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족과 동료, 친구들과도 늘 코로나 19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많은 것이 미뤄지고 더러는 취소되기까지 해서 어떤 날엔 세상이 잠시 멈춘 것만 같았습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것 같던 발이 묶이고, 마음마저 얼어붙어 있던 날이 계속됐습니다.
어느새 날짜와 요일에 무감각해지던 3월의 어느 날, 매일 걷던 길의 나무에 꽃망울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몇몇은 이미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더라고요.
시간은 계속 흐르고, 새 계절이 어느새 땅에 내려앉았더군요.
하루 하루 힘차게 잎을 펼치는 꽃들을 보면서, 멈춰있던 제 시간을 다시 돌리기로 했습니다. 기운을 내서 일상을 다시 밟아 나가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매일 마스크 속에 갇혀있고, 슬픈 뉴스들을 들어야 하지만 일상 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하나씩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방에만 있던 카메라를 다시 챙겨 그것들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예쁜 것들,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사람들을 찍다 보니 금세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더군요. 비록 마스크로 가려져 보이진 않지만요.
이번 포스팅은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기록한 일상의 기록들입니다.
여전히 함께하고 있는 올림푸스 카메라로 담았습니다. 한 장 한 장 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사진들이고요.
어쩌면 제게 사진과 카메라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멋진 여행이나 매끈한 모델이 아닌 이런 삶의 조각들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새 계절의 소식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집 앞 골목길에서
점심 먹으러 가는 쇼핑몰 앞 가지 가는 나무에서
곧장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걷는 근처 개천가에서
색과 모양이 다른 봄꽃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이럴 때 걸음을 멈추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습니다. 종일 한 장도 찍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이지만 이 순간을 위해서 매일 카메라를 챙기게 되죠.
꽃을 사진으로 담는 것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주로 25mm 내지 45mm 초점거리에 F1.2의 밝은 개방 촬영이 가능한 올림푸스 PRO 단렌즈 시리즈를 사용합니다. 얕은 심도로 꽃술이나 꽃잎을 부각시켜 담을 수 있고 충분한 광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지가 밝고 화사해집니다. 낮은 감도를 설정할 수 있어 결과물이 깔끔하기도 하고요.
남쪽에서 벚꽃 소식이 들려오지만 제가 있는 도시가 벚꽃으로 채워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남았습니다. 그때까지 개나리와 산수유, 목련이 피고 지는 것을 감상하며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있음을, 기다리는 계절이 오고 있음을 느껴 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매일 카메라를 챙기면서 계절의 얼굴을 담을 계획이고요. 그때까지 지난 해 봄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래볼까봐요.
회사원의 일상
어느덧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회사원’이라는 이름이 어색합니다. 이렇게 오래(?) 근속하리라 예상하지도 못했고요.
제가 가구 회사에서 하는 일은 한정적입니다. 사진과 영상을 찍고 편집합니다. 제가 찍을 수 없는 사진들은 촬영장에 가 감독하거나 편집과 디자인에 관혀하기도 합니다. 가구 회사에 다니지만 가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이유지요.
최근에 제가 몸 담고 있는 회사에서 오프라인 쇼룸을 개장했습니다. 저는 오픈 날짜에 출근해 현장 스케치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날 제품 사진과 영상 촬영을 하러 가기도 했고요.
배경과 시간은 바뀌지만 십 년 넘게 저는 카메라와 함께, 모니터를 보며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들어 그게 마냥 신기합니다.
이 사진들은 사실 제가 원해서, 또는 아름다움에 참지 못해서 찍은 것들은 아닙니다. 필요와 요구해 의해 촬영했고, 다분히 제 의도와 상관없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죠.
그래서 따로 보관하지 않고 작업이 끝나면 꼭 필요한 것들만 두고 삭제하는 편입니다. 이번에도 삭제하기 전 남겨둘 것들을 고르다가 문득 이것들 역시 훗날 돌아볼 가치가 있는 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올림푸스 카메라를 제품 촬영 등의 상업적인 제품 촬영에 활용할 수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그럴 때 제 대답은 늘 같습니다. 수천만원대의 중형 디지털 백 시스템이 필요한 일부 촬영을 제외한다면, 올림푸스의 마이크로 포서드 카메라로 불가능한 촬영 영역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35mm 풀 프레임 포맷과의 비교라면 말이죠. 충분한 조명이 확보되고, 그 빛을 제어할 수 있는 스튜디오 환경이라면 마이크로포서드 카메라의 열세를 단번에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간 아쉬웠던 것은 2000만 화소의 부족함이었는데, 최근 제품들은 다중 촬영-합성 방식의 고해상도 이미지 촬영을 지원하면서 이 단점을 일부 상쇄하고 있습니다. 미러리스 카메라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마이크로포서드인 만큼 렌즈와 액세서리 역시 잘 갖춰져 있고요.
다만 영상쪽에선 같은 마이크로 포서드 연합인 파나소닉에 비해 아직은 아쉬운 점이 많이 눈에 띕니다. 영상의 품질은 4K 해상도와 OM-LOG400의 지원으로 일정부분 따라왔다고 생각하나, 역시나 영상 장비를 제작하는 기업에 비해 열세입니다. 최근에는 사진보다 영상을 더 많이 촬영하고 있는데, 시네마 4K 영상의 선명함, OM-LOG400을 활용한 작업 환경/결과물에는 만족하고 있지만 4K 60p 미지원, 4K 30p에서의 보정 관용도 부족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점은 최신 제품인 E-M1 Mark III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부분이라, 당분간은 안고 가야할 것 같네요. 그래도 올림푸스 카메라로 영상 작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이 E-M1X를 사용하며 즐거운 점 중 하나입니다.
