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만에 다시 찾은 아침고요 수목원,
작년 11월엔 꽃이 모두 지고 난 후라 실내 식물원에서 하는 '국화축제' 외에는 볼 게 없던 기억인데,
올해는 좀 더 지난 12월에 찾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11월보다 더 썰렁할 것 같던 아침고요 수목원의 12월은,
새로운 즐길거리가 있더군요~
시들어 빛을 잃은 꽃과 나무에 새로운 색을 입혀주는 별빛정원 축제
"오, 생각보다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들어갑니다.
(나중 얘기지만 아침고요 수목원은 11월이 제일 썰렁한 달 같아요)
이제 한동안 올 일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일년만에 다시 올 줄이야!
꽃이 모두 지고 나무가 색을 잃은 수목원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수목원'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딘지 모를 적막과 무채색의 차분함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정말 '고요'한 느낌입니다,
특히나 별빛정원전은 저녁부터 시작되니 낮에는 사람도 많지 않고, 한적하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 되었어요.
봄, 여름, 그리고 가을.
이곳을 찾아주는 이들에게 일년 내내 환한 웃음을 보여주느라 고생한 아침고요 수목원의 나무와 꽃들은
이제 다음 봄 꽃이 다시 색을 찾을 때까지 잠시 휴식에 들어갔어요-
대신 얼마 전 내린 눈 장식이 나무들을 덮어주고 있네요.
겨울방학이 끝나는 개학날 아침에 빈 교실에 들어가는 기분처럼
늘 그대로인 이 수목원이 오늘은 좀 낯설게도 느껴집니다.
저야 작년에도 이런 모습만 보고 왔지요 ㅎ
이상하게 꽃 필 때는 못와봤네요 ㅠㅠ
시든 꽃의 매력,
다들 시든 꽃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빛을 다해가는 시들어가는 꽃이 저는 참 매력있어요.
마지막 노란 빛을 간직하고 있는 저 꽃의 빈자리를
저녁부터는 전구의 빛으로 채울 예정입니다.
시든 꽃과 나무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전등갓,
그리고 열매처럼 나무에 달려있는 수많은 전구들.
아직 군데군데 가을색이 남아있지만,
겨울은 눈의 형상을 하고 파도처럼 마지막 가을 빛을 쓸어담고 덮어가는 중입니다.
눈 아래엔 아직 가을이 남아있지만, 우리는 눈만 보고 '이제 겨울'이라고 하죠.
우리가 좋아하는 가을도, 그렇게 마음속에서 먼저 사라져갑니다.
언제부터인지도 알 수 없는,
오랜시간동안 쌓인 많은 사람들의 소원, 소망, 기도.
이곳에 쌓여있는 소원들이 모두 이루어졌다면,
지금 우리가 있는 세상이 더 좋아졌을까요?
'사랑'을 바라는 한 남자의 프로포즈와
그를 시샘하는 한 여자의 두 발자국이 만들어낸 그림입니다.
'이 세상에 너네만 커플이 아니야, 이런 건 집에서 혼자 해'
물이 흐르고 고기가 헤엄칠 때도 운치있지만,
얼어붙은 이 작은 호수와 소나무, 정자의 풍경은 정말 겨울다운 풍경입니다.
무질서한듯 가지런한 겨울의 풍경들,
무채색이라 더 매력적인 겨울의 그림들이에요.
바람을 기다리며 울리는 작은 종,
누구를 기다리는 건지, 맑게 울리는 저 종소리가 내가 반가워서인지 이번에도 그가 아니라는 아쉬움인지.
고개를 돌리고 있는 걸 보니 절 기다린 건 아닌 것 같아요.
'기억 못하겠어? 우리 작년에도 봤잖아-'
일년만에 같은 곳을 찍어봤어요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낙서가 좀 더 많아지고 깊어졌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항아리들을 많이 상하게 했다는 것.
어렸을 적 고드름 먹지 말라고 엄마한테 손 맞던 기억이 생생한데,
언제부터인지 고드름을 볼 수가 없던 것 같아요.
그리고 굳이 고드름을 찾지도 않게 되구요.
"역시 어른이 된다는 건 재미없는 일이에요."
날이 많이 추웠어요,
수목원 끝자락에 있는 찻집에서 따뜻한 차로 손과 몸을 녹이며
별빛 정원이 열리길 기다립니다.
추운 날씨에 볼이 새빨개지면서도 아이들은 얼음에 미끄러지는 게 그렇게 즐거운가봐요.
