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버리면
본질에 더욱 가까워지게 될까?
요즘 이 브랜드는 카메라를 더 '좋게' 만드는 것보다 더 '신기하게' 만드는 것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광고 카피 만들듯 한 문장에 이런저런 것들을 넣거나 빼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해얄까요? 하지만 이 카메라 한 대의 가격을 생각하면 즐길 수 있는 것은 기획자와 소수의 부자들로 한정된 것 같습니다.
라이카의 새로운 M 시리즈 M-D가 발표됐습니다. 워낙에 전통적인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는 M 시리즈에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크게 할 것이 없었지만 이번엔 정말, 아주아주 큰 변화가 이뤄졌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디자인이라고 할까요? LCD 모니터를 제거해 찍은 장면을 볼 수 없는 디지털 카메라가 탄생한 것입니다.
M-D Typ262로 발표된 새로운 M은 Typ262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얼마 전 발표된 M Typ262와 대부분의 성능, 기능이 같은 모델입니다. 같은 2400만 화소 CMOS 이미지 센서를 탑재했고 크기 역시 동일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라이카가 매우 좋아하는 '본질'을 위해 M 로고뿐 아니라 LEICA 제조사 로고까지 삭제한 점입니다. 때문에 디자인은 M-P Typ 240과 흡사합니다. 상판 오른쪽에 커팅을 한 것은 또 M9-P를 연상 시키고요. 크기와 수광창 삭제 등의 요소가 M-P와 비슷하니 전면은 그것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많은 유저들이 좋아하는 MP 스타일의 디자인을 채용한 것은 이 카메라의 콘셉트를 적절히 살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색상 역시 블랙 모델만 발매됐습니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뒤집어보면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입니다. 후면 LCD는 물론 인터페이스에 필요한 메뉴, 재생 등의 각종 설정 버튼까지 모두 삭제해 버렸습니다. 대신 커다란 은색 다이얼과 그립부 멀티 다이얼을 넣었는데, 그립부 다이얼은 M Typ240과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메뉴 자체가 없기 때문에 노출 보정 등의 극도로 한정된 기능에만 사용될 것으로 보이지만요. 은색 원형 다이얼은 그래도 꼭 있어야 하는 ISO 감도 조절 다이얼입니다. 200부터 6400까지 지원되는 ISO 감도를 아날로그 다이얼을 돌려 설정하는 방식으로 필름 카메라의 그것을 연상시킵니다. LCD를 삭제한 휑한 후면 디자인과 아날로그 다이얼이 영락없이 필름 카메라를 연상 시키죠.
사실 이 괴랄(?)한 시도는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출시된 라이카 M 60주년 기념 모델이 LCD 모니터 없는 디지털 카메라의 원형을 이미 보여준 바 있습니다. 한정판 모델이라 가격이 무척 높고 수량도 한정되어 있어 실사용자의 후기 등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워낙에 충격적인 시도였던 탓에 많은 사용자들의 관심을 얻었고 일반형 모델 출시에 대한 요청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에 '화면'이 없어짐으로서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 본 적이 '꿈에서도' 없었습니다. 찍은 사진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은 필름 카메라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디지털 카메라의 압도적인 매력이었고 디지털 카메라가 발전해오면서 이젠 그 장점을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LCD 모니터를 없애버린 M-D의 시도는 '특별한 것'에 미친 감성팔이 제조사의 객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본질'이라는 단어는 포장일 뿐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라이카 M 사용자의 사용 패턴을 고려하면 이 황당한 시도가 예상 외로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M Typ240을 쓰며 촬영 후 이미지 재생은 '끔'으로 설정되어 있고 실제로 찍은 후 이미지를 잘 확인하지 않습니다. 화질은 항상 RAW에 고정되어 있고 ISO 감도 역시 Auto 혹은 조명과 셔터속도에 맞춰 수동으로 설정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LCD가 가끔 필요한 순간은 노출차가 큰 장면에서 촬영 후 이미지를 확인하며 조리개와 셔터속도, ISO 감도를 수동으로 설정할 때인데 이것은 풍경 등의 정적인 촬영 환경일 때가 많아 거리 사진이나 여행 사진 등 기동성이 중시되는 촬영에선 RAW 파일의 가능성을 믿고 일단 찍어보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다.
뭐 굳이굳이 이 카메라의 의미를 찾자면 기존 M 시리즈 사용자 중 LCD와 메뉴 체계마저 필요하지 않은 사용자를 위한 선택지가 하나 추가 됐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렇게 많은 것을 희생(?)하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할텐데 이 카메라의 가격은 LCD의 유/무에 좌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카메라의 사양을 살펴 보자면,
LEICA M-D Typ262
- 2400만 화소 CMOS 이미지 센서
- 라이카 M 마운트 렌즈 시스템
- 셔터속도 1/4000 - 60 초
- ISO 200-6400
- 3인치 92만 화소 LCD LCD 모니터 삭제
- 모든 파일은 RAW(DNG) 파일로 저장
- 이하 주요 사양 M Typ262와 동일
- 가격 5995 달러
재미있는 것은 라이카 M Typ262의 가격이 5195달러로 발표 됐는데 LCD를 제외한 M-D Typ262의 가격이 그보다 800달러 비싼 5995달러로 발표된 것입니다. -아니 적어도 LCD값은 빼줘야지-
LCD 없는 멍청한 디지털 카메라는 아무나 쓸 수 없다는 '자부심'이 반영된 가격일까요?
그와 함께 이 M-D의 가장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LCD와 메뉴체계를 삭제했음에도 불구하고 크기와 두께가 기존 M 시리즈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카메라가 LCD 모니터가 삭제된 장점을 살려 그만큼 크기와 두께를 줄였다면, 그래서 필름 M 카메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휴대성을 향상 시켰다면 찍은 이미지를 볼 수 없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이 제품을 선택할 사용자가 지금보다 몇 배는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저도 그렇습니다.-
LCD를 삭제한 것이 충분한 무기가 될 수 있음에도 그것을 살리지 못한 점은 결국 LCD 모니터 삭제가 감수해야 할 마이너스 요소로 머물렀다는 점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은 라이카에서 공개한 M-D 소개 영상입니다. LCD가 필요없는 스트릿 포토에서 M-D 모델의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홈페이지에 공개된 LEICA M-D Typ262의 샘플 이미지 (출처 : https://en.leica-camera.com/Photography/Leica-M/Leica-M-D) >
어찌됐건 라이카 M-D은 그동안 껍데기만 조금씩 바꿔 같은 모델을 계속 출시하고 있는 라이카 M 시리즈 중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상당수는 욕 혹은 조롱이 되겠지만 그동안 당연시 됐던 LCD 모니터를 없애고 사진과 사진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앞으로 라이카가 그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데 의미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실은 LCD를 없애고 필름 MP처럼 만들었다면 시도와 함께 완성형이 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무척 크게 남는 제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