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가을이면, 이맘때면 스물스물 떠오르는 곳이 있어요.
서울의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
하늘공원의 억새길입니다.
계절마다 색다른 모습으로 제가 서울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는 장소이지만 이곳은 가을에 단연 가장 아름답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서울 억새 축제로 많은 분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죠.
검색해보니 올해는 10월 10일부터 17일까지 축제가 진행된다고 하네요.
저는 조금 미리 다녀왔습니다.
저처럼 가을이면 이 곳을 나도 모르게 찾는 분들로 벌써 적잖이 붐비지만 아직까지는 한적한 억새길을 걷는 즐거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참 신기하죠,
지난번에 이 곳을 찾았던 것이 몇 달이 되지 않았는데 그 새 제 키보다 큰 억새들이 이렇게 훌쩍 자란 걸 보면 말이죠.
부쩍 차가워진 가을 바람을 맞아 스스스스 소리를 내며 흩날리는 억새는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도 가을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줍니다.
군데 군데 빠진 부장님의 정수리처럼 아직 빈 곳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넓은 꼭대기 공원에 억새가 가득 찼습니다.
이 억새들이 내는 소리만으로도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그리고 이 억새 사이를 걷는 즐거움은 가을이 아니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죠.
빈틈없이 자라난 억새, 그리고 그 사이로 무수히 뻗은 산책로.
은행나무길과 낙엽길 등 가을은 유독 걷기 좋은 풍경이 많지만, 키보다 큰 억새들이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이 억새길은
사랑에 이제 막 빠지고 싶은 설익은 예비 연인들에게 가장 좋은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간 날은 이 길들이 한가 했지만 곧 축제가 시작되면 이 길이 가득 차겠죠?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분명 끝은 있지만, 걷다보면 금방 도달하지만- 이 억새길은 걷을 때 못지 않게 걷기 전 이렇게 바라보는 즐거움이 큽니다.
바로 이 풍경이 또 이 감흥이 제가 가을을 기다린 이유, 그리고 가을의 시작과 함께 이 곳을 찾은 이유입니다.
하늘공원의 상징인 '하늘을 담는 그릇'은 이 곳을 찾으시는 분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폿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안 그래도 높은 이 하늘공원의 '정점'에 다다르게 되는데, 내려다보는 풍경 역시 가을 감흥의 '절정'입니다.
때문에 이 위는 언제나 사람으로 가득하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셀카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고요.
이 날도 많은 분들이 이 커다란 구조물 위에서 추억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찍어주기 위해 고성 아닌 고성이 오가고 셀프 촬영을 하려던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화면이 깨지는 등 크고작은 해프닝들이 계속되지만
그래도 가을의 여유 때문인지 하나같이 다들 밝은 표정들입니다.
스마트폰 화면이야 돈내면 새것으로 바꿀 수 있잖아요, 지나면 다시 안 올 이 가을을 만끽하는 게 남는거죠.
하늘을 담는 그릇 위에서 볼 수 있는 이 장면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에 붐비고 매번 똑같은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곳에 오면 빠짐없이 꼭 한번은 올라가보게 됩니다.
공원 가득한 억새의 빼곡한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사랑하는 이와 함께면, 꼭 그게 아니더라도 마음맞는 사람들과 와서 벌써 이만큼 온 가을에 감탄하고
매년 보는 풍경에도 신나서 억새길 구석구석을 걷다보면 즐거움은 배가 되겠죠.
이 날은 아쉽게도 혼자였습니다만 함께 걷고 떠들고 사진찍고 웃는 분들을 보며 저도 가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 곳에 있으니 어쩐지 가을이 두배로 빨리 익어가는 느낌입니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왔었는데. 그 때도 이 풍경은 똑같았는데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가을이면 의무처럼 이 곳에 오게됩니다.
물론 축제때는 너무 붐비고 정신이 없어서 이렇게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와서 가을을 한 입 먼저 즐기곤 하죠.
이 날은 조금 따가운 가을 햇살이 아직 여름티를 벗지 못했지만 이따금 바람이 불어와 위로해주었습니다.
하늘공원 곳곳에 펼쳐진 작은 이벤트를 발견하는 것도 가을의 재미입니다. -물론 찾기 아주 쉽지만-
하늘공원 입구에는 가을꽃의 대명사이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있습니다.
특히나 여성분들은 꽃과 함께 사진을 찍느라, 꽃 사이에서 서로를 찾느라 이 곳을 벗어나기 무척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 가을꽃에 매료되면 자칫 공원 입구에서 하루를 다 써버릴 수도 있겠어요.
저는 아저씨인데도 여기서 한참을 보냈습니다.
다른 한켠에서는 해바라기가 만개해있습니다. 아무래도 해바라기의 전성기는 이미 조금 지나버린 듯 시든 꽃들이 보였지만
그래도 가을 파란 하늘 아래 샛노란 해바라기 색과 활짝 벌린 꽃잎은 그 자체로 상당히 매력적인 그림입니다.
이 억새길을 한바탕 걷고 나니 이제야 제대로 가을이 왔다고 실감합니다.
살갗을 스치는 찬바람도 이제야 시원하고 상쾌하다 느껴집니다.
올 가을 억새 축제는 왠지 지난 가을보다 더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사랑에 빠지게 될 것 같아요.
이 날의 상쾌한 느낌 때문에 아마 이번 가을이 가기 전에 또 한번 이곳을 찾게될 것 같습니다.
자, 이곳이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
@하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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