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65층 루프탑 바에서 싱가포르 슬링 한 잔을 마시는 고상한 여유가 제게도 있었습니다. 3박 5일 짧은 싱가포르 여행의 마지막, 비행기 시각을 얼마 앞두고 벼르고 벼른 1-Altitude에 다녀왔습니다. 야경이 아름다운 싱가포르를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여러 루프탑 바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곳입니다. 나홀로 다닌 여행의 마지막 장면으로 전에 없이 화려하기도 했고, 이 날 많은 일이 있었기에 잊을 수 없습니다. 


1-Altitude,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의 야경이 메인 뷰인만큼 1-Altitude는 마리나 베이와 멀지 않은 Raffles Place 지역에 있습니다. MRT Raffles Place 역과도 매우 가까워서 방문하기는 어렵지 않은 편입니다. 영업시간 그리고 다소 비싼 입장료가 문제죠. 65층 루프탑 바의 경우 저녁 여섯 시에 오픈해 새벽 두 시까지 영업합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마무리로 방문하거나 저녁식사를 마친 후 심야의 아쉬움을 달래는 데 더 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Raffles Place 역 근처는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대형 쇼핑 센터가 있는 번화가입니다. 녹지와 아스팔트, 노천 카페 등 곳곳에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정작 65층 루프탑 바 위의 분위기는 꽤나 호젓합니다. 1-Altitude라는 이름이 적힌 정문 앞에는 예약 확인과 입장을 돕는 카운터가 있는데, 동시에 입장하는 인원 수가 정해져있으니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겠죠? 저는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오픈 시간 여섯시에 맞춰 이 날의 첫번째 손님으로 즉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날이었으면 해가 진 후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방문했겠지만 이 날은 귀국일이라 남은 시간이 없었습니다.


1-Altitude는 음료가 포함된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격은 30 싱가포르 달러, 여기에 음료 한 잔의 가격이 포함돼 있습니다. 아무래도 뷰 하나만을 위해 방문하기에는 비싼 가격이지만 -사테 세트 가격이에요.- 분위기와 음료 값을 생각하니 한 번쯤 방문할만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설득이 되는 거겠죠.



65층 루프탑 바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갑니다. 첫번째 엘리베이터가 61층까지 사람들을 올려 놓으면, 다시 65층까지 가는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갈아타는 방식입니다. 환승을 알려주는 친절한 인상(?)의 형님이 너무 멋져서 뒷모습을 담았습니다. -앞모습을 담았다간 귀국을 하지 못할 듯 하여-


싱가포르 최고의 뷰


탁 트인 65층 옥상에는 이미 신나는 비트의 클럽 음악이 가득했습니다. 일반적인 전망대와 달리 천장이 없고 주변도 유리 파티션을 둘러 65층 고층의 뷰를 최대한 살렸습니다. 바에 놓인 테이블에서는 빈부 격차가 느껴지는데, 스탠딩 테이블은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고 프라이빗 테이블은 미리 예약이 필요하다더군요. 인당 100불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는 후기를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습니다. 편안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손에 칵테일 한 잔씩을 들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싱가포르 최고의 뷰를 감상하는, 캐주얼한 분위기였습니다.


- 1-Altitude에서 내려다 본 마리나 베이 -



65층 루프탑 바의 뷰는 막힘없이 360도로 빙 둘러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유리 파티션을 따라 옥상을 한 바퀴 둘러보며 마리나 베이와 시내, 저 멀리 말레이시아가 보인다는 바다까지 서로 다른 뷰를 만끽합니다. 유리벽의 높이가 제 목 정도까지 와서 풍경을 보는 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물론 기대거나 하면 큰일 나겠죠.


