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OM-D E-M10 Mark III와 이별 후 다시 PEN-F를 영입했습니다. 엔트리 기종이자 서브 카메라로서 제가 원하는 기준 '작고, 예쁘고, 결과물 보기 좋은 카메라'에는 충분히 부합했지만, 단독으로 사용하기엔 조금씩 아쉬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E-M1 Mark II와 PEN-F 같은 상위 제품을 사용해 본 입장에선 조작성과 인터페이스에서의 차이가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올림푸스 카메라 중 가장 육중한 E-M1 Mark II 대신 여전히 작으면서 손 맛 좋은 PEN-F를 선택했으니 적당한 절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4K 동영상이 못내 아쉽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PEN-F + 17mm F1.8 킷과 함께 길고 짧은 여행에서 사용할 요량으로 들인 광각 렌즈 M.ZUIKO DIGITAL ED 9-18mm F4.0-5.6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2010년 출시했으니 올림푸스 M.ZUIKO 렌즈 중에서는 꽤나 노장에 속하는 렌즈인데요, 여행용으로 7-14mm F2.8 PRO 렌즈를 고려하다가 이왕 가볍게 떠나기로 한 거 더 작고 가벼운 렌즈를 선택했습니다.
먼저 이 렌즈의 사양을 살펴보면,
M.ZUIKO DIGITAL ED 9-18mm F4.0-5.6
- 초점거리 9-18mm (35mm 환산 약 18-36mm)
- 8군 12매 구성 (2 DSA 렌즈, 비구면 렌즈, ED 렌즈, HR 렌즈 등)
- 조리개 F4(9mm), 5.6(18mm) ~ F22
- 최단 촬영거리 25cm
- 최대 촬영 배율 0.1배 (35mm 환산 약 0.2배)
- 7매 원형 조리개
- 필터 규격 52mm
- 56.5 x 49.5mm
- 155g
출시가 무척 오래된 렌즈인만큼 이미 정보는 많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전 체코 여행에서 잠시 광각 맛보기 용으로 사용했던 것이 전부라 여전히 낯섭니다. 7-14mm F2.8 PRO 렌즈 출시 이전 마이크로포서드를 대표하는 초광각 줌렌즈로 35mm 환산 18-36mm의 광학 2배 줌을 지원합니다. 최근 초광각 렌즈의 표준인 16-35mm 보다는 조금 부족합니다만 역시 마이크로포서드 렌즈답게 뛰어난 휴대성으로 이를 상쇄하고 있습니다. 8군 12매 구성으로 당시로서는 고급 렌즈가 다수 포함됐으며 침동식 설계로 렌즈부를 수납했을 때 크기는 56.5 x 49.5mm로 매우 작은 편에 속합니다. 웬만한 단렌즈와 비교해도 될 만한 크기입니다. 다만 휴대성에 중심을 뒀기 때문에 조리개 값은 흔히 번들렌즈로 불리는 14-42mm EZ 렌즈와 비슷한 F4-5.6입니다. 그동안 PRO급 렌즈 위주로 사용했던 저와는 무척이나 성향이 다른 렌즈지만 크기와 무게만큼은 확실히 매력적입니다.
[OM-D E-M5 Mark II + M.ZUIKO DIGITAL ED 9-18mm F4.0-5.6로 촬영한 이미지]
작고 가벼운 광각 렌즈
렌즈의 장점은 역시나 크기와 무게입니다. 함께 사용할 17mm F1.8 렌즈의 크기가 57.5 x 35.5mm, 무게가 120g이니 조금 더 길고 무거운 정도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재킷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볍습니다. 초창기 마이크로포서드 시스템의 최대 장점이자 미덕인 '경박단소(輕薄短小)'를 몸소 보여주는 제품입니다. 상위 제품인 7-14mm F2.8 PRO 렌즈의 크기는 78.9 x 105.8mm로 약 두 배 가량 길고 무게는 534g으로 세 배 넘게 무거우니 올드 렌즈지만 가벼운 여행용 광각 렌즈로는 여전히 강점이 있(긴 있)네요.
무엇보다 PRO 렌즈 시리즈와 디자인이 그다지 조화롭지 못한 PEN-F와 제법 잘 어울립니다. PEN-F에는 광각 렌즈로 주로 12mm F2.0 렌즈를 사용했는데 그보다 넓은 9mm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됩니다.
