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녀온 제주 여행 이야기를 이어가며, 오늘은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와 실내 촬영에서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올림푸스 광각 렌즈 3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태풍으로 인한 비바람 때문에 실내 공간을 찾다 들어선 곳인데 짧은 시간동안 완전히 매료돼 제주 여행을 떠나는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장소가 됐습니다.
서귀포 빛의 벙커
제주 현지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소개로 찾은 빛의 벙커는 과거 국가 기간 통신 시설로 활용되던 벙커를 개조한 전시 공간입니다. 뤼미에르 계열 전시장은 유럽 여행할 때 종종 만난 적이 있는데 제주에서 보니 더욱 반갑습니다. 축구장 절반 정도의 크기인 900평 면적의 대형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의 벽과 기둥, 바닥에 예술 작품을 빛의 형태(빔 프로젝트)로 채우는 방식이 무척 신선합니다.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으니 근처 여행 일정이 있으신 분들은 다녀오시면 색다른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http://www.bunkerdelumieres.com
https://place.map.kakao.com/1682547680
제가 방문했을 때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꽤 넓은 내부 공간에 놀라게 되는데, 그 벽과 바닥에 여러 작품들이 번갈아가며 표시되는 것이 이전에 봤던 일반적인 미술 전시와 달라서 제법 환상적인 느낌입니다. 거기에 귀가 멍해질듯 커다란 사운드 덕분에 많은 사람이 있는 공간이지만 높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고요.
전시 프로그램의 상영 시간은 약 30분. 그래서 상영 중에 입장하더라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고 안내를 받았지만 공간 자체가 주는 힘과 매력에 빠져서 두 시간 가까이 머물다 왔습니다. 콘크리트로 만든 삭막한 공간을 채우는 아름다운 색과 빛도 좋지만 아무데나 주저 앉아 시각과 청각의 풍족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진 찍기에도 좋은 공간이었고요.
내부 공간이 생각보다 넓어 빛의 벙커 내부에서는 보유 중인 올림푸스 중 광각 렌즈들을 사용해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셋 다 개성이 뚜렷하고 장단점이 명확한 렌즈라 이 날 찍은 사진만으로도 얕게나마 이 렌즈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나씩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M.ZUIKO DIGITAL ED 8mm F1.8 Fisheye PRO
물고기의 눈과 같은 프레임을 제공하는 어안 렌즈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원상 어안 렌즈 특유의 왜곡 때문에 실제 작업에는 잘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순전히 '즐거움'만을 위해 가끔 선택하는 렌즈인데, 이색적인 빛의 벙커 내부 공간을 촬영하니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가운데가 볼록한 왜곡이 생기는 것이 어안 렌즈의 프레임 특성입니다. 초점 거리는 8mm로 7-14mm F2.8 PRO 광각 렌즈의 7mm 최대 광각이 더 넓지만 프레임에 담기는 화각이 180도로 7-14mm 렌즈의 114도보다 넓습니다. 옆에 서 있는 사람까지 촬영될 정도로 넓은 프레임이 풍경은 물론 실내 공간을 재미있게 연출해주기도 합니다.
특유의 왜곡 때문에 공간이 더 광활하게 느껴지는 효과, F1.8의 밝은 조리개 값으로 실내 촬영에서 보다 낮은 ISO 감도와 빠른 셔터 속도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이 렌즈의 장점입니다. 풍경 촬영보다 이런 제한된 실내 공간 촬영에서 만들어주는 이미지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7-14mm F2.8 PRO 렌즈가 보다 왜곡이 적은 초광각 렌즈지만 조리개 값이 아쉬울 때 이 어안 렌즈를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E-M1X를 포함한 최신 올림푸스 미러리스 카메라에서는 어안 렌즈의 왜곡을 줄여 일반 광각 렌즈 사진처럼 만들어주는 기능이 생겨 활용도가 더 높아졌습니다. 물론 저는 어안렌즈만의 이 익살스러움 그대로를 즐기는 것을 추천하지만요.
M.ZUIKO DIGITAL ED 7-14mm F2.8 PRO
올림푸스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여행용 필수 렌즈가 된 초광각 렌즈 7-14mm F2.8 PRO 입니다. 광활한 7mm 프레임과 F2.8 고정 조리개 값, 휴대성의 강점까지 올림푸스 PRO 렌즈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매력을 가진 렌즈죠. 제 주변 올림푸스 포토그래퍼들에게도 이 렌즈와 12-100mm F4 IS PRO 렌즈가 늘 인기 상위권을 차지합니다. 시원한 풍경사진뿐 아니라 실내 공간을 더 넓고 근사하게 촬영할 수 있는 장점을 빛의 벙커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비슷한 구도로 찍은 이미지에서 8mm 어안 렌즈와의 표현 방법이 확연히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직선을 곡선으로 표현하는 어안 렌즈 특유의 왜곡이 없어 이미지가 정돈된 느낌을 줍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광활한 느낌 자체는 부족할 수 있지만 공간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중시하는 분들에게는 어안렌즈보다 초광각 렌즈가 좋은 선택입니다.
넉넉한 프레임은 7-14mm, 35mm 환산 약 14-28mm로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불규칙한 공간 그리고 빛과 색, 사람의 실루엣이 쉴 새 없이 교차되는 장면을 나만의 느낌으로 연출하기에 가장 적합한 렌즈가 7-14mm F2.8 PRO가 아닐까 싶습니다. 초광각 렌즈의 왜곡에 피사체의 거리를 조절해 원근감을 강조하면 다이내믹한 느낌까지 낼 수 있고요. F2.8의 조리개 값은 다른 두 렌즈에 비해 아쉽지만, 이 날 사용한 E-M1 Mark II 카메라의 손떨림 보정, 노이즈 억제력을 활용해 1/15초, ISO 1600 정도의 결과물은 충분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M.ZUIKO DIGITAL ED 17mm F1.2 PRO
제가 가장 좋아하는 17mm F1.2 PRO 렌즈 역시 35mm 환산 약 34mm의 초점거리를 갖는 광각 렌즈입니다. 무엇보다 F1.2의 밝은 조리개 값이 어두운 실내 촬영에서 발군의 성능을 보이며 제 시선과 가까운 17mm 프레임이 제게 울림을 준 장면을 그대로 담아낸다는 것에 큰 가치가 있습니다.
두 장의 이미지만 보아도 앞서 본 광각/어안 렌즈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상대적으로 공간의 규모를 보이는 데 아쉬움이 있지만 반듯한 프레임에 표현하고자 하는 피사체를 배치하는 액자식 구성을 선호한다면 이만한 실내 촬영용 렌즈도 없습니다. 12-40mm F2.8 PRO가 줌렌즈로서 광각-준망원을 모두 담당할 수 있긴 하지만 F1.2의 밝은 조리개 값이 실내 촬영에서 갖는 이점을 생각하면 이 렌즈를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습니다.
제주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빛의 벙커를 소개할 때는 시원시원한 프레임의 광각/어안 렌즈 사진을 보여주겠지만, 이 공간에서의 추억을 간직할 때는 17mm F1.2 PRO 렌즈의 결과물에 손이 가더군요. 오늘 소개한 세 개의 광각/어안 렌즈들은 각각 '재미, 기록, 간직'이라는 특징과 장점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빛의 벙커는 현재 다음 전시인 반 고흐 전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12월 6일 오픈한다니 제주 여행을 계획 중이시라면 한,두 시간 투자해 보세요. 후회 없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