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내기 손님 많은 서울역 근처에 제대로 된 라멘집이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후기에서 유자를 넣은 유즈라멘이 있다는 이야기를 보고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이름이 제법 알려졌고, 저만 모르고 있었다는 걸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기 전에 왔는데도 입구 앞이 인산인해, 30분쯤 기다려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으로 가득한 좁은 라멘집의 질서를 위해 체계적인 주문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식권 발매기에서 메뉴를 고르고 결제한 후 주문서를 직원에게 제출하면 주문 순서에 맞춰 자리가 배정되는 방식입니다. 좌석이 수가 많지 않고 모든 좌석이 바(bar) 형태라 인원 수에 따라 탄력적으로 좌석 배치가 이뤄지더라고요. 11시 40분쯤 도착해 12시 10분이 넘어 자리에 앉았습니다.
라멘집에 가자마자 찾아보는 소식, 그리고 반가운 글자 '면사리 무료'
면과 육수는 무료로 추가할 수 있고 면사리는 한 개, 반개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한 개를 주문하니 1인분이 그대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상당히 푸짐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대표 메뉴는 유자가 들어간 유즈 시오(소금), 유즈 쇼유(간장) 라멘입니다. 거기에 매운 맛을 더한 메뉴가 각각 추가되고 츠케멘과 시즌 메뉴 백합 트러플 라멘 등이 있습니다. 유자 맛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유자가 첨가되지 않은 라멘도 주문할 수 있다고 하네요. 첫 방문인만큼 대표 메뉴인 유즈 시오 라멘에 김을 추가했습니다. 500원에 김 세 장이 더 들어갑니다.
기다림은 길지만 자리 배정 후에는 금방 라멘이 나옵니다. 이곳에는 돈코츠 라멘은 없고, 닭 육수와 해산물 육수를 섞어 육수를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수의 색이 맑습니다. 부담도 덜해서 유자에 대한 호불호를 빼면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 가게에서 자랑하는 이베리코 돼지로 만든 차슈 한 장, 반숙 달걀 반쪽, 멘마 그리고 특이하게 루꼴라가 올라가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생소한 비주얼입니다.
보통은 그릇을 받자마자 후루룩대며 면부터 입 안 가득 밀어 넣지만 이곳은 육수가 궁금했던 터라 수저로 육수부터 떠먹어 보았습니다. 맑은 육수에서 해물 베이스의 일반 시오 라멘의 육수를 생각했지만 보기와는 달리 눅진한 깊이와 만만치 않은 무게가 있습니다. 아마도 닭 육수 때문이겠죠. 하지만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고 감칠맛이 살아있으면서 깔끔한, 균형잡힌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끝맛에 유자향이 은은하게 감돌며 입안을 개운하게 하는 것이 계속 육수만 먹어도 부담이 없겠더라고요.
면은 얇은 호소멘입니다. 통밀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곡향이 강한 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삶기는 제가 원하는 단단한 면은 아니었고, 일반적인 수준입니다.
이 집 라멘은 손님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주방의 각오가 엿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닭 육수와 해물 육수를 섞은 더블 수프 육수가 생각보다 깊고 진했는데, 유자도 부족해 루꼴라까지 얹어 상쾌함을 더하려고 했습니다. 통밀 면과 두툼한 이베리코 차슈 모두 그 존재감이 만만치 않은 재료다보니 그것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진한 감칠맛과 유자의 상쾌함으로 첫맛과 끝맛이 다른 매력적인 육수, 곡향 풍부한 통밀 면, 두툼하게 삶아진 씹는 맛 있는 이베리코 차슈가 각각 나눠 보면 나무랄 데 없는 맛과 풍미를 갖췄지만 그 세 요소의 조화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차슈는 라멘 차슈보다는 차슈 덮밥에 어울리는 익힘과 식감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이 라멘에는 잘 어울리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역시 닭 육수 베이스인 오레노 라멘에서 사용하는 닭 가슴살 고명이 차라리 이 깔끔한 육수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더군요.
그래도 이곳은 면 맛있고, 육수 끝내주고, 차슈 괜찮습니다.
특히 유자 라멘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에 대한 인상이 좋아서 가끔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