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의 레스토랑(Raoul's restaurant)은 1975년 문을 열었습니다. 프랑스 알자스(Alsace) 출신의 가이, 세르주 형제는 프린스 스트리트 180번지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인수한 뒤 프랑스 극동부 스타일의 생선, 고기 요리를 내놓았고 곧 인기 식당이 됐다고 합니다. 50년이 지난 현재는 비싼 가격표가 붙은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운영 중이에요.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조니 뎁과 케이트 모스 등의 유명 인사들이 이 집을 방문했습니다. 영화 펄프 픽션이 개봉하던 날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와 출연진이 식당을 가득 채운 일화도 이 집의 수많은 자랑들 중 하나고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영화 디파티드에도 라울스에서 촬영한 장면이 있어요.
Raoul's · 180 Prince St, New York, NY 10012 미국
★★★★★ · 프랑스 음식점
www.google.com
주소 : 180 Prince St, New York, NY 10012 | https://maps.app.goo.gl/pKq1RQhcuK4BXaS58
메뉴 : $32 (라울의 페퍼 버거)
홈페이지 : http://raouls.com | https://www.instagram.com/raoulsrestaurantnyc/
전등 몇 개로 겨우 밝힌 실내는 한밤처럼 어두운 것이 꼭 바깥과 한나절쯤 시차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벽에는 이런저런 그림, 사진들이 걸려 있었는데 유독 누드화가 많았습니다. 특히 이 식당의 대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소파 위 여인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더군요.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바는 1975년부터 지금까지 그 모습 그대로 운영 중입니다. 술병과 술잔들 주변으로만 환한 보라색 조명을 두른 것이 이 집의 개성이라고 해요. 안쪽 홀에는 아늑한 분위기의 소파 좌석, 2인용 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창문이 있는 입구 쪽 홀보다 더 어두운데 그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안쪽 자리가 인기 있다고 합니다. 이 식당에서 가장 많은 조명이 달린 어항 안에는 뉴욕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습니다.
이 집의 버거는 하나, 라울의 페퍼 버거(Raoul’s Burger au Poivre)입니다. 에스콰이어는 라울의 페퍼 버거를 미국 최고의 버거로 꼽았습니다. 가격은 32달러로 제가 방문했을 때보다 2달러가 올랐습니다. 감자튀김이 포함되긴 하지만 세금과 팁을 포함하면 5만 원이 훌쩍 넘으니 만만치가 않죠. 크리스마스 이브라 와인 아니면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싶었는데 버거가 너무 비쌌어요.
프렌치 레스토랑답게 버거의 구성이 독창적이에요. 7.5온스 소고기 패티와 생 앙드레 치즈, 적양파, 코니숑, 물냉이 그리고 디종 머스터드와 올리브유 소스 등입니다. 이 집을 취재한 한 기자는 이 버거를 프랑스산 재료와 영감으로 만든 최초의 버거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 음식의 모양과 맛도 흔히 먹던 버거와는 달랐어요.
에이미스 브레드(Amy's Bread)의 찰라 번(Challah bun)은 표백하지 않은 밀가루로 만든 빵으로 쫄깃한 식감, 풍부한 곡향이 장점입니다. 제가 먹어본 버거 번 중 가장 고급스러운 것으로 기억합니다. 7.5 온스의 소고기 패티는 브리스킷이 포함돼 있어 일반적인 소고기 패티보다는 식감이 살아있어요. 패티는 통후추와 코셔 소금을 입혀 스테이크처럼 팬에 버터를 둘러 구웠습니다. 그만큼 버터와 후추의 풍미가 강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요. 워낙 후추를 좋아하는 저는 통후추가 씹힐 때마다 입 안에 향이 가득 차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생 앙드레 치즈와 물냉이 같은 채소는 버거보단 샌드위치에 어울릴 것 같지만 번과 패티도 이색적이라 오히려 잘 어울립니다. 제조 과정에서 크림이 들어가는 생 앙드레 치즈는 식감이 부드러워요. 지방 함량이 다른 치즈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 그 비결인 것 같습니다. 샐러드가 있어 느끼하지도 않고요. 이 집의 자랑인 페퍼 소스에 버거를 찍어서도 먹어 봤는데 맛이 다소 무거워지고 치즈 향을 가려서 그냥 먹는 것만 못했습니다.
뉴욕에 있지만 미국 버거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 독창적인 버거. 취향에 맞는 사람들에게 이 버거는 대체 불가능한 음식입니다. 일부러 고기의 향을 누른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재료의 조화가 좋고 번까지 완성도가 높아요. 거기에 이따금 입 안에 퍼지는 후추향까지. 이것만큼은 뉴욕 버거가 아니라 그냥 라울의 버거라고 해야겠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nycburgers
[연재 브런치북] 뉴욕버거 57선
80일간 57개의 버거를 먹었습니다. 이왕 먹는 거 가장 좋아하는 걸 제대로 먹기로 했습니다. 푸드 트럭과 고급 스테이크하우스, 프렌치 레스토랑, 백 년 넘은 노포까지. 다양한 식당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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