아쉬운 것은 역시나 Premium, PRO 렌즈급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 완성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경통 소재가 플라스틱이라 메탈 소재인 17mm F1.8 렌즈와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가 확연하고 초점 링 역시 조작감이 Premium 렌즈에 미치지 못합니다. 당시 디자인 트렌드였는지 몰라도 경통의 은색 테두리(?) 역시 전체 디자인과 다소 동떨어진 인상입니다. 다행인 것은 렌즈 마운트부는 금속이라 내구성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크기와 무게 등의 휴대성 중심 설계에는 만족, 제품 자체의 완성도에서는 불만족입니다.
휴대성에 중점을 둔 침동식 구조
요즘은 보기 드문(?) 침동식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경통을 렌즈 내부에 수납하는 방식으로 렌즈 길이를 짧게 줄여 휴대할 수 있는 것이 강점입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서 경통을 돌려 수납된 렌즈를 다시 돌출 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동성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입니다. 필름 카메라 시절의 침동식 렌즈들은 아예 경통이 접안렌즈보다 더 뒷쪽으로 파고들어 필름/이미지 센서 가까이까지 후퇴하지만 이 렌즈는 단순히 돌출된 경통을 줄이는 수준입니다. 촬영을 위해 경통을 돌출 시키면 전체 길이가 약 2cm정도 길어집니다. 경통의 길이는 최대 광각인 9mm에서 가장 길고 18mm에서 가장 짧습니다. 불쑥 코가 나온 모양이 예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용하지 않을 때 작게 '접어둘 수' 있다는 점은 장점입니다.
9mm 초광각부터 18mm 광각까지
- 9mm 최대 광각(왼쪽) | 18mm 광각(오른쪽) -
광각 촬영에서 1mm는 꽤나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하죠. 정말로 이전에 사용하던 광각 렌즈의 12mm보다 9mm는 확실히 넓습니다. 거기에 표준 초점거리에 가까운 18mm까지 지원하니 빛이 부족한 날의 야외 풍경 촬영이라면 이 렌즈 하나로도 어느정도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동일한 위치에서 촬영한 9mm 초광각, 18mm 광각 이미지를 비교하니 차이게 제법 크죠? 야외 촬영에선 F5.6 이상의 높은 조리개 값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어두운 조리개 값의 단점은 직접적으로 체감하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실내/야간 촬영에서 이 렌즈는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여행용으로는 하나쯤 호주머니에 슬쩍 넣어두고 모른 척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9mm 최대 광각 -
- 18mm 광각 -
컴팩트 렌즈의 이미지 품질
사실 이 렌즈를 사용하며 가장 우려했던 것이 '이미지 품질'이었습니다. 애초에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에 초점을 둔 렌즈에다가 출시 시기가 오래된 렌즈인만큼 결과물에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요, 아쉽게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흐린 날씨 탓도 있었겠지만, 해상력이 가장 좋은 중심부 결과를 보면 애초에 높은 해상력을 고려한 설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현행보다 뒤진 8년 전 기술에도 이유가 있을 수 있겠네요. 다행인 것은 매우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의 광각 렌즈지만 주변부 화질 저하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저는 PEN-F의 렌즈 보정 옵션을 설정하고 사용했는데, 그 때문인지 광량 분포 역시 눈에 띄는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 중심부(왼쪽) | 주변부(오른쪽) -
물론 중심부 표현은 조리개를 한, 두 스톱만 높이면 괜찮아집니다만, 애초에 샤프한 맛으로 쓰는 렌즈는 아니라는 생각이 확실해집니다. PEN-F의 2000만 화소 이미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그보단 렌즈 자체의 해상력이 그간 제가 사용했던 PRO, Premium 급 렌즈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군요. 품질과 휴대성 사이에서 고민이 좀 필요하겠습니다.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는 매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말이죠.
가벼운 여행에 적합한 초광각 렌즈
잠깐 사용해 보았지만 특유의 가벼움 하나만으로 여행용 렌즈로서는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에 걸어 종일 함께 여행할 수 있는 휴대성이 여성 사용자들에게도 적합하고 밝은 야외 촬영 위주라면 조리개 값에 대한 아쉬움도 크게 느낄 수 없습니다. 여행용 광각 렌즈를 알아보고 있지만 7-14mm F2.8 PRO 렌즈는 너무 크고 무겁고 무엇보다 비쌉니다. M.ZUIKO DIGITAL ED 9-18mm F4.0-5.6 렌즈는 동일 화각대의 초광각 렌즈 중 상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고 가볍습니다. 그리고 나온지 오래돼 이제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가방과 주머니 어디든 휴대에 부담이 없으니 조만간 한 번 함께 어디든 다녀와야겠습니다. 멋진 풍경 앞에서 17mm F1.8 렌즈가 답답할 때 단 몇 장만 담아도 무게값으로는 충분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