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절정, 그리고 정점.
그 위에서 우리는 축제를 연다
모든 순간엔 '정점'이 있죠, 그리고 대부분의 정점은 지나고 나서야 '아 그 순간이 내 절정이었구나'라고 깨닫습니다. 그리고 아쉬워하구요.
그렇게 인생에서 몇 번의 정점, 혹은 절정을 아쉽게 보내고 나면, 그 후엔 어떤 일에서든 그 '절정'이 언제인지 매 순간 떠올리고 궁금해하며 기대하게 됩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계절에도 이 '정점'이 있습니다.
특히나 봄의 그것은 다른 계절보다 유난히 짧아서 며칠만 지나도 꽃이 다 떨어져버리거나, 아껴뒀던 봄 외투를 입을 수 없게 되죠.
많은 분들이 봄의 정점을 가늠하는 잣대로 '벚꽃'을 꼽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 유채꽃이 '봄의 시작'을 알린다면,
4월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 벚꽃은 그야말로 봄의 '하이라이트'에 비유되죠.
2015년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버릇처럼 챙기던 코트는 어느새 옷장 안에 숨어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꽃 소식이 들리더니 4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창인 봄에 드디어 '절정'을 알리는 소식이 날아 오른거죠. 네, 바로 '벚꽃 축제'요.
4월이면 모든 분들의 이목은 서울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봄꽃 축제 소식에 쏠립니다. 따뜻한 날씨 때문에 다른 해보다 꽃 소식이 빠른 올 해,
이제 드디어 기다리던 짧은 봄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며칠 되지 않을테니 서둘러야겠죠?
대표적인 서울의 벚꽃 축제 장소인 여의도 윤중로가 있지만, 올 해 벚꽃은 석촌 호수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4월 10일부터 시작된 석촌 호수 벚꽃 축제, 2015년 봄의 '정점'을 함께 감상해 볼까요?
제가 방문한 목요일, 축제는 하루 남았지만 꽃망울은 그 하루를 참지 못하고 다 터져 버렸고,
그 못지 않게 급한 사람들의 발길도 아침 일찍부터 이어져 이미 분위기는 축제와 같았어요.
벚꽃 가득한 풍경은 누구에게나 봄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을 선사하지만,
아름다운만큼 그 생명력이 무척이나 약해서 밤 새 소나기라도 내리면 금방 사라져버리고, 축제도 끝나 버리죠.
그래서 다른 축제보다 벚꽃 축제는 유난히 짧지만, 그 특별함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일년 중 가장 기다리는 축제로 바로 이 벚꽃 축제를 꼽죠.
서울에 위치한 비교적 큰 호수인 잠실 석촌 호수를 둘러싼 벚나무들이 서로 질세라 꽃을 터뜨리고 흩날리며 봄의 절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침 봄날 다운 파란 하늘과 온화한 햇살 덕분에 산책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였어요.
석촌 호수는 서울에서 그나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이른 아침부터 산책과 조깅을 즐기는 분들이 많은 곳입니다.
다만 이 호수 주변으로 점점 늘어가는 고층 빌딩들이 점점 이 호수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특히나 저 왼쪽의 제 2 롯데월드 건물이 석촌 호수의 경관을 많이 망치고 있습니다.
봄이 아니고 오늘이 아니었으면 아마 벚꽃 나무인지도 잘 몰랐을 벚나무들이 석촌 호수 둘레를 빼곡이 채우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 벚나무는 일년 중 길어야 보름 정도의 축제를 위해 나머지 350여일을 기다리는 비효율과 노잼(?)의 나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벚꽃 축제에 유난히 설레는 것처럼, 그 '반짝이는 순간'은 남은 시간을 기꺼이 기다릴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숫가를 가득 메운 순수한 색의 벚꽃을 보면, 그 동안의 기다림을 모두 보상받는 행복감을 느끼니까요.
게다가 넓은 호수, 그리고 호수와 같은 색의 파란 바다까지 함께 있으니 봄에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걷고 웃고,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들고 있었어요.
흔히 '벚꽃 축제' 하면 윤중로를 떠올리지만 석촌호수의 벚꽃 풍경 역시 그에 못지 않게 풍성합니다.
게다가 호수와 바로 인접해있어 산책하는 재미는 오히려 이 길이 더 좋았어요.
봄 축제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윤중로 벚꽃 축제가 이제 꽃잎만큼 많아진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즐기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
그럴 점에서 올 봄엔 석촌 호수에서 봄 축제를 즐겨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 물론 이 곳도 축제 기간, 그리고 주말에는 윤중로 못지 않게 사람이 많겠지만요 -
동호와 서호로 나뉜 이 커다란 호수에서 즐기는 벚꽃 축제의 장점은 '한 바퀴 돌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죠.
