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는 백 년 넘은 식당을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일찍이 번창해 변함없이 영광을 누리는 땅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이런 식당들은 건물과 내부 인테리어뿐 아니라 음식의 구성과 맛도 본래의 것을 고집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반드시 최선은 아닙니다. 그들과 다른 제 입맛 때문일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가 먹는 음식이 그때보다 발전했을 거란 생각도 있어요. 오늘 소개할 S&P 런치도 그와 같은 장,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맨해튼 5번가, 플랫 아이언 빌딩 앞자리를 백 년 가까이 지킨 이 식당에 가 볼 가치가 있냐 묻는다면 답은 예, 입니다. 종합적으로 평가할 때 말이죠.
https://maps.app.goo.gl/gf34j4BNPiTUY4rh7
S&P Lunch · 174 5th Ave, New York, NY 10010 미국
★★★★★ · 음식점
www.google.com
S&P
S&P
www.sandwich.place
맨해튼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플랫아이언 빌딩 바로 건너편에 있는 백년식당입니다. 1928년 찰스 슈와드론(Charles Schwadron)과 루빈 풀버(Rubin Pulver)는 주변 상인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아침 메뉴와 유대인 전통 음식들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인 1929년 식당을 모누스 아이젠버그(Monus Eisenberg)에게 팔아 버렸어요. 새 주인인 아이젠버그는 식당 이름을 아이젠버그 샌드위치 숍(Eisenberg's Sandwich Shop)으로 바꾸고 메뉴들도 개편했습니다. 그와 가족들이 운영한 샌드위치 가게는 맨해튼 최고의 샌드위치 가게들 중 하나로 꼽히며 50여 년 간 성업했어요.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가족은 1979년 식당을 루이 와이스버그에게 넘겼고 이후 스티브 오, 조쉬 코네키, 워런 치우로 주인이 수차례 바뀌었습니다. 인기와 유명세를 잃은 식당은 결국 2021년 임대료 체납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다행히 샌드위치 사업가 에릭 핑켈스타인(Eric Finkelstein)과 맷 로스(Matt Ross)가 식당을 인수해 2022년 S&P 런치로 이름을 바꿔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에서 보면 그저 낡은 샌드위치 가게지만 안에 들어가면 오래된 노포에 와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벽부터 주방 구조, 메뉴판과 액자 속 그림까지 꽤나 오래돼 보여요. 내부는 매우 좁고 긴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주방과 맞닿아 있는 12m 길이의 바에 나란히 앉아 주문하고 떠들고 먹는 풍경이 정겨워요. 광장 시장 빈대떡, 남대문 시장 칼국수집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안쪽으로 들어가면 테이블도 몇 개 있는데 이건 2005년에 추가된 것이라고 합니다.
10달러짜리 S&P 버거를 주문했습니다. 기본 치즈버거보다는 가게 이름이 붙은 버거가 이 가게를 보다 잘 설명해 줄 것이라 생각했어요. 제가 방문했을 때는 다른 집보다 저렴한 가격을 장점으로 여겼는데 그사이 12달러로 가격이 올랐습니다. 뉴욕 물가는 정말.
구성은 소고기 패티와 아메리칸 체다 치즈, 토마토, 생양파, 피클, 양상추 그리고 특제 소스입니다. 빵은 평범한 화이트 번을 사용했어요. 지극히 평범한 단어 그대로의 클래식. 백 년 된 노포의 음식들은 기교 없이 정직하기 마련이니까요. 맛도 평범합니다. 장점은 패티와 치즈를 잘 구웠고 채소가 신선했다는 것. 가격이 가격인지라 패티는 얇고 육향이나 식감도 특출 나지 않습니다만 치즈를 녹여 패티의 부족한 풍미를 채웠어요. 아쉬운 것은 번. 버터로 한 번 구워서 식감이나 향을 살린 것은 좋았지만 빵 자체의 품질이 마트에서 열 개 묶음으로 파는 평범한 버거 번 수준이라 한계가 있습니다. 그간 너무 고급 버거들을 먹은 탓도 있겠습니다만. 피클은 바닥에 넉넉하게 깐 것도 모자라 오이 하나를 통째로 함께 주는데 짠맛이 강하지 않은 것이 좋았습니다.
옛 방식을 고수해 온 음식은 종종 현대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 면도 있어서 이해하거나 때때로 그것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작은 식당에서 그 시절 방식대로 만든 버거를 맛보는 경험에 보다 큰 가치를 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선 버거보단 샌드위치를 먹는 게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