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_먹는여행
솔직히 삼십분쯤 지나니 이러다 사춘기 뚱보시절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원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제게 부산 여행은 서울에서 쉽게 먹지 못한 이색적인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멋진 기회라 열광한 것은 당연합니다.
난생 처음 방문한 깡통시장 그리고 길 하나로 이어지는 국제시장에서 한시간동안 그야말로 쉬지 않고 먹어 보았습니다.
역사가 있는 부산 먹거리에 최근 방송을 타고 유명해진 맛집까지 구성도 탄탄한 #먹는여행 이었어요.
#이가네 떡볶이
얼마전 3대 천왕에 나온 이색적인 떡볶이집은 요즘 이 주변에서 가장 '핫'한 맛집입니다. 오픈 전부터 선 줄이 골목을 돌아돌아 이름 모를 건물 지하실까지 이어지는 것이 '이게 뭔 일인가' 싶었는데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맛을 보자 싶어서 기다렸습니다. 떡볶이를 먹는 데 이렇게 오래 기다려도 되나 싶은데도 꾹 참고 기다려 보았습니다.
이 곳 떡볶이가 유니크한 이유는 '물'을 넣지 않고 무를 졸여 나오는 수분으로 떡볶이를 만드는 독특한 방식입니다. 무의 시원한 감칠맛이 예상되는데요, 먹기 전에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맛이 기다림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열시 반 오픈과 동시에 부지런히 끓이고 또 끓이는 떡볶이. 미리 알고 보아서 그런지 어딘가 때깔(?)도 달라 보입니다.
오른쪽이 바로 그 '무 졸인 물(?)'입니다. 이 떡볶이를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떡볶이로 만든 일등 공신.
그 떡볶이를 맛보기 위한 엄청난 인파. 역시나 떡볶이라는 메뉴 특성 답게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물론 저처럼 아저씨도 있습니다.
인파가 너무 많아 떡볶이는 포장해 온 후 한참 뒤에 식은채로 맛을 보았는데요, 확실히 무를 넣은 효과는 느껴졌습니다. 떡볶이 양념에 무국의 그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개운함과 시원함이 느껴졌으니까요. 더불어 천연 재료에서 나오는 단맛도 기분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부산 떡볶이의 특성상 떡이 가래떡 수준으로 커서 양념과의 찐한 조화를 기대했던 제게는 약간 겉도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느다란 밀떡과 함께였다면 더 맛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할매유부주머니
이 곳은 평생을 부산에서 사셨다는 원주민(?)님의 인도로 가게 된 집입니다. 유부 안에 당면과 각종 채소가 든 '유부 주머니'를 파는 곳인데요, 다녀와서 검색해보니 역시나 유명한 곳이더군요.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저 저 저 유부 주머니들의 따끈한 자태가 더욱 매혹적입니다.
주문하면 이렇게 어묵과 유부 주머니가 우동 그릇에 담겨 나옵니다. 어묵의 고장 부산답게 어묵 맛이야 따로 말할 것 없고 터뜨리면 따끈한 맛이 터져 나오는 유부 주머니도 새롭고 맛깔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안에 든 당면이며 갖가지 채소이 허기도 채워주는 든든한 메뉴입니다. 후추가 많이 들어가 국물부터 유부 주머니까지 '캬' 하는 개운함이 있는데, 후추 좋아하는 제게는 이 맛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그 향이 무척 강하긴 합니다. 저렴한 가격에 따끈하고 든든하게 속을 채울 수 있어 좋았던 집이 두번째로 지나갑니다.
#64번집
이 골목의 식당들은 '순이네' '영희네' 할 것 없이 '숫자'로 불립니다. 끝 없이 늘어선 노점들을 보고 있으니 과연 몇 번까지 있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그 중 먹을 것은 61번부터라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64번집을 선택했습니다. 인심 좋아 보이시는 사장님에게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오징어 무침과 전을 주문했습니다.