더불어 걸으면서 벚꽃과 호수가 함께 만드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1석 2조입니다.
물론 호수 주변에 고층 건물과 아파트 단지, 롯데월드 놀이동산까지 있어서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보고 싶으신 분들을 아쉬움이 크실 수 있겠습니다.
저도 이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아 저 건물만 없었으면' 했던 순간이 참 많았으니까요.
더 멋진 풍경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가 될 수 있었을텐데, 어찌 보면 사람의 욕심이 이런 권리를 빼앗고 있는 것 같아요.
호수를 크게 한 바퀴 도는 동안 산책로의 양 옆은 물론 머리 위까지 가득 채운 벚꽃길 풍경은 봄이 아니면, 오늘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너무나도 특별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보통 '걷는 것'을 이동의 방법이나 운동 정도로 사용하지만, 이 날은 그리고 이 곳에서는 걷는 것만으로도 더 없이 즐거운 오락이 되기도, 어느 도시보다 멋진 여행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아무도 걷는 것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죠. 한참을 힘든 줄도 모르고 걷게 됩니다.
봄의 정점, 꽃이 가득한 풍경
벚꽃은 하늘을 가득 채울 듯 모여있을 때 가장 진한 감동을 주는 꽃이지만
까치발을 하고 한 송이를 자세히 보아도 참 아름다운 꽃입니다. 특히나 순수하고 소박한 모양과 색이 우리의 '봄'을 가장 잘 표현하는 꽃이기도 하죠.
그래서 여성들은 봄이 되면 이 벚꽃과 가까운 색의 원피스나 블라우스를 자신도 모르게 고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심지어 이 꽃이 한가득 그려진 치마를 입고 꽃이 모인 축제에 오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이 벚꽃은 그야말로 우리에겐 '봄 그 자체'와도 같죠.
봄의 정점, 꽃이 그린 풍경
안 그래도 형형 색색 아름다운 봄에 순수한 '벚 색'이 더해지니 마치 올 해를 마지막으로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봄은 아름다워집니다.
미리 그려진 봄의 '밑그림'과 완벽하게 어울려 그림을 만드는 것은 물론, 사람이 '엎지른' 인위적인 것들에게도 봄 만의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
그야말로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이 '진동하는 생명력'은 이 작은 호수에서도 수 많은 '절경'을 만들어내죠.
오늘같은 날엔 안 그래도 즐거운 놀이 공원에서의 하루가 더 행복해지겠네요 :)
이 청사초롱은 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특히 좋아할 것 같습니다.
봄의 정점, 사람이 더해져 보석같은 순간들
우리는 언제부턴가 자연이 만든 이 축제를 당연하게 '사람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봄 축제의 주인공이 꽃이 아닌 사람이 되어 버리고, 꽃잎과 경쟁하듯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이지만
그 풍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 '봄과 사람이 어우러진' 풍경에서 또 그만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죠.
오히려 이 넓은 호수, 흐드러진 봄 풍경에 저 혼자 있었다면 참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제 봄 축제의 주인공은 '우리'로 확실히 바뀐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 축제를 찾은 사람들의 표정 모두가 벚꽃 못지 않게 활짝 피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과 꽃이 함께 만드는 이 곳의 풍경이 온전한 자연보다 마냥 숨막히게만 느껴지진 않은가 봅니다.
특히나 아마도 생애 첫 벚꽃 축제를 찾은 아이들의 호기심과 미소는 어쩌면 봄 꽃보다 더 아름답죠 :)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면 아마 이 산책로가 사람들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온기가 이 봄을, 꽃을 더욱 활짝 피게 만들겠죠.
그렇게 봄은 정점을, 아니 그보다 더 높은 절정을 맞이할거에요.
꼭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더라도,
누구와 찾더라도 이 봄은, 꽃의 축제는 모든 이들을 충분히 행복하게 해 줄 것입니다.
저처럼 혼자 걷게 되더라도 말이죠.
그리고 이 순간의 추억은 모든 이들에게 '2015년 봄'이란 제목으로 소중하게 간직되겠죠?
봄은 짧습니다.
그리고 짧은 만큼 그 절정의 순간 역시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립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눈부신, 그래서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순간.
이 벅찬 감동을
귀찮다고, 피곤하다고 혹은 혼자라는 이유로
그냥 지나보내면 너무 아깝잖아요.
순수한 봄빛 보석 하나가 어딘가에, 분명히 내 몫의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가기만 하면 가질 수 있는 그 보석을 찾으러 이번 주말엔 어디라도 꼭 떠나야 합니다.
이번 봄은 바로 오늘이 최고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