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그랜더의 VM 마운트 망원 렌즈 아포스코파 90mm F2.8을 약 한 달간 사용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선 많은 분들에게 낯설 90mm 망원 렌즈의 사용 후기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저도 M 시스템에선 처음 사용해 보는 90mm 망원 렌즈라 처음엔 매우 낯설었지만 새로운 매력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음식 사진들에서요.
이 렌즈의 장점은 가끔 한 번씩 필요하지만 전천후로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어 망설였던 90mm 렌즈를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필터 구경이 39m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작고 무게 역시 일반적인 광각~표준 렌즈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조리개 값이 F2.8로 망원 렌즈 특유의 심도 표현을 즐기기 적당하면서 야간/저조도 촬영에도 어느 정도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 렌즈의 사양과 디자인 등 기본적인 정보는 이전 포스팅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90mm 프레임의 함축적 표현
이 렌즈의 90mm 프레임은 그동안 라이카 M 카메라에서 사용했던 어떤 렌즈와도 달랐습니다. 좋은 말로는 완전히 새로웠고, 나쁜 표현으로는 답답하고 예측 불가능했습니다. 결과물 역시 마찬가지인데, 눈에 보이는 장면의 극히 일부만을 취하는 망원 프레임의 특성상 주 피사체가 상당히 부각되어 있고 표현 자체가 함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프레임 구성의 어려움
처음 뷰파인더를 들여다 봤을 때 그리고 상당 시간동안 촬영에 애를 먹었습니다. 뷰파인더/LCD를 통해 렌즈의 프레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카메라들과 달리 라이카 M 카메라에선 고정된 뷰파인더 안에 프레임 라인으로 촬영 영역을 표시하는데 90mm 망원은 이것이 작아도 너무 작더군요. 위 사진에서는 RF 카메라의 뷰파인더에서 90mm 망원이 차지하는 영역이 대략 어느 정도인지 표시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실제 촬영한 35mm, 90mm 결과물을 토대로 비교한 것입니다.
겹쳐서 비교해 보니 상당히 큰 차이이며 실제 뷰파인더로 보는 화면은 이보다 더 작고 좁게 느껴집니다. 작은 네모 안에서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서 한동안 애를 먹고 결과물도 불만족스러웠습니다. 보이는 화면 자체가 작으니 아무래도 디테일한 표현보다는 주 피사체를 화면 안에 어떻게 배치할 지가 관건이 됐죠.
그런 특징 때문인지 결과물 역시 SLR, 미러리스 카메라의 망원 촬영보다 간결해 집니다. 애초에 다양한 것을 담아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으니 표현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느낌이랄까요.
장점이라면 주 피사체를 부각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 모든 망원 렌즈가 갖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익숙해지면 그동안 M 카메라로 기대하지 않았던 인물,정물 촬영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지만 M 마운트에서 꾸준히 망원 렌즈가 출시되는 것은 분명한 강점 그리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겠죠.
#먹스타그램 활용
이 렌즈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은 음식 사진을 찍어 본 뒤부터입니다. 주 피사체를 부각시키는 데 최적화 된 프레임, F2.8 개방 촬영의 얕은 심도 표현이 제가 좋아하는 음식 촬영에 제격이었습니다. 그동안 M 카메라는 최단 촬영 거리와 화각 때문에 음식 촬영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아포스코파 90mm F2.8의 결과물은 꽤나 만족스러웠습니다. 소니, 캐논 등의 다른 카메라와 사뭇 다른 컨트라스트, 컬러가 더해지니 색다른 매력이 있더군요.
