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 삼성
이 어색하고 매력적인 동거
그것은 갑자기 예고없이, 갑자기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미처 정리하고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갤럭시 S8 이야기입니다. 아이폰 7 플러스와 에어팟, 애플 워치까지. 그런대로 충실한 노예 생활이 갤럭시 S8을 사용한 후 하루만에 단숨에 바뀌었습니다. 아침에 애플 워치를 두르지 않게 되었고, 바지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을 수 있게 됐습니다. 불편한 점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 것이 무선 이어폰 에어팟을 대체할만한 리시버를 안드로이드용으로 찾기 힘들더군요. 그러던 중 여행을 떠나게 됐고, 유선 이어폰과 고민하다 문득 안드로이드폰에도 에어팟을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 테스트해 보기로 했습니다.
갤럭시 S8에 에어팟을 사용할 수 있나요?
네, 당연히 됩니다. 그것도 아주 잘.
일본 여행을 하는동안 갤럭시 S8와 애플 에어팟을 연결해 음악을 들었습니다. 유선 이어폰은 치렁치렁한 케이블의 번거로움도 번거로움이지만 선에 걸려 휴대폰이 추락하는 경험이 몇 번 있었던 터라 여행 중에는 더 조심하게 되는데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니 깔끔하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으니까요. 더불어 터치 컨트롤과 자동 연결 등 에어팟의 장점 중 일부를 갤럭시 S8에서도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점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이폰에 에어팟을 사용하면서, 괴랄한 디자인과 달리 근래 애플 제품 중 가장 잘 만든 제품이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갤럭시 S8을 사용하면서 그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갤럭시 S8을 비롯한 안드로이드에 애플 에어팟을 연결하는 방법이 어렵지 않냐고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애플에서는 OS 연동을 통한 유기적인 동작으로 에어팟이 마치 애플 제품만을 위한 리시버처럼 느껴지도록 했지만, 어디까지나 에어팟 역시 블루투스 무선 통신을 사용하는 이어폰입니다.
에어팟 케이스 뒷면의 버튼이 일반 블루투스 이어폰의 페어링 버튼 역할을 합니다. 이 버튼을 길게 누르면 페어링 대기 상태로 설정되는데, 그 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블루투스 연결 설정에서 AirPods을 선택하면 간편하게 연결됩니다.
- 애플 에어팟도 블루투스 이어폰이니까요 -
안드로이드와 연결되면 에어팟도 애플 제품이라 특별할 것 없는 일반 블루투스 이어폰일뿐입니다. 갤럭시 S8에 에어팟을 연결하면 일반 블루투스 이어폰을 연결했을 때와 같이 노티바에 관련 메뉴들이 표시됩니다. 현재 연결된 AirPods에 대한 정보와 페어링 해제 버튼, 설정 버튼 등이 표시됩니다.
설정에선 장치의 이름을 변경하거나 에어팟을 통화/음악 감상용으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에 블루투스 장치를 연결했을 때 잠금 해제 상태로 유지해 주는 '신뢰할 수 있는 장치'로도 에어팟을 설정할 수 있고요. 일반적인 블루투스 이어폰이 할 수 있는 것은 에어팟으로도 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에어팟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큰 단점이기도 합니다.
- 이런 기분좋은 기능들을 안드로이드에서는 사용할 수 없죠 -
에어팟의 핵심적인 요소인 편의 장치들을 안드로이드에선 거의 이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폰에서 에어팟은 마치 한 세트처럼 부드럽게 동작합니다. 케이스 뚜껑을 열면 아이폰 화면에 배터리와 연결 상태가 표시되고, 위젯과 설정 화면에서 배터리 잔량 등을 확인할 수 있죠. 아이폰에 연결해 두면 같은 계정을 사용하는 아이패드와 맥에서 별도의 페어링 과정 없이 바로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애플 기기간의 유기적인 연동이 안드로이드 연결에선 쏙 빠지니 에어팟은 그저 독특한 디자인의 코드리스 무선 이어폰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선이 없고, 케이스로 배터리 관리가 용이한 장점이 여전히 매력적입니다만.