"이 아저씨는 피부 망가질까봐 그렇게 못노는데, 부럽다 ㅠ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찾아서인지, 곳곳에 성탄 장식을 해 두었어요.
하긴, 이 키크고 멋진 나무들 그냥 놀리면 얼마나 아까워요-
장식 몇개만 달면 그대로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 정원이 되니까.
"앗, 별빛 정원이 열렸다!"
해가 채 지기 전인 늦은 오후,
사람들이 얼마나 기다리는지를 알았던 건지, 색을 잃은 정원이 한겹한겹 별빛을 입고 있습니다.
겨울방학 빈 교실같던 수목원이 크리스마스 사탕 선물처럼 환한 색을 뽐내며 빛나기 시작합니다.
몸을 녹이러 여기저기 숨어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와 별빛을 감상하구요.
수목원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달빛정원으로 가는 길,
별빛을 받은 꽃들이 길을 인도하구요
달빛정원 꼭대기의 작은 성당으로 가는 길은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들어가보지 않은 달빛정원 성당,
작은 성당 안에는 그럴듯한 강단과 의자들이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소원을 빌게 되는 그런 곳,
"근데 소원은 누가 들어주나?"
별을 볼 수 없는 삭막한 도시의 동물들에게는
나무 위에 매단 가짜별들도, 충분히 감상을 불러일으킵니다.
"내가 별을 이렇게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아침고요 수목원 한가운데를 굳게 지키고 있는 멋진 바디라인의 소나무 '천년향'입니다.
우뚝 서서 자태를 뽐내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사방에 어둠이 깔리고 사방의 별빛들이 조금씩 더 밝아보이는 시간,
여기저기 숨어있던 빛들이 하나 둘씩 손을 들어 그 색을 뽐내기 시작해요.
노을과 별빛이 참 잘 어울리는 아침고요 수목원의 이브닝-
잠시 후 야경촬영에 힘을 쏟기 위해 아침고요식당에서 콩고기 찹스테이크를 먹었어요,
쌀밥과 찹스테이크는 참 잘 어울리죠, 배도 든든하고 콩고기라 부담도 없고~
새까만 하늘을 채우는 별빛 정원을 거닐며
밤이되어 해의 빛이 사라지면
아침고요 수목원의 별빛이 더욱 빛납니다.
갖은 색으로 치장한 수목원의 나무와 꽃들은,
눈이 멀 정도로 화려한 빛을 뽐내며 그간의 기다림을 위로해줬어요.
사방이 별빛입니다 - !
늦은 시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겨울 밤 별빛을 즐기러 오셨어요.
매서운 추위에 다들 손을 부비고 움츠렸지만, 표정들은 하나같이 즐거워 보였습니다.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달빛정원 가는 길의 "별빛마차"
밤이 되니 더욱 빛나는 달빛정원의 꽃
달빛정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화려하고 눈부신 빛의 하경정원보다는 다소 소박하고 순수한 빛들의 향연입니다.
어느새 달빛정원 꼭대기의 작은 성당에는 천사 둘과 온갖 별들이 모여 사람들은 반기구요.
왠지 하늘을 날 수도 있을 것 같은 아기코끼리도 사랑스러운 모습입니다.
다시 하경정원으로-
한발짝 떨어져 축제를 바라보며,
불타는 화려함을 좀 더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즐거운 축제의 땅.
밤이 깊어질수록 별빛정원도 더욱 눈부시게 빛납니다.
이 외진 땅에 이보다 밝게 빛나는 곳이 있을까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더욱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별똥별이 수목원으로 모두 떨어진 듯한 느낌으로 말이죠.
일년 내내 입던 옷과 다른 색을 가진 옷을 입은 나무의 모습이
오늘 밤에는 어색하지 않아요,
어지러운 듯 여러색을 마냥 늘어놓은 느낌인데,
예뻐요, 빠져들어요.
한없이 걷고 싶은 길인데,
아쉽게도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빛정원은 조용히 산책하기보다는
가만히 서서 눈에, 가슴에 별빛들을 담는 것이 좋겠어요.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서 좋은 추억을 남기는 풍경.
겨울의 아침고요 수목원은
'다 시들고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땅에 방금 떨어진 듯 별빛을 가득 채운 풍경입니다.
마치,
그대의 눈 속 처럼?! ㅎ
모든 색이 다 바랬을 거라고 지레 생각하고 잊지 마세요,
겨울의 아침고요 수목원은 꽃이 피고 나무가 무성하던 때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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