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재미있게도 혹은 불운하게도 서른살이 넘도록 도가니탕을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몸에 좋다는 이야기도, 맛이 있다는 추천도 받았지만 막상 메뉴판을 보면 고깃국을 주문하게 됐는데, 이번에 드디어 도가니탕 첫경험(?)에 성공했습니다. 서울시내 도가니탕으로 유명한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저는 비교적 가까운 충무로에 있는 '파주옥'에서 대망의 '첫 도가니탕'을 했습니다. 벽에 걸린 액자 속 사진에서 이 식당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메뉴는 꼬리곰탕, 곰탕, 우족탕, 도가니 탕 등 다양한 한우 찜, 탕요리들입니다. 한우와 호주 소고기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있습니다. 도가니탕뿐 아니라 꼬리곰탕, 도가니찜 등이 유명하다고 하네요.



상에 놓여진 반찬만 봐도 이 식당의 역사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잘 익은 깍두기와 김치, 그리고 고기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반찬들이 맛깔스러워 보입니다. 탕에 가득 올려 먹으면 좋을 파와 양념도 있습니다.



드디어 받아든 저의 첫 도가니탕, 멀건 국물을 보니 제가 그동안 도가니탕을 먹지 않았던 이유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됩니다. 사실 저는 국밥 요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탕요리를 먹더라도 국물보다 고기 위주 메뉴를 골랐습니다. 그래서 도가니탕의 멀건 국물을 보니 '실패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저 고기도 아니고 비계도 아닌 반투명한 도가니 덩어리는 무슨 맛일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식사를 시작합니다.



첫인상과 달리 내용물은 제법 푸짐한 편입니다. 제 손가락만한 길이의 도가니가 한입 가득 채워 먹기 좋습니다. 게다가 파까지 올리고 나니 찬바람 불 때 그리워질 훈훈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파주옥의 도가니탕에는 돌솥밥이 제공됩니다. 이것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14000원의 가격은 도가니탕의 가격으로는 보통 수준이라고 하던데, 이것이 삼겹살 일인분 이상의 값어치를 할 수 있을까요.


처음 경험한 도가니탕은 신기한 음식이었습니다. 비계처럼 보이지만 쫄깃쫄깃 식감이 있어 고기처럼 씹는 맛도 있고, 듣던대로 먹는 내내 입술이 서로 쩍쩍 달라붙는 '콜라겐의 힘'도 느꼈습니다. 맑은 국물은 그 자체로는 간이 세지 않고, 소금과 파, 양념 등을 곁들이면 고소한 끝맛이 살아납니다. 돌솥밥을 말아 한 숟갈 크게 떠 먹으니 온 몸이 훈훈해지고 어느새 외투를 벗었는데도 땀이 납니다.


아쉽게도 결론은,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고기를 먹겠다' 였지만 도가니탕 자체의 맛은 꽤 좋았습니다.

이제 또 어떤 음식을 뒤늦게 도전해야할지, 지나치고 놓친 음식들을 한 번 확인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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