인물 촬영에선 아직 충분히 활용해 보지 못했지만 정물 사진에서는 90mm 렌즈가 가진 강점을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거기에 F2.8 개방 촬영에서 돋보였던 아포스코파 렌즈의 해상력, 심도 표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90mm 망원, F2.8의 심도 표현 능력
DSLR, 미러리스 카메라와는 형태도 목적도 사뭇 다른 RF 카메라에서 극적으로 얕은 심도의 이미지를 선호,추구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진가의 목적과 환경에 따라 심도 표현이 필요할 때가 있죠. 주제를 부각하거나 이미지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조리개 값이 낮은 렌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데 필연적으로 가격과 크기/무게의 부담이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아포스코파 90mm F2.8 렌즈는 매우 좋은 대안입니다. 표준 렌즈보다 좁은 프레임을 구성할 수만 있다면 월등한 배경 흐림,압축 효과를 통해 표현의 범위를 넓힐 수 있습니다. 억새를 찍은 위 사진은 SLR/미러리스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매우 쉽고 편하게 찍었던 이미지지만 M 카메라에서도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F2.8 조리개 값은 최신/고급 렌즈들과 비교하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90m 망원에서는 충분히 얕은 심도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한 달간 사용하면서 심도 표현의 부족함은 특별히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동안 M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배경 흐림 효과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고, 구도와 초점 설정에 급급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위 이미지들은 모두 F2.8 최대 개방 조리개 값으로 촬영한 것으로 극적이진 않아도 입체감, 표현의 풍부함을 더하기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조리개 값에 따른 심도 표현 차이 ]
동일한 환경에서 조리개 값에 따른 심도 표현의 차이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망원 렌즈다보니 F5.6 촬영 까지는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이상의 효과를 원하면 F2 혹은 그 미만의 밝은 렌즈를 사용해야겠죠. 개인적으로는 이 렌즈가 크기/무게, 조리개 값의 적절한 타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방 촬영에서의 뛰어난 이미지 품질
앞서 살펴본 대로 아포스코파 90mm F2.8 렌즈는 최대 개방촬영의 이미지 품질이 뛰어난 편입니다. 이것이 배경 흐림 효과와 대비돼 피사체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실제로 개방 촬영한 이미지를 확대해 보면 작은 크기에도 광학 완성도가 뛰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은 선의 표면은 물론 표면 질감을 표현하는 능력도 우수합니다. 어떤 렌즈보다도 개방 촬영 심도가 높은 것을 감안할 때 이 렌즈의 중요한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주변부 해상력 역시 우수한 편에 속합니다. F5.6 조리개로 촬영한 이미지의 중심부와 주변부를 확대/비교한 것을 보면 중심부의 샤프니스와 컨트라스트가 다소 높지만 큰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렌즈의 크기가 작고 무게가 가벼워 주변부 화질/광량 저하를 우려했는데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였습니다.
저조도 대응 능력의 한계
렌즈를 사용하며 느낀 아쉬움으로 F2.8의 조리개 값을 꼽겠습니다. 그 자체로는 결코 어두운 값은 아니지만 라이카 M 카메라에는 손떨림 보정 장치가 없기 때문에 충분한 셔터 속도를 확보하기 어렵거나, ISO 감도를 높게 설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미지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1/125초 이상의 셔터 속도를 설정해서 사용했는데 이 때 F2.8의 조리개 값이 아쉽더군요. 사실 이건 렌즈보다는 카메라 성능의 단점으로 꼽아야 옳겠습니다만.
가볍다, 새롭다, 즐겁다.
새로운 표현을 끌어내는 망원 렌즈
보이그랜더 아포스코파 90mm F2.8 렌즈는 제가 처음으로 사용한 M 마운트 망원 렌즈입니다. 그동안 뷰파인더 표시의 불편함, 초점 조작의 어려움, 렌즈 크기/무게의 단점, 좁은 활용도 등의 이유로 망원 렌즈를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 아포 스코파는 그 중 여러 장애물을 제거하고 색다른 재미를 안겨 준 렌즈입니다. 무엇보다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가지고 다니기 부담이 없었습니다. 90mm 망원이 필요한 순간이 많지 않지만 가끔 마음에 쏙 드는 장면을 만났을 때 꺼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카메라에 마운트 했을 때의 균형도 좋았고요.
이미지 품질은 렌즈의 크기,무게,가격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입니다. 무엇보다 F2.8 최대 개방 촬영의 결과물이 만족스러웠고, 기분 좋은 배경 흐림이 찍는 맛을 더했습니다. 렌즈를 처음 쥐었을 때 느낀 가벼움, 낯선 프레임을 보고 촬영하면서 느낀 새로움, 전과 다른 결과물들을 보며 느낀 즐거움까지. 아직까지 망원 렌즈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M 시리즈 사용자들에게 가볍게 입문할 수 있는 첫 번째 망원 렌즈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 라이카 M10-D & APO-SKOPAR 90mm F2.8 렌즈로 촬영한 이미지 ]
*썬포토(주)의 도움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