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봄, 탄도항의 일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바다가 보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난 데 없이 다녀온 탄도항에서 멋진 노을을 보고 왔습니다. 대부도를 지나 닿는 외딴 항구 탄도항은 아직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덕분에 저는 이 넓은 땅을 걷고 뛰다 앉고, 또 바라보고 그렇게 달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풍력 발전소와 멀리 보이는 누에섬 뒤로 펼쳐진 노을, 사진으로만 보던 탄도항의 그 일몰을 마주하게 되어 기쁜 날이기도 했구요.
유난히 맑은 날씨에는 오히려 멋진 노을을 볼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던 오후에 도착해 이 곳의 맑은 날씨,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 매우 기뻤지만, 꼭 보고 싶었던 노을을 혹여 볼 수 없을까봐 해가 뜰 동안 열린다는 탄도항-누에섬의 바닷길을 바라보며 감탄 반, 걱정 반을 했었죠.
오후에는 이렇게 물이 다 빠져 나가 갯벌이 드러나고 누에섬까지 바닷길이 열립니다. 등대 전망대가 있는 누에섬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죠. '바다'를 보기에 이 곳의 오후는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물이 저 멀리 도망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해가 질 때쯤 되면
황량한 갯벌에 이렇게 물이 가득 차 오르고, 누에섬은 본래 그대로 '섬'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이 날은 맑은 오후와 멋진 노을, 그리고 칠흑같은 밤을 모두 볼 수 있었던 운 좋은 날이었어요.
해 질 때가 되면 오후에는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카메라를 들고 모여듭니다. 일몰 풍경으로 유명한 이 탄도항의 '잠시만 허락된 축제'의 소문을 듣고 모인 분들이죠. 바람은 오후보다 심하고 차가워졌지만, 사람들이 모이니 썰렁한 항구 분위기가 그나마 조금 활기를 얻는군요. 방파제 끝단에는 하나 둘 삼각대가 늘어나고, 짧은 일몰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한 사람들의 분주함이 느껴집니다.
저 멀리 해가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되면, 세상은 매 초마다 조금씩 어두워지고,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마주볼 수 없었던 태양도 그 빛이 부드럽게 약해집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거죠, 수평선으로부터 위로 뻗어나가는 듯 멋진 그라데이션을 그리는 오늘의 노을이.
이제 곧 사라질 해를 보며 인지하게 되는 오늘의 마무리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는 듯, 갈매기들도 이 시간이 되면 더욱 분주하게 날아다닙니다.
이 때쯤 바닷물은 더욱 높아져 조금 전까지 제가 서 있던 자리까지 넘어옵니다.
밤 쯤 되면 아마 이 곳을 다 덮을 정도로 세차게 파도가 치더군요. 주변을 둘러 보니 아직 해는 조금 남았는데, 모여들었던 인파는 이미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오늘 일몰은 실패였던 걸까요?
그렇게 오늘 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그 때부턴 온전히 붉은 저녁 바다의 풍경을 본격적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수평선의 붉은 색과 아직 남은 하늘의 파랑색을 한 장에 담아보기도 하고 장노출을 이용해 조금 더 이 장면을 긴 호흡으로 붙잡아 두기도 하죠.
같은 장면 같아 보여도, 이 시간의 하늘, 그리고 바다는 매 장마다 색도, 농도와 감정까지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해가 다 져 검정색만 남을 때까지 서너 종의 구도로 수십 장의 사진을 찍게 되죠.
완전히 해가 사라진 후, 저 먼 풍경이 눈으로도 잘 보이지 않게 되면, 카메라로 담는 것은 오히려 즐거워집니다.
1분 가량 긴 호흡으로 사진을 담게 되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파도나 풍력 발전기의 회전이 마치 정지한 듯 고요해집니다. 셔터가 열린 시간 동안 카메라와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느낀 생각과 감정들까지 함께 담는 색다른 '기록'이죠.
셔터를 눌러 놓고 사진이 나오기까지를 기다리는 야경 촬영을 하다 보면, 이게 꼭 낚시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 낚시대를 드리우고 기다리는 동안 수 많은 사람들과 가상의 대화를 나누고, 마지막엔 나와 대화를 하는 과정들이 그 기다림의 시간에는 차이가 있지만 아마 이런 기분이 아닐까 떠올려 보곤 합니다.
이렇게 오후부터 기다려 담은 몇 장의 사진으로, 탄도항에서의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제가 봤던 어떤 노을 못지 않게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이 날의 노을, 그리고 그 노을을 바라보며 했던 생각과 대화들은 종종 이 사진을 우연히 넘겨 볼 때마다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탄도항
LEICA M, 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