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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브랜드 후지필름에서 새로운 카메라가 나왔습니다.
후지필름 80년 기술의 집약체라고 소개하는 X-T1입니다.
X100과 X-Pro1 때만 해도 확실한 철학을 갖고 승승장구 하던 모습이었는데, 그 후 제품들은 차별화에 실패하면서 다소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이번엔 말 그대로 좋다는 것들은 다 넣어서 만든 이 카메라에
X100을 처음 사진을 통해서 볼 때만큼은 아니지만 꼭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유난히 별 게 없는 2014년 상반기 미러리스 카메라 중 그나마 주목해야 할 제품으로 꼽을 수 있는 후지필름 X-T1의 간단한 소감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후지필름 X-T1
- 1630만 화소 X-Trans CMOS II (APS-C)
- ISO 100 ~ 51200
- 1/4000 - 30 초
- 1920 x 1080, 60fps Full HD 동영상 촬영
- 236만 화소 전자식 뷰파인더
- 3인치 104만 화소 틸트 LCD 디스플레이
- SD/SDHC/SDXC (UHS-II 대응)
- 후지필름 XF 마운트
X-T1에서 그 동안의 후지필름 카메라와 가장 다른 점을 찾자면, 역시나 첫 눈에 들어오는 헤드 디자인입니다.
첫 X 시리즈 X100을 시작으로 모든 X 시리즈에서 RF 스타일의 외형을 고수했던 후지필름에서 최초로 SLR 카메라 스타일의 디자인을 채용한 것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각진 헤드 디자인이나 아날로그 다이얼 중심의 인터페이스가 흔히 볼 수 있는 DSLR 카메라의 디자인보다는 콘탁스의 ARIA나 올드 야시카 카메라를 연상시킵니다.
현재 RF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고, 헤드와 그립부 돌출이 심한 SLR 카메라의 외형을 좋아하지 않아서 X-T1의 외형에 크게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다만 기존 RF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이런 고성능 카메라를 만들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은 해 보게 되는데요,
그렇게 된다면 현재 판매중인 X-E2와의 차별화에 실패했겠죠.
어찌 보면 사용자들이 이런 SLR 스타일의 외형에서 빠른 AF와 연속 촬영 등 카메라의 고성능을 연상한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X-T1은 후지필름 카메라 최고의 고성능으로 제작이 됐죠.
헤드를 빼고 보면 X-T1은 그 동안의 후지필름 X 카메라 디자인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자 철학인 프리미엄 X의 '스타일'
그래도 후지필름 카메라 보면 언제나 외관 완성도에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손에 쥐는 순간 느껴지는 단단한 재질과 마감 상태, 가죽 그립의 촉감 역시 타 회사의 플래그십 미러리스 카메라와 대등한 수준입니다.
15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출시된 만큼, 적어도 APS-C 규격 미러리스 카메라 중에는 최상위 완성도를 보여줘야 하겠죠.
투박하지만 묘하게 단정하고 멋스러운 이 헤드부위는 SLR의 돌출된 헤드보다 확실히 점잖은 느낌입니다.
SLR 카메라의 펜타프리즘 대신 236만 화소의 전자식 뷰파인더 (EVF)가 들어 있습니다.
소니가 DSLT 카메라에 EVF를 처음 도입할 때만 해도 그 참을 수 없는 이질감에 다시는 눈을 대고 싶지 않았는데
밝기와 해상도, 크기가 계속해서 발전하면서 이제 많은 분들의 거부감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바로 노출을 확인할 수 있고, 보다 많은 정보를 파인더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EVF만이 가진 장점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SLR 카메라를 선호하지 않는 저 같은 사용자들은 어쩔 수 없이라도 EVF에 정을 붙여야겠지만요
3인치 104만 화소 LCD는 상단 180도, 하단 45도 틸트 조작이 가능합니다.
다양한 구도를 선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장점이 많은 장치입니다.
특히나 하이/로우앵글 촬영에서 그 편의성이 대단하죠.
최신 미러리스 카메라 중에는 180도 플립 화면을 통해 셀프 촬영이 되는 제품도 있지만
그건 X-T1이 지향하는 모습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터치 스크린이 적용되지 않는 점은 아쉽습니다.
단순히 손으로 다 하고싶다가 아니라, AF 영역 선택 등 일부 기능에서 버튼이 줄 수 없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거든요.
X-T1의 뷰파인더는 236만 화소의 높은 화소가 가져오는 선명함 뿐 아니라 0.77배의 높은 배율로
캐논 1DX나 니콘 D4 같은 플래그쉽 DSLR 카메라에 필적하는 광활함이 장점입니다.
그 동안 EVF가 있는 카메라라도 왠지 LCD를 보며 촬영하는 것이 편했는데,
X-T1 만큼은 일부러라도 파인더를 보며 촬영하게 되더라구요.
올드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이 상단 아날로그 다이얼 인터페이스는 X-T1을 포함, 후지필름 X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입니다.
이 카메라의 외형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하구요.