기운 내는 비결
움츠렸던 몸을 펴고 기운을 내기로 시작한 뒤 가장 먼저 한 것은 역시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닌 것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많은 곳들을 피해야 한다는 말에 깔려 지내느라 밖에서 밥 한 끼 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아직 위험은 여전하다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갇혀있고 싶지 않아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시작은 집 근처, 회사원이 되기 전에는 참 많이 다녔던 작은 라멘집이었습니다. 동네 이름을 딴 ‘쌍문동코츠’라는 라멘을 참 좋아해서 자주 갔는데 못 간 사이 메뉴가 변경돼 이제는 카레집이 되어 있더군요. 게다가 꽤나 유명 맛집이 되었는지 운영 시간이 하루 네 시간으로 줄고 문 앞에는 대기표가 생겼습니다. 좋아하던 집이 잘 되니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기분이 좋더라고요.
쌍문동코츠 라멘 대신 에비 차슈 카레를 주문했습니다. 기대했던 돈카츠 카레는 진작 품절이랍니다. 차슈는 라멘을 먹을 때 이미 만족했기에 믿고 주문했습니다. 새로운 메뉴인 카레는 프랜차이즈 카레집보다 맛이 깊고 치즈며 차슈를 아끼지 않아서 푸짐했습니다.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지만 차라리 이렇게 제 가격을 받고 만족할만한 식사를 내고 또 먹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만족스러운 식사였습니다.
음식 사진을 찍는 데에는 역시나 밝은 조리개 값을 갖는 단렌즈가 좋습니다. 특히 접시 위, 그릇 속 음식을 맛깔스럽게 담으려면 광각보단 표준 또는 망원 초점거리의 렌즈를 사용하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죠. 그런 이유로 음식 촬영에 45mm F1.2 PRO 렌즈를 좋아하지만, 그릇과 접시 전체를 담기도 해야 해서 25mm F1.2 PRO 렌즈를 주로 사용합니다. 이전에는 35mm 환산 35mm 렌즈를 눈처럼 사용했었는데, 올림푸스에서는 35mm 환산 약 50mm 렌즈를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음식 사진에서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은 만족스러운 근접 촬영 성능입니다. 마이크로 포서드 시스템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동네 밥집을 시작으로 조금씩 반경을 넓혀가며 입맛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동안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꼭 찾던 집을 오랜만에 다시 찾으니 어색하지만 편했고, 익숙하지만 여전한 맛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계절이 충분히 새로우니 익숙한 것에서 전보다 더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앞으로도 한동안 가지 못했던 음식점들을 하나씩 찾아가려고요.
특히 간절했던 여유
마스크에 갇히고 뉴스에 발이 묶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좋아하는 이들과 갖던 티타임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공간, 새로운 카페를 찾아 차 맛을 음미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대로 서로의 말들을 이어가는 것이 반복되는 일상 속 큰 즐거움이었는데 말예요.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에 이어 요즘엔 카페들도 하나씩 가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음식점에 가는 것보다 조금 더 조심하게 되지만요. 최근 이슈 때문에 카페들엔 사람이 부쩍 줄었습니다. 늘 자리가 없어 발길 돌려던 카페에도 요즘엔 자리가 제법 남아있고요. 인사동에 있는 어니언도 몇 번만에 가봤어요. 한옥을 개조해 사용하는 카페인데, 한옥 내 공간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은 덕분에 한옥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기와와 파란 하늘이 배경인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고요. 아쉽게도 커피 맛은 그저 그랬지만 빵은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우연히 동네에 이 어니언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것도 얼마 전까지 매일같이 가던 스타벅스 근처에 말이죠. 건물 앞에서도 찾지 못할만큼 꼭꼭 숨어있는 곳이지만 내부는 일부러 찾아온 것이 아쉽지 않을만큼 이색적이고 아늑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특이하게 식물이 테이블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일반적인 카페 테이블과 의자 없이 벽과 철제 간이 테이블/의자를 활용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좋았습니다. 안국역에 있는 한옥 카페와는 또 다른, 식물원 느낌의 인테리어였어요. 테이블이 많지 않으니 사람도 많지 않았고, 덕분에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다 왔습니다.
그 외에도 안국역의 조용한 2층짜리 빵집 겸 카페에서, 부쩍 사람이 없어진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 시간이 새삼 소중해서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이런 일상의 장면들은 아무래도 다양한 프레임으로 담고 싶어 단렌즈와 함께 표준줌 렌즈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최근에 나온 12-45mm F4 PRO 렌즈는 전에 사용하던 12-40mm F2.8 PRO 렌즈보다 초점 거리의 폭이 넓으면서도 렌즈가 더 작고 가벼워서 어느새 꼭 챙기는 렌즈가 됐습니다. 물론 F4의 조리개 값이 아쉽긴 하지만 E-M1X의 손떨림 보정을 활용해 낮은 감도를 유지하니 큰 아쉬움은 없습니다.
모두의 맘이 무거운 이 시기에 저는 이렇게 무심히 흘려 보내던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좀 무겁지만 매일 카메라를 챙겨 다니며 담고 있습니다. 혹시나 언젠가 이 일상의 장면들과 이때 느낀 것들이 제 이야기가 되어 누군가에게 읽히고 남겨질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분주해지더라고요.
어느틈엔가 새 계절이 곁에 바짝 와 있습니다. 모두들 안 좋은 소식들로 답답하고 기운 빠지겠지만 반드시 화창한 날이, 상쾌한 숨과 신난 걸음이 다시 있을테니 그때까지 일상의 소중함을 복기하며 보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