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의 내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꼽아 보자면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여자친구 손을 잡고 나름 커다란 다리를 뛰어서 건넜던 일이다.
근처에 버스정류장도 없고 다리 중간이라 택시도 잡을 수 없어서 그냥 무작정 손을 잡아 끌고 뛰었는데
지금이야 영화 속 장면처럼 낭만같아도 그 땐 젖은 머리며 옷이며 추워서 떠는 이 부딪히는 소리에 얼마나 미안했던지.
얼마 전 운전을 하다 그 다리를 지나치면서 잠시 스무살때의 그 느낌이 되살아나 가슴이 먹먹해지며
그 때 뭣도 모르고 젖은 머리가 섹시하다는 말을 서로 건넸던 너무 어렸던 시절이 눈물나게 그리워졌다.
8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그 소나기를 다시 맞게 된다면,
다시 그렇게 누군가의 손을 움켜잡고 뛸 수 있을까.
아마 지금은 갈아입을 옷에, 주머니에 든 휴대전화 걱정에
얼굴 한 가득 짜증을 안고 입으론 불평을 쏟아내며 그냥 가까운 나무나 구조물 아래 숨을 것 같다.
어느새 나 그때보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고 그만큼 겁도 많아졌다.
내가 요즘 가장 부러운 건, 옷 젖을 걱정 없이 맘껏 비를 맞으며, 물을 차내며 뛸 수 있는 아이들의 가벼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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