갖가지 숫자가 써 있는 저 다이얼들은 숫자가 많아질수록 레트로 디자인의 멋을 살려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에서인지 후지필름은 X-T1에 무려 다섯 개의 아날로그 다이얼을 배치했네요.
상단 다이얼 세개는 각각 ISO 감도와 셔터 속도, 노출 보정을 담당하며
감도 다이얼 아래에는 드라이브 모드 다이얼, 셔터 속도 다이얼 아래에는 측광 다이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후지필름 X 카메라에 대응하는 XF 렌즈 중 다수가 기계식 조리개 링을 갖췄기 때문에 X-T1은 화면을 보지 않고 모든 촬영 설정을 다이얼 인터페이스로만 변경할 수 있는
풀 메뉴얼 컨트롤이 가능합니다. 멋도 있고, 활용성도 좋아서 앞으로도 후지필름 카메라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을 핵심 인터페이스입니다. 하지만 최신 카메라에 익숙한 사용자분께서는 후면 버튼만 누르면 되는 ISO 변경을 왜 굳이 힘들여서 다이얼을 돌려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소위 '손 맛'과도 관련이 있는 부분이라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 힘들군요. 모든 촬영 설정을 다이얼로 구현한 건 멋진 일이지만그것이 프로 사진 작가 외의 사용자에게 얼만큼 어필할 수 있을지는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일입니다.
애초에 프로 급의 사진작가들을 위해 만든 카메라니까요.
상단 다이얼 뿐 아니라 앞 뒤에도 멀티 다이얼을 배치해 아날로그 다이얼이 채 닿지 못하는 인터페이스의 빈 틈을 채우고 있습니다.
조리개 링이 없는 렌즈에서는 조리개 변경을 담당하고, 메뉴 조작 등에도 활용되는 말 그대로 '멀티 다이얼'입니다.
이런 다이얼은 뭐, 많을 수록 좋죠?
상급 카메라답게 AF-L과 AE-L 버튼을 따로 둬 좀 더 정밀한 촬영이 가능하게 했고 MF 촬영 편의성을 위한 Focus Assist 버튼 역시 눈에 띕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맨 아래 'Made in Japan' 문구네요.
후지필름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문구입니다.
with Fujinon XF 23mm F1.4
X-T1에 사용할 단 하나의 렌즈를 꼽는다면 저는 23mm F1.4 렌즈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환산 약 35mm의 대표적인 표준 렌즈로 X100과 같기도 하고 사진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35mm, 50mm 중 보다 넓은 폭의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물론 X100에 탑재된 23mm F2.0 렌즈보다 크기와 무게는 월등하지만 조리개 값이 F1.4로 매우 밝고 개방 화질 역시 뛰어납니다.
카메라에 마운트 했을 때의 전체적인 균형도 매우 좋네요.
X-T1을 받자마자 마운트 했던 렌즈도, 현재까지 '단 하나의 렌즈'라고 생각하면서 사용 중인 렌즈도 역시 이 23mm F1.4 렌즈입니다.
멋진 카메라 X-T1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외형과 XF 렌즈다운 훌륭한 완성도, 환산 35mm의 높은 활용성으로 많은 촬영에서 만족감을 줬습니다.
특히 이 F1.4 개방 조리개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동일한 촬영을 훤씬 작고 가볍고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는 X100, X100s가 있음에도 X-T1과 XF 23mm F1.4를 사용하게 되는 이유는
카메라의 높은 성능도 비싼 가격에 대한 이끌림도 아닌 이 렌즈의 성능 차이가 가장 컸습니다.
F2.0, F1.4의 개방 촬영에서 느껴지는 연출의 차이도 생각보다 큰 데다가
X100, X100s의 최대 개방 촬영에서 나타나는 소프트 현상을 X-T1과 XF 23mm F1.4 렌즈 촬영에서는 느낄 수 없기 때문인데요.
선명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유저들에게 X100 사용자들이 가장 크게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을 채워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F2.0 등 높은 조리개 값에서의 화질 역시 더욱 좋을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환산 약 50mm 렌즈로 활용할 수 있는 XF35mm F1.4 렌즈도 X-T1의 단짝으로 손꼽히지만
저는 아마 X-T1에는 이 23mm 렌즈를 주력으로 사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
< X-T1으로 촬영한 사진>
해상력을 저하시키는 광학 로우패스 필터를 제거한 X-Trans CMOS는 후지필름의 큰 자부심 중 하나입니다.
APS-C 포맷 중 최고의 해상력을 자신하고 있는데요, X-T1의 1630만 화소 X-Trans CMOS II 이미지 센서는 높은 해상력이 발휘되는 원거리 풍경 사진에서
그 장점이 발휘됩니다. 이미지에서 매우 작게 표시될 수 밖에 없는 원거리 피사체가 작지만 섬세하게 표현되는 걸 보면서
후지필름이 누차 말한 '풀프레임급 화질'이 뭔지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1630만 화소 X-Trans CMOS II 이미지 센서의 힘
<원본 리사이즈>
< 100% 확대 >
<원본 리사이즈>
< 100% 확대 >
이미지를 100% 확대한 화면에서 보이는 섬세한 묘사는 기존 APS-C 포맷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충분합니다.