이 날은 아쉽게도 종일 날이 무척 흐렸습니다. 센토사 섬에서 뜨거운 오후를 보냈던 어제가 생각나서 더 아쉬웠어요. 사실 싱가포르로 출발하기 전 매일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를 본 터라 현지에서 본 화창한 날씨만으로 충분히 행운이었다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비싼 입장료를 내고 올라온 루프탑 바라서 그런지 못내 아쉬웠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받은 음료 교환권을 옥상에 있는 바에 가져가면 즉석에서 해당 음료를 말아(?) 줍니다. 저는 싱가포르 전통 음료라는 싱가포르 슬링을 선택했고, 즉석에서 능숙하게 쉐킷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드라이진, 체리 브랜디, 레몬 주스, 소다수, 레몬 슬라이스가 들어가는 칵테일인데 상큼한 맛으로 여성들한테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비트 가득한 65층 바에서 즉시 말아내는 칵테일은 맛보다는 분위기가 압권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싱가포르 한 잔을 들고 마리나베이가 가장 잘 보이는 스탠딩 테이블에서 여행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여유를 즐겨봅니다. 사실 이 날 오후에 경비 대부분이 든 지갑을 잃어버린 터라 남은 돈이 거의 없었는데, 점심을 포기하고 남은 돈의 대부분을 1-Altitude 입장료로 지출했습니다. 다행히 딱 공항까지 갈 MRT 요금이 남더군요. 어찌 보면 이것도 행운입니다. 점심을 거른 빈 속에 싱가포르 슬링이 들어가니 금방 얼굴에 취기가 올라 혼자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날씨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빼고는 여행의 마무리로 아주아주 근사한 장면이었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1-Altitude의 특별한 뷰를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미 제법 많았습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약간의 시간이 더 남았지만 꼭 야경이 아니더라도 이 루프탑 바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사람을 들뜨게 하더라고요.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를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괜한 으쓱함이었을까요?






아마도 저처럼 싱가포르 최고의 뷰가 궁금해서 방문한 관광객이 많았을 것입니다. 연인, 친구, 가족 단위로 방문한 사람들은 멋진 360도 뷰에 감탄하고 이곳에 있다는 것에 즐거워하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밤이 되면 더 화려하게 변신하는 1-Altitude


일곱시가 지나 주변이 조금씩 어두워지자 65층 옥상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에 일제히 붉은 조명이 들어왔습니다. 싱가포르 야경의 감동, 루프톱 바의 특별함을 더해줄 양념인 셈입니다. 이전에는 오직 유리벽 너머 뷰만 보였지만 이렇게 빨간 옷을 입은 풍경을 보니 이 루프톱 바 자체로도 싱가포르에서 손꼽을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몰이 가까워오자 야경을 즐기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그리고 마리나 베이도 밤을 환영하는 불을 일제히 밝혔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맞은 첫 번째 밤에 저를 감동시킨 마리나 베이 샌즈와 싱가포르 플라이어 그리고 그 인근의 환상적인 도시 야경이 여기서 보니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이대로 밤이 더 깊어지면 까만 하늘과 대비돼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씩 주변이 어두워지는 동안 이 마리나 베이 풍경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보고, 찍고 또 보고, 찍고. 그렇게 싱가포르에서의 마지막 밤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렇게 깊고 강렬한 밤을 기다리던 중 하늘에 잿빛 구름이 드리우고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졌습니다. 뭐 그 양이 많지 않은데다 덥고 습한 날씨를 식혀 주기도 해서 비를 맞는 게 싫지만은 않았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결국 이 날의 루프탑 바 영업이 종료됐습니다. 천장이 없는 옥상이다보니 이렇게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엔 영업을 하지 않는다더군요. 기대했던 마리나 베이의 야경은 결국 그 절정을 보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 안내요원의 손에 이끌려 61층으로 대피했어요 -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마지막까지 알 수 없다고 루프탑 바에서 쫓겨 내려온 61층 클럽 Altimate에서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저녁 여덟 시부터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며 본격적인 밤의 축제를 알렸지만 아쉽게도 약속된 비행기 시간 때문에 1-Altitude와 다른 Altimate의 매력을 느낀 것에 만족하며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눈호강 값 치고는 제법 비싼 가격이지만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그리고 무척이나 근사한 루프탑 바에서 보내는 시간은 사테 한 접시보다 더 진하게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녀온 후 1 Altitude는 싱가포르 여행을 앞둔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야경 코스'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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