오징어를 미리 준비된 채소와 함께 솜씨 좋게 무쳐서 내 주시고 철판에선 쉬지않고 전이 부쳐집니다. 저 수북한 오징어 무침이 단돈 3천원, 전은 2천원이니 5천원이면 새콤달콤 배부르게 먹을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던 오징어무침과 전의 조합에 자칫 여기서 메뉴를 추가해 배를 부르게 할 뻔했습니다.
상상해본 적 없는 이 조합. 전의 바삭함과 약간의 느끼함에 오징어 무침의 새콤달콤 양념맛과 재미있는 식감이 더해지면서 아주 좋은 조화를 이룹니다. 5천원에 이 정도 먹거리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혼자 먹으면 5천원에 한 끼 든든하게 배를 채우겠네요.
세 집 모두 만족 만족 만족을 외치는 깡통-국제시장 먹는 여행이 이어집니다.
#팥빙수골목
국제 시장 한켠에 늘어선 '팥빙수 골목'은 벌써 꽤 쌀쌀해진 초겨울 날씨지만 여전히 팥빙수를 먹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물론 겨울메뉴로 '팥죽'이 준비되어 있고요.
3500원에 팥빙수를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직접 얼음을 꺼내 갈아주십니다. 이 쇄빙기가 몇 년이 됐을까요? 수십년 전에도 이 골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클래식 팥빙수를 먹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나름 고급 디저트가 되어버린 팥빙수지만 역시 이런 게 진짜 빙수죠.
잘게 간 얼음 위에 팥과 후르츠 칵테일, 연유를 얹으면 간단하게 팥빙수 완성, 이모님께 잘 보이면 우유도 추가해 주십니다.
요즘의 '달디 단' 팥빙수와는 다른 팥의 고소한 맛에 연유의 불량하지만 매력적인 단맛이 어우러져 어릴적 먹었던 팥빙수를 기억나게 합니다. 단맛에 길들여진 제 입에는 오랜만에 재회한 이 덤덤한 빙수가 낯설지만 그래도 이게 부산 먹는여행의 재미 아니겠어요?
#씨앗호떡
씨앗 호떡은 이제 부산 여행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 중 하나입니다. 이곳뿐 아니라 부산 곳곳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흔한 간식거리가 되었죠. 하지만 이곳이 방송 출연과 전통 등으로 여전히 사람이 가득한 핫플레이스입니다. 바로 옆 '승기네 호떡'이 방송으로 유명세를 타 사람이 몰리는 곳이라면 이 '아저씨 씨앗 호떡'은 상대적으로 현지분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하네요. 뭐가 다르냐 물으니 결론은 '둘 다 맛있답니다'.
튀기듯이 구워낸 호떡은 바삭한 식감이 좋고 흔히 심심한 설탕물만 있던 자리에 고소한 견과류가 있으니 씹는 재미도 있고 속도 더 든든합니다. 제가 호떡은 잘 먹지 않는데 이 씨앗 호떡은 그래도 좋아합니다. 디저트 팥빙수로 끝난 줄 알았던 이 날 먹자파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린 씨앗 호떡의 신호로 한시간동안의 강렬한 파티는 다음 장소로 움직입니다.
#즐겁다_먹는여행
'먹기만 해도 여행'이라는 것을 알려준 짧지만 진한 한시간이었습니다. 이야기만 들었던 떡볶이며 유부주머니, 거리 음식들을 저 혼자 부산을 찾게 됐다면 아마 이렇게 성실하게 탐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같이 다니고 찾고 먹고 떠드는 시간이 참 좋았던 이 한 시간의 #먹는여행은 깡통시장과 국제시장에서 1부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어졌습니다. 정신없이 그리고 배부르게 지난 이 시간을 이제 추억해보니 다시 배가 고파옵니다. 아직도 저는 부산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또 가고 싶어요. '먹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