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6:40
녹색 신호 하나 차이로 공항 리무진 버스를 놓쳤다
가만히 생각하니 카메라 충전 케이블을 챙기지 않은 것 같다
구닥다리 여행 가방의 자물쇠가 고장 나 부숴 버렸다.
따뜻한 나라에 간다며 신은 가벼운 스니커즈 덕분에 초겨울 차가운 바람이 온 몸으로 스며듭니다. 아침 열한 시 비행기. 수속과 면세점 쇼핑 등을 이유로 아침 일찍 나섰지만 신호를 기다리다 건너편에 막 공항 리무진 버스 한 대가 지나간 것을 보았고 빈 틈 없이 확인한 줄 알았던 여행 짐에 실은 몇가지 중요한 것들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다지 상쾌하지 못한 출발을 했습니다. 이렇게 비행기 타는 날이 아니면 저는 일어나지 못하는 이른 시각에도 출근하는 인파들로 정류장은 꽤 붐볐고 카메라 충전기에 대한 불안감과 부지런한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 좀처럼 오지 않는 다음 버스 때문에 아랫배가 묵직한 듯 불편했죠.
인천 공항에서 일행을 만나기로 한 시각이 8시 30분. 7시에 버스를 탔으니 평소대로라면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춰 도착하겠다 싶어 그나마 안심이 됩니다. 이번에도 역시 첫날에만 작성한 제 여행 수첩에 이 때쯤 한 줄이 적혔습니다. '그래, 다 챙겨가면 재미없지.' 챙기지 못한 것들은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가서 사면 되지.' 라며 애써 태연하게 눈을 감습니다. 그 후 몇 번이나 눈을 떴지만 그 때마다 같은 위치였고 결국 약속 시간이 지난 후에는 한 손에 휴대폰을 쥐고 끊임없이 남은 시간과 거리를 계산하며 초조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인천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아홉시. 수속과 탑승에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니 골치가 아파옵니다. 가장 먼저 편의점으로 달려가 7천원짜리 자물쇠를 하나 샀습니다. 동생이 신혼여행 기념으로 여행사에서 받은 구식 여행 가방에 달린 자물쇠가 영 비실 대더니 고장이 나 버렸거든요. 짐을 잔뜩 물고 입을 벌리지 않아 결국 힘으로 부숴 버렸습니다. 인천 공항이 이렇게 넓었나 새삼 느끼며 이 날 아침 참 바쁘게 다녔습니다. 공항에선 항상 마음이 급해 발을 굴렀던 기억 뿐이라 이번엔 조금 여유있게 출국 분위기를 내 보려 했는데 역시 실패입니다. 입국 수속을 마치니 남은 시간은 약 한 시간. 급하게 전날 구매한 면세점 물품을 수령하고 출국 게이트에 들어서니 안내 방송이 들립니다. '홍콩으로 가는 대한항공 KE613기의 탑승을 시작합니다.'
자 이제 정말 갑니다. 제 첫 홍콩 여행입니다.
열한 시에 출발해 현지 시각 두시에 홍콩에 닿는 약 네시간의 비행. 모스크바, 프라하의 열두시간 비행을 겪고 나니 네시간 정도는 '가깝네?' 하게 됩니다. 게다가 한국과의 시차도 한시간이라고 하니 떠나기 전의 긴장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비행기는 2층짜리 대형 비행기인 A380이었고 저는 1층 가장 끝 그러니까 비행기의 꼬리쪽에 탑승했습니다. 나중에 이것이 얼마나 큰 불행이었는지 느끼게 되었지만 이 때까지는 마냥 좋았죠. '이게 얼마만의 여행이야.'
출국 닷새 전 급히 결정된 여행이라 눈앞의 일을 처리하다 보니 처음 떠나는 홍콩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물어본 단편적인 지식은 아무래도 제가 필요했던 것과 조금은 달라서 출국 전날 급히 홍콩 여행 가이드북을 구매해 비행기 안에서 읽었습니다. 물론 자유여행이 아닌만큼 교통이나 숙소 관련 정보는 이번 여행에선 참고하지 않았지만 주요 여행지와 물가, 전기 규격, 크고 작은 여행 팁들이 유용했습니다. 제 생각대로 가이드북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살아있는 정보'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이 책을 보고 침사추이와 센트럴을 하루씩 가봐야 겠다는 결정을 했으니 이 책의 가격 정도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전 롤러코스터 같았던 비행
4시간의 비행은 시간은 하나도 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행 첫 날의 기대감을 좋아하는 제게는 다소 짧게 느껴지기도 했죠. 하지만 홍콩까지의 이 4시간짜리 비행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비행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도착하기 한시간쯤 전부터 시작된 -밥먹을 때까진 좋았지?- 비행기의 흔들림이 도착이 가까워오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 테이블 위의 와인이며 음식들이 쏟아질만큼 심했습니다. 종종 비행기가 급강하하며 엉덩이가 잠시 공중에 뜨는 '실전 경험(?)'까지 안겨 줬는데, 이러다 정말 큰일이 나겠다 싶어 마지막 메시지를 어디에 기록해야할지 고민까지 했습니다. 후에 들어보니 기류가 급격히 변하는 구간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저는 다시 비행기를 타지 못할뻔 했습니다. 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 아찔해요, 다행히 돌아올 때는 무척 편한 비행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제 여행의 시작은 어김없이 시계 맞추기, 한시간 차이라 좀 시시했지만요.-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드디어 홍콩에 도착했습니다. 첫인상은 '음?'. 같은 아시아권 국가라 그런지 공항 내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외국에 갓 도착한 두근거림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곳곳에 한글도 보이더라고요. "여기가 사천공항쯤 되나"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Welcome to Hong Kong!