그럼에도 에어팟은 어디에서든 매력적인 제품
일본에 있던 약 일주일간 갤럭시 S8에 에어팟을 연결해 음악을 듣고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처음엔 두 브랜드의 공존이라는 의미만으로도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사용해보니 이질감은 이내 사라졌고, 무선의 자유와 배터리 관리의 편리함만이 남아 앞으로도 쭉 이 조합을 유지할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분명 아이폰에서 에어팟을 사용할 때 느낀 디테일은 없었지만, 무선 이어폰의 기본기면에서 애플 에어팟은 정말 잘 만든 제품입니다.
제가 느낀 장점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1. 완벽한 코드리스
선이 없다는 것은 무선 이어폰의 근본적인, 그리고 가장 큰 장점입니다. 에어팟은 거기에 왼쪽과 오른쪽 유닛간의 선까지 없앴습니다. 이 장점은 활동이 많은 여행에서 더 극적으로 느껴지더군요. 두 유닛의 동작은 유기적이지만 조작은 개별로도 가능하니 원할 때는 한 쪽 유닛으로만 음악을 듣고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습니다.
2. 배터리 관리
에어팟의 배터리 성능은 약 5시간으로 경쟁 제품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보관과 충전을 겸하는 케이스 덕분에 실사용에서 느끼는 체감 성능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납니다. 사용하지 않을 때 잠시 케이스에 넣어두면 24시간 내내 배터리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충전 역시 아이폰과 같은 라이트닝 포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별도의 충전기나 케이블을 챙길 필요가 없죠. 물론 저처럼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분들은 별도의 라이트닝 케이블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번거로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함께 사용하는 베오플레이 H5의 충전 크래들을 보고 있으면, 애플 에어팟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3. 편의 기능
사실 안드로이드에 에어팟을 연결할 경우 '편의 기능'은 대부분 포기해야 합니다만, 그럼에도 몇 가지 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케이스에서 에어팟 유닛을 꺼내는 순간 전원이 들어오며 스마트폰에 자동 연결되는 페어링 시스템이라던지, 유닛을 두 번 터치해 재생/정지 조작을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조작 방식은 다행히 안드로이드 연결에서도 동일하게 유지됩니다. 무선 이어폰의 기본 소양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이폰이 아니라고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덕분에 에어팟을 갤럭시 S8에 연결해 사용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물론 이 외에는 대부분이 단점입니다. 사운드가 유선 이어팟과 비슷한 플랫한 성향을 갖는 것을 단점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만, 다양한 무선 이어폰이 지원하는 자체 음장 효과등을 사용할 수 없는 점은 분명한 한계입니다. 아이폰에서는 당연히 지원되는 배터리 잔량 확인 역시 안드로이드에선 불가능하고요. 아이폰에서 에어팟은 마치 미래의 이어폰같지만, 안드로이드에서는 한 두 세대 전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 그럼에도 에어팟은 역시 아이폰을 위한 제품입니다 -
물론 애플 에어팟을 갤럭시 S8을 비롯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사용할 무선 이어폰으로 추천할 수는 없습니다. 기본적인 연결과 조작 정도만 가능한 이어폰의 가격 치고는 매우 높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모르면 차라리 다행이지, 아이폰과 에어팟의 유기적인 동작을 보고나면 '안드로이드에 굳이 왜 이걸?'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에어팟의 장점인 코드리스 형태와 배터리 케이스를 통한 전원 관리 등을 고려할 때, 이만한 기본기의 무선 이어폰도 흔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둘의 관계는 여전히 미심쩍지만, 그럼에도 생각보다 썩 잘 어울린다고 하겠습니다.
베오플레이 H5를 충전할 때마다 에어팟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