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구입하고 막 재미를 붙여갈 즈음, 처음으로 장거리 라이딩을 계획하게 됩니다.
- 사실은 당일날 너무 심심해서 맘 먹고 나선 거였다는. -
가족들 모두 약속이 있었던 추석 다음날,
제 다리와 작지만 강하다는 브롬톤의 능력만 믿고 생각만 했던 양수리 두물머리까지의 긴 라이딩을 나섭니다
- 누가 브롬톤을 강하다고 했는가 -
이제 막 가을 색이 곳곳에 올라오기 시작한 9월의 초입,
아직 햇살이 따가운 날씨에도 여기저기 핀 코스모스를 보니 가을 분위기는 물씬 납니다.
마침 하늘까지 파래서 달릴 맛 나더군요.
코스는 수유에서 두물머리까지, 거리가 약 50km 더군요.
- 50km가 그렇게 먼 거리인줄 이 때까지는 몰랐습니다 -
출발한지 사십분 만에 길에 핀 꽃이 너무 예뻐 내려서 사진을 찍었어요.
이 때까지만 해도 마냥 신났죠.
남한강 자전거 도로에 진입하니 이 전에는 보지 못한 한강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동안 그렇게 멋진 곳을 찾아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면서, 왜 자전거를 타고 다녀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만 달려도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많습니다.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군요.
이 때쯤부터 저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맞바람이 이다지도 힘든 것인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었죠.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도착한 구리 한강 시민공원이었습니다.
사실 두물머리에 가는 길에 이 구리 한강공원이 있어 마음이 든든했어요.
봄에는 유채, 가을에는 코스모스로 종종 찾던 곳이라
이맘때쯤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거든요.
해마다 10월에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는 구리 한강 시민공원,
9월 초의 풍경은 이렇게 아직 조금 허전합니다.
-라고 생각하며 자전거를 밟고 지나치려는 순간,
공원 끝자락에 펼쳐진 코스모스 밭이 반가워 멈춰섰습니다.
이 곳 만큼은 이미 코스모스 축제가 한창이더군요,
이른 가을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과 추억을 남기기 여념 없는 연인들의 모습들이 참 예뻤습니다.
코스모스 밭에서 자전거도 한 컷!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한참 페달을 밟다보니 이번에는 반가운 해바라기들이 눈에 띕니다.
마침 다리도 뻐근하던 터라 해바라기를 핑계로 잠시 멈춰 사진을 몇 컷 찍었습니다.
라이딩을 하다보니 이렇게 좋은 풍경들이 많네요.
너무너무 힘들어서 주저 앉아 초코바를 핥아댔던 한강 변에서 마주친 멋진 풍경과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에 다리에 조금 더 힘이 생긴 터널 라이딩까지.
한 달이 지난 아직도 이 날의 느낌이 생생합니다.
- 사실 이 날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이제 다시는 자전거 타고 멀리 안가' -
이 다리를 지나면 양수역에 도착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느낌을 잊기 싫어 다리에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앗, 근데 해가 지려고 하네요.
원래 계획은 여유있게 두물머리에 도착해서 해넘이를 기다리는 것이었는데 :(
막판 스퍼트로 두물머리에 도착한 시간은 어느덧 다섯시가 넘어갑니다.
쉬는 시간까지 더해 어언 네시간이 걸렸네요,
제 체력을 너무 과신했던 탓에 예상 스케쥴을 완전 빗겨간 이 상황은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게다가 두물머리로 들어가는 길은 자전거를 끌고 가기에 너무 힘든 비포장도로
- 내가 왜 여기에 자전거를 타고 왔는가 -
!%@#!%!@#
어쨌든 이제 도착했으니, 다리를 풀어주며 풍경들을 감상해봅니다.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 관광객이 많던 이 날,
휴일임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풍경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물머리의 마스코트, 이 프레임까지.
이쯤 되니 그 동안 힘들고 아팠던 것들이 녹아내립니다.
도착하지 얼마 되지 않아 해가 떨어져 내립니다.
어딘가 개운하면서 아쉽기도 한 이 날의 노을.
그리고 해가 지니 더 활발해진 두물머리의 풍경
마침 이 날은 슈퍼문이 뜬 날이라 달 사진을 찍으시는 분, 달에 소원을 비는 분들까지.
달의 축제를 즐기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달려온 시간에 비해 이 풍경과 여유를 즐긴 시간은 너무 짧았지만
그래도 이 행복이 너무 강렬해서, 이 맛에 달리는 건가 생각도 해 봅니다.
시간도, 어둠도, 체력도
오늘은 이만 하고 돌아오는 길은 전철로-
운좋게 발견한 GS25에서 구입한 허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전철을 기다리는 이 날 저녁엔
오후까지 되새긴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다짐'이 어느샌가 사라지고
다음엔 어딜 가볼까 떠올려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이 작은 미니벨로로 장거리는 무리인 것 같아요.
로드 욕심이 생긴 날이었습니다.
한동안 이렇게 멀리 나갈 일이 또 생길까 싶겠냐만
이렇게 지도를 보니 어딘가 흐뭇하네요
언젠간 이 날의 기억이 비웃음이 될 정도로 지금보다 나은 라이더가 되어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