해상력이라면 자신 있는 라이카 M9과 summicron 35mm 조합과 비교해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물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맑은 날 조리개를 잔뜩 조이고 찍은 야외 사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보통의 조명 환경에서 F1.4 최대 개방으로 촬영한 두 번째 사진의 100% 확대 이미지는 놀랍습니다.
이미지 품질에서만큼은 APS-C 규격 미러리스 카메라 중 최고라고 평가받는 후지필름 X 시리즈의 힘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됐네요.
사실 APS-C 이미지 센서가, 그리고 후지필름 카메라가 이 정도라고는 기대하지 않아서 더욱 놀랐습니다.
최고 수준의 고감도 이미지 품질
< ISO 6400 원본 리사이즈 >
< 100% 확대 >
최초의 렌즈 교환 X 시리즈였던 X-Pro1부터 후지필름 카메라는 고감도 이미지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X-T1은 보다 향상된 X-Trans CMOS II 이미지 센서가 사용되었으니 더욱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최대 감도로 ISO 25600을 지원하며 ISO 6400으로 촬영한 위 이미지에서 리사이즈는 물론 100% 확대 이미지에서도
눈에 거슬리는 노이즈 패턴이나 채도 저하, 색 왜곡 등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위 사진을 찍을 당시의 조명 환경을 생각하면 ISO 6400이 얼마나 높은 감도이며
최대 ISO 25600을 활용해 얼마나 큰 어둠 속에서 장면을 구해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해상력과 노이즈 억제력 모두 APS-C 이미지 센서의 한계를 확실히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아래는 X-T1으로 촬영한 이미지 몇 장입니다.
언제 '믿고 쓰는 후지필름'이 되었지?
APS-C, 지금은 이게 High-End 이다.
오랜 시간동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 받았던 후지필름의 AF
이해할 수 없었던 '풀프레임급 화질'이라는 말
거부감을 지울 수 없던 전자식 뷰파인더
우려먹기에 대한 피로감
내가 좋아하던 철학을 잃어버린 회사의 모습
저를 사로잡았던 X100 이후 그 동안 알게 모르게 기대와 실망을 반복해 오며 후지필름 카메라에 대해 쌓인 불신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X-T1은 확실히 디자인만큼이나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최고라고 자부하던 AF 속도는 후지필름 카메라에서 종종 느꼈던 답답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묘사가 뛰어난 결과물은 과연 풀프레임과 비교해 볼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뷰파인더에 대한 거부감을 크게 줄여준 고해상도/대형 EVF 역시 다이얼 인터페이스와 함께 X-T1의 감성을 대표하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사실 X-Pro1 이후로 비슷비슷한 모델만 쏟아내며 처음 X100을 세상에 선보였을 때 발표한 자사의 철학을 이제 잊은 건가 싶기도 했는데,
SLR 스타일로 변화한 디자인이지만 아날로그 다이얼과 하드웨어 완성도로 후지필름 X의 전통을 이어갔고 써 본 사람은 안다는 X-Trans CMOS 이미지 센서의 고화질과 가격대비 훌륭한 후지논 XF 렌즈 등 어느덧 선발 주자들을 제치고 APS-C 규격 미러리스 카메라 중 가장 매력적인 시스템으로 떠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높은 완성도와 성능에 따른 높은 가격 정책과 아직까지 낮은 브랜드 인지도, 라이트 유저층이 좋아할 부가 기능의 부족함 때문에
대중적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은 카메라지만, 그들이 진정 원하는 유저층인 사진과 카메라에 열광하는 하이 아마추어 포토그래퍼들에게는 쓸 수록 좋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카메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너무 높은 성능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그들이 강조했던 '사진 촬영의 즐거움' 혹은 '감성'과는 전보다 그 거리가 조금 멀어진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필름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X100의 차갑고 단단한 바디를 처음 잡고, 광학 파인더와 전자 뷰파인더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뷰파인더를 처음 봤을 때의 감성만큼은 아니더라도,
결과물 못지 않게 사진 찍는 순간 자체를 즐긴다는 느낌이 들기 바랬는데, X-T1 같은 경우에는 어쩐지 그냥 최신 미러리스 카메라 - 예를 들면 올림푸스 E-M1 같은 - 를 잡는 느낌이었습니다. 셔터감이나 셔터 소리 역시 너무 평이했고, 다이얼 조작 역시 요즘은 레트로 스타일이 많아서 이제 '후지필름만의 매력'이라기엔 부족하구요.
- 네, 생각하다보니 저는 X-T1의 디자인이 맘에 안드는 것 같습니다. RF 스타일을 돌려달라고! -
하지만 X100 이후로 아마 처음으로 후지필름 카메라에 만족감을 느껴본 것 같네요.
가격 안정화와 렌즈 발매가 계속해서 이뤄지면서 많은 분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카메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