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니콘의 새로운 미러리스 카메라가 발표됐습니다. 제가 가는 사진 커뮤니티가 며칠간 떠들썩할 정도로 기대를 모은 제품이라 평소 관심 없는 니콘 제품임에도 곳곳에서 정보를 찾아봤어요. 느낀 것은 '니콘+클래식 디자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열광케 할 수 있을만큼 니콘의 과거 유산이 대단하다는 것.
니콘의 새로운 미러리스 카메라 Z fc는 클래식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최고의 필름 카메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자사의 FM2를 현대 미러리스 카메라로 재탄생시킨 것이라는 설명. 실제로 이 디자인은 꽤 매력적이지만 사실 Z fc가 현재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서 내세울 것이 이것뿐이기도 합니다. 특별해 보이는 외형도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레트로 디자인 트렌드에 뒤늦게 탑승한 것이고, 카메라 사양 역시 경쟁 제품 대비 큰 장점이 없거든요. 심지어 지난 해 발매된 Z 50과 비교해도 디자인 외 차별점이 거의 없습니다. -같은 모델을 디자인과 컬러만 바꿔 4년째 팔고 있는 라이카 카메라를 사용하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서도-
니콘 Z fc의 디자인은 자사의 필름 카메라 FM2에서 가져 왔습니다. 필름 카메라로서의 기본기가 좋고 디자인도 예뻐서 지금도 취미로 필름 카메라를 쓰고 싶은 분들에게 인기가 있는 모델입니다. 니콘이 이 디자인으로 미러리스 카메라를 만든 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어요.
다만 올림푸스가 이미 9년 전인 2012년부터, 후지필름이 7년 전인 2014년부터 클래식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운 것을 생각하면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이 문제겠죠. 이 분야를 가장 잘 할 수 있고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니콘이 너무 뜸을 들인 것이 아쉽습니다. 니콘 Df가 아주 멋진 카메라였지만 그 후 텀이 너무 길기도 했고 스페셜 모델 격이라서요.
늦은 감이 있지만 Z fc는 고화질과 고성능 대신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실제로 국내/외 홍보 이미지를 여성 모델과 함께 촬영했고요. Z 50의 껍데기 갈이라는 조롱 아닌 조롱을 받기도 하지만 APS-C 포맷 미러리스 카메라로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사양을 갖춘 Z50를 레트로 무드 가득한 디자인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필름 카메라를 취미로 사용하고 싶은 분들에게도 필름의 높은 장벽 대신 최신 미러리스 카메라로 그 감성을 맛볼 수 있는 선택지가 되기도 하고요.
Z fc의 주요 사양은 아래와 같습니다. 더불어 니콘 홈페이지의 제품 소개 페이지를 함께 링크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살펴 보세요.
https://www.nikon-image.co.kr/product/mirrorless/Z_fc
약 2100만 화소 APS-C 포맷 이미지 센서와 11fps 연속 촬영, 4K 동영상 촬영 등 전체적인 사양은 Z 50과 동일합니다. 홈페이지에서 Z fc와 Z 50의 사양을 비교해 보니 틀린 그림 찾기 수준이더라고요. USB 포트가 Type C로 바뀐 것 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신 예상 가격이 현재의 Z 50 가격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서 니콘 카메라와 FM2에 향수를 가진 사람들, 필카 감성을 누리고 싶지만 필름값도 부담되고 필카 운용하기가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겐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 싶습니다. 많지 않아도 분명한 수요층이 있기에 니콘도 뒤늦게나마 이 트렌드에 탑승한 거겠죠.
아래는 니콘 Z fc의 제품 이미지입니다.
Nikon Z fc
FM2의 부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야심찬 디자인이지만 사실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서 이런 레트로 디자인은 더 이상 놀랍거나 매력적인 것이 아니게 됐죠. 후지필름과 올림푸스가 사명을 걸고 이런 클래식 디자인의 카메라들을 십 년 가까이 선보이고 있으니까요. -물론 올림푸스는 안타깝게 됐지만-. 역시나 이 제품은 니콘 그리고 FM2를 기억하는 이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니콘 유저들의 서브 카메라 용도 정도.
