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에서 새로운 형태의 컴팩트 디지털카메라 X 하프를 출시했습니다. 세로 비율 이미지와 필름 모드, 하프 포맷 필름 카메라를 응용한 촬영 방식 등 기존에 없던 형태의 카메라라는 점에서 관심이 갑니다. 그래서인지 시장의 반응도 뜨겁고요. 중형 컴팩트 카메라 GFX100RF도 그렇고 최근 후지필름이 신선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는 것을 높게 평가합니다. 외형 역시 취미 사진가들이 좋아할 것들을 잘 구현해 놓았습니다.
이 카메라는 1인치 센서와 단초점 렌즈를 탑재한 컴팩트 카메라입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급부상하면서 침체됐던 컴팩트 카메라가 최근 취미 사진가들에 의해 다시 활황을 맞고 있는데 때마침 시장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잘 내놓았어요. 앙증맞은 외형이 소유 욕구를 자극하고 마치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듯한 사용자 경험을 곳곳에 배치해 놓은 것이 눈길을 끕니다. 애초에 이것은 전혀 진지한 카메라가 아닙니다. RAW 파일을 아예 지원하지 않은 것에서도 알 수 있어요. 후지필름의 자랑인 필름 시뮬레이션을 통해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찍는 즐거움을 내세운 최고급 토이카메라입니다.
디자인은 X 시리즈 그 중에서도 X100 시리즈의 요소들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사각형 실루엣에 광학 뷰파인더를 배치했고, 35mm 환산 약 32mm의 렌즈를 탑재했어요. 좌/우를 곡선으로 다듬어 앙증맞은 느낌을 강조했는데 이는 X-T50의 디자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클래식 디자인의 X 컴팩트 카메라라는 점에서 예전에 출시했던 X10 시리즈와도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둘의 컨셉은 크게 다릅니다. X10 시리즈는 작은 포맷이지만 엄연히 프로, 하이 아마추어까지 고려한 하이엔드 시리즈였다면 X 하프는 재미를 최우선으로 한 장난감입니다.
발표에 맞춰 제품의 컨셉과 특징을 소개하는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스케치 화면으로 시작되는 영상이 안 그래도 이 카메라의 감성에 빠진 예비 구매자들을 더욱 괴롭게 할 것으로 보여요.
https://www.youtube.com/watch?v=OCUKjmwd9IM
제품의 형태와 기본적인 사용법을 가장 먼저 보여줍니다. 필름 카메라를 연상 시키는 외형 그리고 다이얼과 셔터 버튼을 조작해 찍는 즐거움. 여기서 이 제품의 큰 특징이 나오는데 기본 포맷이 세로 촬영이라는 것입니다. 1인치 이미지 센서를 세로로 배치했어요. 디지털 카메라 중에서는 이런 시도가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대표 기능 중 하나인 2 in 1 촬영을 고려한 설계이자 세로 촬영 비율이 높은 스마트폰 세대들에게 어필하는 요소로 보입니다. 왼쪽에는 타원형의 보조 화면이 있습니다. 필름 시뮬레이션이나 설정값 조작 등에 활용됩니다. X-Pro3에 들어간 보조 모니터와 비슷하면서 더 나은 활용도를 보여줄 것으로 보여요. 일단 터치 조작이 되니까요.
세로 촬영된 사진 두 장을 묶어 한 장으로 출력하는 2 in 1 기능은 하프 포맷 필름 카메라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상단에 있는 레버를 이용해 두 장을 묶을 수 있다고 하네요. 이 역시 필름 카메라의 와인딩 레버에서 따 온 것이죠.
