 신기하기도, 재미있기도 또 난감하기도 한 풍경입니다.
- 뭐 이런 느낌까진 아니지만서도.. -
M-Hexanon 28mm F2.8과 50mm F2.0 렌즈
'일본의 진주'라고 불리는 코니카에서 지난 2000년께 출시한 KM 마운트용 렌즈 2종입니다. 본래 자사의 Hexar RF용으로 출시됐지만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성능로 라이카 M 마운트 카메라를 사용하는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00년 내외에 출시했으니 라이카 현행 렌즈들을 제외하면 비교적 최신 렌즈에 속합니다. 성능도 그에 맞춰 현행 렌즈와 비교해도 가격대비 충분하다고 평가받고 있고요.
제가 구매한 렌즈 두개는 28mm 광각과 50mm 표준렌즈로 35mm의 아쉬움을 앞과 뒤에서 채워줄 역할을 할 것입니다. -라고 기대합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코니카에서 출시한 M 마운트 렌즈는 총 5종으로 그 중 두개의 초점거리를 지원하는 듀얼렌즈 M-Hexanon 21-35mm 렌즈를 제외하면 위에 보이는 28mm F2.8 / 35mm F2 / 50mm F2 / 90mm F2.8의 4종이 있습니다. 이 중 두 개를 제가 갖게 됐네요. 경통 전체가 메탈로 제작돼 보이그랜더, 자이스, 미놀타 등 대표적인 M 마운트 써드파티 렌즈들 중 기계적 완성도는 상급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외관 역시 검정색 메탈에 촘촘한 요철의 초점링, 특유의 주황색 페인팅 등이 좋은 인상을 줍니다. 전용 카메라인 Hexar RF는 물론 다양한 M 마운트 필름 카메라는 물론 현재 출시된 라이카 M 시리즈에 사용해도 모양새가 나쁘지 않습니다.
M-HEXANON 50mm F2
M-헥사논 렌즈 중 대표격으로 손꼽히는 50mm F2는 누가 뭐래도 영락없이 라이카 Summicron 50mm를 닮은 외관입니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물론 내장 후드 형태까지 같습니다. 때문에 사실상 Summicron 50mm 렌즈의 카피로 불리고 있는데 다소 떨어지는 샤프니스에도 그에 필적할만한 표현력을 가진 것이 그 이야기를 뒷받침한다고 하네요. 라이카 M에 물린 모습도 꽤나 만족스럽습니다. 주황색 페인트가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요. 금속 소재지만 무게도 그리 무겁지 않습니다. Summilux 50mm ASPH 렌즈를 사용하기 전 잠시 사용한 Summicron 50mm 4세대 렌즈와 역시 매우 닮았습니다.
한두장 테스트해 본 결과 최대 개방에서 색수차가 눈에 띄지만 해상력 자체는 Summicron 50mm 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아 다행입니다. 하지만 대비가 다소 낮은 게 현재까지 느낀 Summicron과의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조금 더 사용해보아야 알겠습니다만, 1/3정도의 가격에 이 정도 성능 그리고 외모면 만족이다마다요. 조리개는 라이카 렌즈와 달리 1/2 스텝 간격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관심이 있어 검색해본 헥사논 렌즈의 수많은 평 중 여러번 등장한 뛰어난 만듦새는 조리개 링과 초점링을 몇 번 돌려보고 쉽게 수긍하게 됐습니다. 단단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M-HEXANON 28mm F2.8
과거에 사용했던 Elmarit 28mm pre-ASPH 렌즈는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풍경 사진과 색다른 스냅 촬영에서 색다른 시선과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안겨 줬습니다. 그래서 50mm보다 오히려 28mm를 더 갖고 싶었는데 용케도 동시에 손에 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46mm의 다소 큰 구경과 원형 후드가 광각 렌즈에서 연상하는 정도의 힘을 보여주고 있고 50mm F2 그리고 기존에 사용중인 35mm Summicron ASPH 렌즈보다 다소 길지만 무게는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F2.8의 조리개 값과 개방 촬영에서의 화질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몇몇 평가에 따르면 현행 Elmarit 28mm가 그리 생각나지 않는 성능이라고 하니 당분간 믿고 사용해보려 합니다. 물론 이것도 '가격대비'라는 말이 앞에 붙지만요.
2016년 시작을 '제대로 떠날 준비'로 하게 됐다는 것에 좋은 의미를 둬도 될까요? 35mm 렌즈 하나로 모스크바니 프라하니 이곳저곳을 누비며 정말 많이 배우고 알게 됐는데 올해는 이 두개의 렌즈를 더해 시선의 폭을 조금 더 넓힐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자꾸 떠나고 싶은 일들만 계속되는 요즘입니다.
- 당연히 제가 돈 주고 구매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