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7월 말, 이틀 일정으로 목포를 다녀왔습니다. 처음 가 보는 곳이고 먼저 다녀 온 이들의 평도 좋아서 여유있게 묵고 싶었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가보니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점이 많아서 조만간 다시 오기로 했어요. 2022년 한여름 목포의 모습들을 모아 봤습니다.
#한여름
올 여름은 폭염과 폭우 둘뿐이었죠. 목포에 가는 날까지 서울은 몇 주간 비가 이어졌습니다. 제대로 해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반대로 남쪽 지방은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길래 되도록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보자,하고 선택한 곳이 목포였어요. 기쁘게도 남쪽 세상은 화창하고 푸르렀습니다. 여름이, 바다가, 나무와 꽃이 어떤 색인지 선명하게 보여주었죠.
다만 낮기온이 32도까지 오르고 햇살은 타는 듯 따끔거려서 한낮엔 연신 차가운 생수를 들이켜야 했습니다. 중간중간 어디라도 들어가 열을 식혀야 했고요. 숙소에서 옷을 벗으니 팔과 얼굴, 목이 새카맣게 타 있더군요. 눈부신 풍경, 선명한 여름색을 본 것은 즐거웠지만 반대로 저는 피부색을 잃었네요. 선명하게 남은 시계 자국이 그 날의 열기를 매일 일깨웁니다.
#옛거리
변화와 발전이 더뎌서일 수도, 있는 그대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목포에 남아 있는 많은 수의 일제시대 가옥들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목포역에서 이어지는 젊음의 거리, 1897개항문화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이색적인 또 낡은 건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것은 근대역사관으로 또 어떤 것들은 학교 강당, 상가, 카페 등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잔재의 기원을 생각하면 달갑지 않지만 지금은 이 도시의 일부로 사람들의 보금자리, 터전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멋져 보이기도 합니다. 날이 너무 더워 지도 속 건축물들을 모두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 방문 때 해소하려고요.
#실루엣
여행 중 가장 반가운 것은 평범한 배경, 그 앞을 무심히 지나가는 주인공이 겹쳐 만들어 내는 장면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담아냈을 때 큰 기쁨을 느낍니다. 짧은 시간동안 바쁘게 도시 일부를 훑는 동안 늘 무더위에 지쳐 있었는데 목포 곳곳에 있는 낡은 골목들과 어지러운 항구에서 이런 거리 풍경을 보고 담을 때는 잠시나마 더위를 잊었습니다. 거짓말 좀 보태 시원한 기분까지 느꼈어요. 진짜 여행하는 듯한 기분. 덥고 힘들지만 그 덕에 이만큼 근사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케이블카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목포해상케이블카 타기. 다행히 화-수 평일 일정이라 인파가 많지 않았고 센스 있는 직원들은 혼자 온 제게 케이블 카 하나를 독차지 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총 길이 3.23km로 국내에서 가장 긴 해상 케이블카라는 말에 끌렸고 케이블 카 안에서 찍은 노을 사진들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가격은 일반 캐빈 기준 왕복 22000원, 편도 18000원이니 역시 왕복이 낫겠죠.
돌아올 때는 구름이 잔뜩 껴서 기대했던 노을은 보지 못했지만 그림처럼 화창했던 오후 풍경을 하늘 위에서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구간도 길고 안에서 보는 풍경도 근사해서 목포 여행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어요. 다음엔 꼭 멋진 노을을 보기를 바라며 재도전.
#컬러
서울에서도 보는 하늘, 잠깐만 달려 나가면 있는 바다, 어느 도시에나 있다는 벽화 마을이라지만 여행 기분, 여행 느낌이 더해지면 괜히 더 근사해 보인다죠. 거기에 하늘, 바다, 벽화 이 셋이 한 데 어우러지는 풍경은 보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요. 오후가 가장 뜨거운 시간에 서산동 시화 골목에 있었습니다. 부산 영도나 감천마을을 연상 시키는 좁은 골목에 소박하고 선명한 벽화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지나고보면 무더위 좀 피하고 갔어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한창 여행에 빠져있을 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죠.
그 외에도 목포진역사공원, 북항, 춤추는 바다 분수 등에서 한여름 목포의 색을 만끽하고 왔습니다. 그땐 땀에 푹 젖어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는데 시원한 카페에 앉아서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아침이며 오후, 저녁 시간이 다 그립습니다.
#유달산케이크
종일 바쁘게 돌아 다니느라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첫날은 유명한 코롬방 베이커리의 크림치즈 바게트 하나 먹고 종일 생수만 마시며 다녔고, 둘째 날도 식당이 휴가 중이거나 줄이 길어서 기대했던 남도 음식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습니다. 다행히 돌아오기 직전에 유명한 태동식당 중깐은 먹었습니다만.
그래서 목포 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케이크가 됐습니다. 둘째날 오후 무더위를 피해 찾아간 카페에서 먹은 목포 유달산을 형상화 한 재미있는 케이크. 목포 카페답게 백 년 가까이 된 목조 건물을 사용하는 곳이었어요. 공간도 재치있는 메뉴도 모두 마음에 들어서 추천 리스트에 추가했습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둘러 본 목포는 옛 정취와 요즘 관광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습니다. 일제 가옥들을 품고 있는 낡은 골목을 둘러보는 즐거움, 국내 최장 케이블카와 깔끔하게 정비 된 스카이워크, 고하도 전망대, 해안 산책로를 둘러보는 즐거움이 모두 남았습니다. 시간이 짧은 탓에 채우지 못한 음식과 인연, 여유 같은 아쉬움은 다음 방문 때 해소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