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흘 치통에 시달렸습니다. 치과에 가니 사랑니가 썩어 뽑아야 한답니다. 당일 발치를 하고 만 하루동안 피가 멈추지 않아 물과 우유, 바나나로 연명했습니다.
며칠간 밥 다운 밥을 먹지 못해 기운이 빠져 검색한 것이 '라멘'. 피가 멈추면 꼭 라멘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이곳. 처음 발견한 곳인데 마침 집과 무척 가까워서 '이거다' 싶었죠.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평들이 무척 좋더군요.
집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 익숙한 상가 건물에 생소한 라멘집이 생겨있었습니다.
30년 넘게 이 동네에 살면서 일본 라멘집은 늘 번화가에만 있는 것이었는데, 드디어 한 줄기 빛이 내리쬐는 기분이더군요.
이름은 멘야코노하, 수유역과 쌍문역 사이 우이천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장소는 외딴 편이지만 이또한 동네 주민들에게는 축복이죠.
종일 기다리다 저녁 오픈 시간에 맞춰 들어갔습니다. '맛만 있으면 된다.'라고 되뇌면서요.
최근에 생긴 라멘 가게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꽤 오래된 식당 분위기가 납니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나 포스터같은 앤티크한 소품들 때문인데 최근 레트로 트렌드에도 잘 들어맞습니다.
가게 한켠에는 제면기가 놓여 있습니다. 검색 중 실제 자가제면을 하는 곳이라는 설명에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동네에 이런 라멘집이 생긴 것이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메뉴는 돈코츠 라멘을 기본으로 탄탄멘과 마제소바, 미소라멘 등을 갖춰 놓았습니다. 덮밥 메뉴도 여럿 있었는데 이날은 며칠 굶으며 라멘 생각만 한 터라 보이지가 않았어요. 대표 메뉴의 이름이 '쌍문동코츠'인 것이 재미있었는데, 돈코츠라멘에 완자 토핑을 추가한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 방문하는 집에선 당연히 대표 메뉴를 주문해야죠.
쌍문동코츠라멘을 주문했습니다. 가격은 8000원, 적당한 크기의 그릇에 소담스럽게 담겨 나오는데 차슈부터 버섯, 달걀 등 모양부터 기본을 잘 갖췄습니다. 특히 요즘 라멘집에서 보기 힘든 김..!이 있어 기뻤습니다.
쌍문동코츠에 대해 간단히 평하자면 국물은 돈코츠 특유의 향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농도를 조절해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제가 홍대 인근 라멘집들을 탐험하며 먹은 돈코츠보다는 대중적인 편입니다. 직접 뽑아냈다는 면의 익힘은 제가 좋아하는 '갓타(단단한)'면에 가까워서 씹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돈코츠 라멘에 김은 뭐, 두 말 할 필요가 없죠. 아껴먹게 됩니다. 고명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차슈, 크기는 크지 않지만 식감이 부드러워서 라멘과 잘 어울립니다. 메뉴판을 보니 차슈 추가가 천원으로 저렴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음엔 차슈를 추가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복병이 있었습니다.
쌍문동코츠의 정체성인 완자가 별미더군요. 고기 향과 식감이 좋은데다 국물과의 조화가 차슈보다 오히려 더 좋아서 그자리에서 추가하고 싶었습니다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쌍문동코츠를 푸짐하게 드시려면 각각 1000원인 차슈와 완자를 추가하면 만족도가 최고일 것 같습니다. 고기 완자를 넣은 돈코츠 라멘은 처음이었는데 제게는 성공적인 조합이었습니다.
자가제면 라멘집의 장점 중 하나인 면사리 추가. 코노하는 면추가가 무료입니다. 안 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가까운 곳에 제 입맛에 맞는 라멘집이 생기니 겨울날 힘이 생긴듯 든든합니다.
앞으로 자주 가게 될 것 같아요. 다른 메뉴도 조만간 먹어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