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 바르셀로나
기억 속 바르셀로나의 장면들은 늘 같은 시간대입니다. 만물이 가장 선명한 빛을 내게 하는 화창한 햇살, 무더위가 조금 지나 숨통이 트인 오후. 사진첩에는 해질녘의 카탈루냐 광장과 짙은 남색의 밤거리 풍경도 있지만 제게는 그저 어두운 오후, 깜깜한 낮처럼 보입니다.
활력 넘치는 오후의 도시 바르셀로나의 모습 중에는 보케리아 시장의 풍경들도 있습니다. 풍부한 먹거리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풍요로운 표정, 귀를 즐겁게하는 시장 특유의 소음까지. 언젠가부터 저는 도시마다 빠짐없이 전통 시장을 찾고 있습니다.
보케리아 시장(Mercado de La Boquería)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전통 시장입니다. 먹거리가 풍부한 스페인에서도 유독 눈과 코, 입이 즐거운 곳이라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들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카탈루냐 광장-람블라스 거리를 통해 자연스레 걷다보면 닿을 수 있어 접근성도 무척 좋은 곳이죠. 최근에는 아무래도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과 기념품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이 곳의 문화를 알기 위해 한번쯤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임은 분명합니다.
청과와 정육,조미료,건어물유제품은 물론 과자와 초콜릿까지 다양한 먹거리가 있어 구경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장입니다. 점심 시간이 지난 오후에도 관광객부터 현지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치 모형처럼 그 빛깔이 선명했던 과일과 해산물이었습니다. 특히나 윤기나는 붉은색 과일들과 커다란 새우가 눈길을 끌었어요.
선명한 색의 과일들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기분입니다. 보케리아 시장을 둘러보며 '풍요로움'이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먹거리를 누리고 사는 것도 행복의 중요한 요소일 것이라고. 싱싱한 과일들을 즉석에서 갈아 쥬스로 마시는 것이 보케리아 시장의 재미 중 하나입니다. 가격도 저렴하고요.
과일 가게 앞에는 아이들이 잔뜩 몰려 있고, 제 발은 자꾸 하몽과 햄을 파는 가게 앞으로 향합니다. 누가 오더라도 신이 나는 곳입니다.
스페인에서 하몽을 먹고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한 번에 사라졌는데요, 현지에서도 맛있는 하몽은 무척 비싸더군요. 군침만 삼켜야 했습니다.
이 곳에서는 굳이 맛집을 찾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 볼 시간에 이 시장만의 정취를 더 느끼고 싶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이렇게 사람들이 장사진을 친 곳이 있는데, 이런 곳의 음식들은 대부분 실망을 시키지 않습니다.
이 날 제가 선택한 점심은 시장의 해산물을 즉석에서 조리해 주는 BAR 형태의 식당이었습니다. 보케리아 시장에는 이런 형태의 식당이 수도 많고, 인기도 있습니다. 메뉴판에서 원하는 해산물을 고른 후 기다리면 보기 좋게 조리가 되어 나오는데, 시장치고는 비싼 가격이지만 신선한 재료에 눈이 즐겁고, 맛과 분위기에 입과 귀가 행복해집니다.
조개 요리를 한 입 넣고 맥주를 목이 따가울 때까지 들이키고 나니, 이 오후가 너무 좋아 슬퍼집니다.
바르셀로나,
제 기억 속에는 언제나 오후 세 시의 풍경으로 남아있는 도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