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은 추울 때 먹는 거라지만 아무래도 무더위에 먹는 짜릿함과 개운함이 좋은 걸요. 을지면옥은 평냉에 재미를 붙인 계기가 됐던 곳입니다. 영업 중단 후엔 필동면옥에서 달래면 됐지만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어서인지 다시 가 보고 싶더라고요. 이전 후엔 첫방문이었습니다.
이전 점포에서 쓰던 간판과 복도에 있던 의자를 가져다 놓은 것이 눈에 띄더라고요. 오랜 단골들은 이걸 보며 왠지 찡했을 것 같습니다. 장소를 옮긴만큼 이전보다 더 크고 깨끗해졌습니다. 그 정취가 그리운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습관대로 냉면을 주문한 이후 메뉴판을 봤습니다. 여기서 냉면 외엔 먹어본 적이 없더라고요. 다른 냉면집에 비해 유독 을지면옥이 술 드시는 어르신들이 많았던 기억입니다. 냉면을 가위로 잘게 잘라서 숟가락으로 퍼먹는, 그렇게 소주 안주로 곁들이는 방법도 여기서 처음 알게 됐으니까요. 제가 술을 좋아하면 수육이나 편육을 시켰을텐데 아무래도 저는 냉면 한그릇에 온전히 집중하는 게 좋아서요.
제가 처음 을지면옥에 방문했을 때 가격이 만원 아니면 만천원이었는데 이제 만오천원입니다. 많이 올랐네요. 뭐 안 오른 게 없긴 합니다만 냉면 가격에는 유독 예민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가격이 오르면서 양이 좀 늘어난 것 같더라고요. 예전엔 국물까지 다 먹어도 배가 안 찼던 것 같은데 이제 면만 먹어도 꽤 든든한 걸 보니. 그 사이 제가 늙어버린 건지도요. 그래도 담음새도 맛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파와 고춧가루가 있어 다른 곳보다 자극적인 맛입니다. 그래서 지인들 평냉 입문 시킬 때 이곳과 봉피양이 평이 가장 좋았어요. 그 사이 신흥 강자들이 생기면서 을지면옥의 명성이 이전만큼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언제나 이 자리에 있을 것 같긴 합니다. 평양냉면은 좋지만 너무 심심한 것까지는 싫다 싶으면 을지면옥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