좀 더 재미있는 것은 필름 카메라 모드입니다. 별도의 촬영 모드로 배치할 만한 장치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영상을 보니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여기에는 필름 카메라 시대부터 후지필름이 구축한 기술들을 활용한 기믹들이 망라되어 있어요. 필름 카메라 모드를 실행시키면 사용자는 마치 카메라에 필름을 장착하는 것처럼 LCD 모니터에서 필름 시뮬레이션과 촬영된 사진의 수를 선택합니다. 36매 벨비아 필름, 72매 프로비아 필름 등 종류와 숫자를 조합한 자신만의 필름을 만들고 나면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듯 사진을 찍게 됩니다. LCD 모니터를 이용한 라이브 뷰 촬영, 촬영 사진 등 디지털 카메라의 전유물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화면에는 단순히 몇 장의 사진을 찍었는지만 표시됩니다. 옆쪽 보조 화면엔 현재 사용 중인 필름 시뮬레이션이 표시되고요. 모든 촬영이 끝나면 스마트폰 앱에서 해당 사진을 확인하는데 밀착 인화 된 필름을 보는 듯한 레이아웃이 아주 재미있어요. 촬영부터 현상까지의 과정을 필름과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해 놓은 것이 사용자들에게 어떻게 평가될지 궁금합니다. 보기엔 그럴싸한데 저는 두어 번 재미로 쓰고 나면 안 할 것 같거든요.
1800만 화소 1″ BSI-CMOS 이미지 센서(11.7 x 8.8 mm)
후지논 10.8mm F2.8 렌즈 (35mm 환산 약 32mm)
JPEG 단독 | RAW 미지원
1/2000-900초
1080 x 1440 24p 동영상 촬영(8-bit, H.264)
2.4인치 92만 도트 화면, 보조 화면 | 터치 조작 지원
터널식 광학 뷰파인더
필름 시뮬레이션(10종) | 필터 효과(18종)
NP-W126S 배터리 | 880컷 촬영
106x64x30mm
240g
$849
제품의 주요 사양입니다. 1인치 1800만 화소의 이면조사형 CMOS 이미지 센서를 사용했습니다. 과거 하이엔드 컴팩트 카메라에 주로 사용됐던 포맷입니다. 현재도 소니 RX100로 명맥이 유지되고 있고요. 장점이라면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나은 화질을 확보하면서도 작은 카메라를 만들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사이 스마트폰 카메라의 이미지 센서도 1인치에 근접할 정도로 발전한 터라 그 장점은 이전보다 퇴색됐습니다. 렌즈는 후지논 10.8mm F2.8 렌즈를 탑재했습니다. 35mm 환산 약 32mm로 전천후로 사용하기 좋겠어요. 조리개 값이 F2.8로 다소 어두운 것이 아쉽습니다. F1.8-2 수준이었다면 1인치 센서에서도 어느 정도의 심도 연출이 가능했을텐데요. 저조도 대응력도 한결 나았을테고요.
RAW 촬영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출시 전 유출 된 사진들을 보면서 구매를 고려했던 마음이 순간 사그라들 정도로 아쉬운 내용입니다. 제품의 컨셉과 어울리긴 합니다. 후보정 없이 촬영하거나 필름 시뮬레이션을 즐겨 사용하는 기존 X 시리즈 유저에게는 무관할 테고요.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아예 지원이 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 카메라를 결국 매끈하고 고급스러운 토이 카메라로 평가하는 이유고요. 매일 들고 다닐 장난감으로는 좋지만 RAW 촬영이 불가능한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오, 입니다. 그리고 말하겠죠. 850달러면 아주 괜찮은 카메라를 살 수 있다고. 그 카메라들이 이렇게 작고 예쁘지 않은 것이 문제지만.
매력적인 카메라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거예요.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했으니 잘 만든 제품이라 생각합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 아름다운 외형, 과거에서 영감을 얻은 장치와 기능들, 취미 사진 트렌드를 제대로 반영한 것까지.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다른 X 시리즈들처럼 꽤 오랫동안 품귀 현상을 빚을 것 같습니다. 필름 감성으로 포장돼 여기저기 바이럴 될 것이고 평소 사진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공유될 것 같아요. 하지만 제겐 장난감치고 좀 비싸요. 850달러 중에 감성이 차지하는 값이 얼마일까 계산해보니 지금 쓰고 있는 X-T50과 아이폰 카메라를 잘 쓰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