앞서 방문한 다른 도시 -모스크바, 프라하, 오사카 등-에 비해 홍콩 공항은 규모도 크고 시설도 비교적 현대식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인천 공항과 크게 다른 느낌이 없기도 했지만요.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한 것은 한국에서 입고 온 두꺼운 검정색 코트를 벗어 짐가방에 넣는 일. 홍콩의 12월은 20도 내외의 온화한 기온이 낮,밤으로 계속되는 포근한 계절입니다. 그나마 이 겨울이 아니면 저같은 사람은 돌아 다니기 힘들 정도로 덥고 습하다고 하니 좋은 시기에 잘 온것 같습니다.
"여기, 내 스타일이야"
두어달 전 홍콩을 다녀와서 실망감을 아끼지 않고 드러냈던 친구의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홍콩에 대해선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아시아권이라 러시아나 체코같은 유럽권 문화가 주는 놀라움도 기대할 수 없었을뿐더러 기름진 중화권 음식은 정말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도착해서까지 그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공항을 나와서 발견한 한 음식점의 풍경을 보고 단숨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오리와 오징어 등 고기들이 매달려 있는 식당의 가지각색 컬러들이 묘하게 저를 설레게 해서 두 대의 카메라로 계속 사진을 찍었습니다. 홍콩에서 만난 이 '색'에 단단히 반한 저는 그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여기 내 스타일인데?'
그리고 여행 내내 홍콩에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이 도시 특유의 '색'을 감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연말을 맞아 한결 더 다양하고 강한 색들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게다가 배경이 칠흑으로 변하는 밤에는 그 강렬함이 한층 살아나 눈이 즐거웠습니다.
날씨가 포근해 잠시 잊었지만 홍콩 역시 12월을 맞아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공항 곳곳에에서 성탄 장식들을 볼 수 있었고 제가 주로 머물렀던 오션 파크는 물론 침사추이와 센트럴 등 중심지까지 그 흥겨운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
폭우로 나를 맞은 미지의 땅
이 날은 도착때부터 제법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 때문에 비행이 더 힘들었는지도-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버스, 창 밖에 폭우와 잔뜩 흐린 하늘이 계속 펼쳐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물에 번진 실루엣으로 보인 홍콩의 거리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나중에 다 버릴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군데군데 낡은 소박한 분위기에 강렬하고 다양한 색채가 입혀진 거리 모습이 제가 본 어느 도시보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첫 날 저녁에 얻은 소중한 자유 시간에 저는 망설이지 않고 '폭우 속 산책'을 시도했죠.
그렇게 도착한 숙소는 홍콩 남쪽에 위치한 L'Hotel Island South. 홍콩 오션파크에서 매우 가까운 위치에 깔끔하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장점이었습니다. 제가 혼자 쓴 방은 37층 꼭대기, 트윈 베드룸이었는데요 원목과 화이트 색상의 조화가 좋았습니다. 홍콩에 온 만큼 창 밖의 '오션 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창 밖으로 산이 가득 보이는 '마운틴 뷰'의 룸이었습니다. 그래도 참 편하게 묵었습니다. 여행을 잘 하려면 잠자리가 편해야 한다는 제 철칙에 꼭 들어맞았던.
호텔에 들어오는 길,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에게 환영 인사와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홍콩 오션 파크를 안내할 스태프였고, 받은 것은 이번 크리스마스 여행의 주무대인 홍콩 오션 파크에서 준 환영 인사였습니다.
저 혼자 쓰게 된 침대 두 개 짜리 넓은 방에 들어서 '하-' 한숨을 내뱉고 테이블에 옷가지며 카메라 등 짐들을 올려놓고 무사히 비로소 내가 홍콩에 왔구나, 실감합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곧 해가 질 다섯시, 내일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오션 파크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위해 오늘은 저녁 식사와 홍콩 밤거리 구경을 해야겠어요.
첫 홍콩 여행, 이 따뜻한 크리스마 세리머니는 이렇게 본격적으로 시작 됐습니다.
[2015 겨울, 홍콩 여행] 전체 보기
떠나기 전날의 이야기, 미리 크리스마스 @홍콩 & @오션파크 (Ocean Park)
#2 동심을 깨운 오션 파크의 축제 - 홍콩 오션 파크의 크리스마스
#3 이것이 크리스마스 센세이션! 홍콩 오션 파크의 만화경 아이스 쇼
#4 오션 파크 그랜드 아쿠아리움을 배경으로 한 환상적인 디너 @넵튠스 레스토랑
#5 현대식 인테리어의 세련된 호텔 L'Hotel Island South
#6 홍콩에서 만난 바닷 속 세상, 오션파크의 그랜드 아쿠아리움
#7 홍콩 오션파크를 즐기는 비결 1/2, 워터 프론트(The Waterfront)
#9 홍콩 오션파크를 즐기는 비결 2/2, 즐길거리 가득한 서밋(The Summit)
#10 그림같은 뷰의 베이뷰(The Bayview) 레스토랑
#12 홍콩 오션파크 관람을 더욱 즐겁게 하는 특별한 체험들
#14 홍콩 타임스퀘어 Pak Loh Chiu Chow 레스토랑에서의 디너
#15 홍콩여행 첫날밤, 비 오던 코즈웨이 베이 거리 풍경
#17 마지막 밤. 소호 그리고 란 콰이 펑, 그날의 분위기
위 포스팅은 홍콩 오션파크(http://kr.oceanpark.com.hk)의 도움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