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즈(Bills), 플리즈.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정말 그 '빌즈'인지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맞더군요. 해외에서 굶지 않기 위해 익혀둔 몇 마디 안되는 말 중 하나인 '계산서'가 이 식당의 이름입니다. 잠실 롯데월드몰을 자주 가면서 늘 어둑어둑한 내부 분위기와 그 안의 연인들이 만드는 분위기 때문에 한번쯤 가보고 싶긴 했습니다. -가격표 보고 여러번 마음을 접은 것이 사실입니다-
알고보니 호주에서 온 레스토랑이라고 합니다.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다고 들었는데 사실 호주 음식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해 반신반의 하면서 들어섰습니다. 아, 최근에 후쿠오카에서 나카스 강변에 제법 큰 규모로 오픈한 빌즈를 본 기억이 나는군요.
- 뭐지 이 성의 없어 보이는 느낌은..? -
빌즈(bills)는 최근 여성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유명세를 탄다고 합니다. 서울에는 광화문과 잠실에 두 개의 점포가 있는데 잠실점은 롯데월드몰 1층에 있습니다. 달콤한 팬케이크가 가장 유명하고, 실제로도 테이블마다 하나씩 놓여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단 것 좋아하는 저도 군침을 삼켰지만 이 날은 일단 밥을 먹어보기로 합니다.
감각적인 실내 인테리어, 사실 워낙 높이 달려 있어서 식사의 흥을 돋운다기보단 그저 외부 사람들이 보고 혹할만한 인테리어 역할 정도를 합니다. 하나같이 개성있는 감각적인 그림들인데, 몰래 하나 떼다 집에 걸어놓고 싶더군요. 어둑한 조명에 감각 넘치는 인테리어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외산 레스토랑(?) 답게 메뉴 가격이 비싼 편입니다. 파스타가 만원 후반대, 슈니첼이 2만원대 초반이니 먹고 싶다고 자주 방문할만한 곳은 아닙니다. 거기에 후식으로 팬케이크까지 하나 주문했다가는..
저는 패밀리 뷔페쪽이 나을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이 날 주문한 메뉴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와 슈니첼입니다.
반가워 노른자!
파스타 위에 올려진 달걀 노른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인사를 합니다. 한국에서 흔히 먹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가 실은 '가짜'라는 사실에 얼마 전 충격을 받은 후 로마에서 오리지널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먹고 감탄을 했는데요. 빌즈 까르보나라는 달걀 노른자와 비벼먹는 오리지널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반가웠습니다.
예쁘게 올려진 노른자를 무참히 터뜨린 후, 면, 치즈과 함께 비비면 먹을 준비 끝. 양은 확실히 적어 보입니다.
이렇게 윤기 흐르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가 됩니다. 보기에도 치즈와 달걀의 풍미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빌즈의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는 오리지널 스타일로 조리돼 고유의 풍미를 잘 살린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현지식에 맞게 염도도 높은 편입니다. 베이컨이 특히 짠 편이더군요. 하지만 베이컨의 짠맛이 없으면 스파게티가 너무 느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격 대비 양이 적은 편이라 이렇게 조금씩 덜어 먹었습니다. - 거 면 그거 얼마 한다고 몇가닥 좀 더 넣어주지 -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한 슈니첼은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돈까스의 원형이라고도 하죠. 빌즈의 슈니첼은 닭가슴살을 이용하며 밥과 김치 대신 으깬 감자와 양배추가 곁들여져 나옵니다. 곁들인 구운 레몬즙을 뿌려 먹는데 먹어보니 그렇지 않으면 무척 느끼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돈까스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닭가슴살의 퍽퍽함 때문에 싫어하시는 분들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슈니첼의 속살은 부드럽습니다. 레몬즙 때문에 느끼한 맛도 없고, 곁들인 감자와 양배추가 부족한 고기양을 메워줍니다. 아쉽게도 튀긴 음식을 그리 선호하지 않아서 돈까스 이상의 특별한 그 무엇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만 돈까스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 번 즐겨볼만한 메뉴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까르보나라의 만족도가 워낙 커서 슈니첼보다는 까르보나라를 생각하며 계속 입맛을 다셨습니다.
음식 맛도 나쁘지 않지만 무엇보다 분위기가 좋아서 연인의 데이트 코스와 가족 식사, 여성분들의 모임에 좋아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호주에서 직접 방문해본 적이 없어서 이 레스토랑이 현지에서도 이런 어둑어둑한 분위기의 중고급 레스토랑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기분 내고 싶을때, 오리지널 까르보나라와 특제 팬케이크를 먹고 싶을때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