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둘째날 오후, 예정에 없던 달맞이길 아래 옛 철길 산책은 꽤나 오래 이어졌습니다. 바다를 보며 걷는 철길이 마치 이 곳이 아니면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을 주기도 했고, 걷던 중간에 빠져나오는 길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만큼 여행에서 아까운 것도 없기에 삼사십분 정도를 더 걸어 나온 풍경은 항구 옆 작은 마을이었고 멀리 보이는 빨간색과 하얀색의 등대 쪽으로 저도 모르게 발을 옮겼습니다.
흐린 날씨 아래 어지러운 이 항구가 기찻길과 닿아 있는 항구, 청사포입니다. 부산에서 바닷 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요, 이 날 이 항구는 어선이 들지 않아 매우 한적했습니다. 고깃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열린다는 시장도 텅 비어있는 것이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습니다. 주차된 자동차들이 아니었으면 아마 사람들이 다 떠난 항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날이 잔뜩 흐려 아쉬웠지만 그래도 두 등대는 우리가 바다에서 기대하는 바로 그 풍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법 알려진 곳인지 저처럼 여행을 온 사람들도 많았어요. 다들 이 등대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방파제며 바다를 한참 바라보다 갔습니다. 광안리에서 느낀 봄기운이 꿈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 날의 흐린 날씨와 바람은 제법 차가웠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 맘때 바다의 맛 아니겠어요?
빨간 등대 앞에 서서 보니 건너편 흰 등대는 빨간 등대보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어보입니다. 그래도 저 위치가 낚시 명당인지, 등대 옆쪽에는 낚시대를 드리운 분들이 무척 많았어요. 이 역시 바다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풍경 들 중 하나겠죠. 낚시를 즐기지 않아서 저 기분을 알 순 없지만, 낚시를 핑계로 하루 종일 저렇게 바닷가에 앉아 하는 생각들도 무척 즐거울 것 같네요.
두 등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제법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등대로 가려면 먼 길을 돌아가야 하죠. 날씨도 좋지 않고 해 질 시간도 가까워 와서 아쉽게도 하얀 등대에는 가 보지 못했습니다. 아쉬우니까 이렇게 사진이나마 한 장. 하얀 등대에는 쉴 새 없이 낚시꾼들이 모여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봄맞이 여행에서 기대한 따뜻한 봄햇살과 포근한 공기는 이 바다에 없었지만, 겨울 바다의 냉랭함과 차가움이 많이 누그러들었구나라는 느낌만으로도 새 계절이 꽤 많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각지에서 모인 인파 때문에 풍경만 감상했지 정취는 느낄 수 없었던 해운대와 광안리보다 이 날 가만히 들여다 본 바다가 더 기억에 남는 것도, 이 곳에서 느낀 그 '봄 기운'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바다 풍경과 함께 빼 놓을 수 없는 한 가지 더, 청사포 입구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는 '청사포의 시간'을 주제로 청사포와 부산 일대를 배경으로 한 특별한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생소한 90년대부터 길게는 3-40년 전의 풍경까지, 조금은 작고 초라한 갤러리였지만 이 곳에 걸린 사진들은 무척 특별한 시간의 흔적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소중하게 추억을 간직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앞으로도 이 청사포 풍경은 지금처럼 그렇게 너그럽게 사람들을 맞아주며, 점점 더 아름다워 질 것 같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곳에서 발견한 이른 봄 항구의 풍경,
많은 사람이 있지 않아 여유로웠고, 다른 곳보다 좀 더 빨리 봄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봄엔 어딜 가던 다 '여행'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 둘째 날도 마무리 하러 돌아가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