후지필름과 올림푸스 카메라를 적절히 섞어 놓은 듯한 디자인과 버튼,다이얼 조작계라 별로 인상적이지 않지만 상판의 다이얼과 헤드 부분 가죽 마감, 작은 디스플레이는 정말 멋집니다. Df의 그것을 가져온 것 같은데 이 제품의 가장 멋진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과거 필름의 잔량을 표시하던 정보창을 가져다 놓은 저 화면이 화룡점정입니다.
Z fc와 함께 렌즈 두 개가 발표됐습니다. 표준줌 렌즈와 컴팩트 단렌즈 하나씩. 이 구성도 사실 놀랍거나 신선하지 않습니다.
NIKKOR Z DX 16-50mm f/3.5-6.3 VR
Z fc의 렌즈킷 구성용이자 입문자를 위한 표준줌 렌즈입니다. 흔히 번들 렌즈로 불리는 것으로 대부분의 APS-C 포맷 미러리스 카메라들에 곁들여지는 사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35mm 환산 24-75mm 초점거리를 갖는 16-50mm에 F3.5-6.3의 가변 조리개 거기에 손떨림 보정이 있는 평이한 사양입니다. 두께가 3.2cm, 무게가 135g으로 역시 휴대성에 초점을 맞춘 렌즈죠. 사실 이 렌즈는 Z fc에 맞춰 개발된 것이 아니고 Z 50과 함께 출시된 표준 줌 렌즈의 색상을 실버로 변경한 것입니다.
이 카메라의 디자인과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경통 돌출형 구성이 못내 아쉽습니다. 가격과 무게 때문에 경통과 마운트부 소재 역시 플라스틱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금속 소재 Z fc의 실버 컬러와 그 톤이 맞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요. 가격과 킷 구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제품 기획으로 보이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NIKKOR Z 28mm f/2.8 SE
Z fc에는 요게 진짜라죠. 스페셜 에디션(SE)으로 나온 28mm F2.8입니다. 경통의 실루엣과 실버 링, 초점 링 마감까지 FM2 시절의 니코르 렌즈들의 디자인을 잘 가져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렌즈가 APS-C 포맷에 대응하는 DX 렌즈가 아닌 풀프레임 대응 FX 렌즈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Z fc에 사용할 경우 초점거리는 약 42mm가 됩니다. DX 포맷 카메라의 렌즈킷에 FX 렌즈를 넣는다는 것은 머지 않은 미래에 FX 포맷 Z f 카메라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물론 지금은 같은 디자인의 DX 18mm F2 정도 렌즈를 만들고 차후 풀프레임 버전에 이 렌즈를 발표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만.
카메라와 잘 어울리는 디자인에 42mm F2.8의 사양 등 Z fc 사용자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격도 16-50 렌즈킷과 비교해 100불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요. 이 모양을 보니 Z fc를 한 번쯤 써 보고 싶긴 합니다.
거기에 그립의 색상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으로 이 카메라는 감성에 올인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던지고 있습니다. 추가금이 필요하다지만 2021년에 이 카메라를 구매하는 사용자라면 감성을 매우 중요한 구매 요소로 여길테니 Z fc의 가장 큰 경쟁력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뒤늦은 레트로 트렌드 탑승이지만 FM2라는 빛나는 유산을 가진 니콘이기에 제법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발전으로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이 어느새 고급 취미의 영역이 된 요즘이 어쩌면 Z fc를 내놓기에 더 좋은 시기인 것 같기도 하고요.
아, Z fc의 국내 가격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달러 기준 957달러로 Z 50과 동일하게 책정된 것으로 보아 국내 가격 역시 비슷한 110만원 선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정도면 후지필름 카메라와 비교해 강점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