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모처럼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한 그녀보다 앞에 놓인 종이가방이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그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때 제게 '겉멋든 사람' 같다던 그녀는 뒤늦게 애플 제품들의 매력을 알게됐고 요즘은 하나씩 갖고 싶은 것들이 늘어 갔습니다. 이 시계는 그 중 가장 꼭대기에 있던 것이었는데요,
저같은 덕후 아저씨들에겐 흔한 속담인 '어차피 갈거면 한방에 가야 후회가 없다'는 말이 적중했나 봅니다.
아침 일찍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다녀왔지만 행복하다는 그녀 못지 않게 이것을 실물로 볼 수 있게 된 제 가슴도 두근거리더군요.
애플워치 시리즈2 에디션 에르메스의 포장입니다.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오렌지색 상자에서 일반 애플워치와 다른 오오라가 느껴집니다.
애플워치 에르메스는 애플과 에르메스. 트렌드를 선도하는 두 아이콘의 만남으로 첫 발매 당시부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애플워치를 '전자제품'이 아닌 '시계'로 자리매김 하려는 애플의 마케팅에서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와의 협업은 매우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애플워치 시리즈2에서도 에르메스와의 협업이 이어져 새로운 애플워치 에르메스를 구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쩌면 애플워치보다 이 에르메스 에디션이 더 큰 성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플워치 에르메스는 서울에선 세 곳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에르메스 스토어,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의 애플샵 그리고 청담 분더샵 이렇게 세 곳이라고 합니다. 21일 정식 발매와 함께 국내에도 애플워치 에르메스 제품이 소량 입고됐습니다. 비싼 가격에도 수요가 꽤 있는지 일부 모델은 발매 당일 오전에 모두 판매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발매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 현대 무역센터점 에르메스 매장에서 몇 개 남지 않은 제품 중 하나를 구매했다고 합니다.
애플인듯, 에르메스인듯
리본을 당기는 것으로 애플워치 에르메스와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설렘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입니다. 바라보는 저도 흐뭇하게 웃고 있고요.
왜 애플워치 에르메스여야 했는가?
Apple Watch Hermès (Series 2)
-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 S2 듀얼 코어 프로세서
- 내장형 GPS
- 50미터 방수2
- 사파이어 크리스털
- Force Touch가 적용된 2배 더 밝은 OLED Retina 디스플레이(1,000 니트)
- 세라믹 후면
- Digital Crown
- 심박 센서, 가속도계, 자이로스코프
- 주변광 센서
- 다이렉트 파이어 스피커 및 마이크
- Wi-Fi(802.11b/g/n 2.4GHz)
- Bluetooth 4.0
- 최대 18시간의 배터리 사용 시간3
- watchOS 3
새로운 애플워치 에르메스는 애플워치 시리즈 2 기반으로 스페셜 에디션만의 장치들이 더해졌습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사양은 애플워치 시리즈2 스테인리스 스틸 모델과 동일합니다. 디자인은 전작과 같은 사각형으로 기존 밴드 및 액세서리를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두께가 0.9mm 미세하게 두꺼워졌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GPS 내장과 새로운 50m 방수 설계 등 오리지널 애플워치와 차별화되는 성능 때문입니다.
애플워치 시리즈2의 중요한 변경점을 짚어보면, 오리지널 애플워치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느린 구동 속도를 듀얼 코어 프로세서로 끌어올린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오리지널 애플워치를 사용해 보신 분이라면 기존 워치의 성능이 얼마나 형편 없었는지 경험하셨을테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최신 스마트폰 사용자에게는 답답한 속도지만 '있으나마나 한 앱'을 '참고 쓸만한 앱'으로 격상시켰다는 것은 하드 유저에게 분명 의미가 있겠습니다.
시계로서의 활용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하드웨어 개선도 눈에 띕니다. 물 속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50m 방수 성능의 설계가 적용됐습니다. 이는 시계를 차고 수영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단단한 방수 설계와 더불어 내부에 고인 물을 진동으로 '뱉어내는' 발수 장치를 탑재한 것이 눈에 띕니다. 디스플레이 밝기는 기존 워치보다 2배 가량 밝아져 태양광 아래서 좀 더 잘 보인다고 합니다. 배터리 성능도 조금 더 좋아졌다고 하는데, 그래봐야 매일 충전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획기적인 변화로는 꼽기 힘들겠습니다.
이 외의 장치, 성능은 기존 애플워치와 대부분 같습니다. 어찌보면 많이 좋아진 것 같기도, 별 차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새 애플워치를 사고싶은 분들에게는 이것들이 무척 매력적인 변화로, 평정심을 찾은 분들에게는 시리즈3 모델까지 기다려볼만한 일부 개선 정도로 보일 것입니다.
지루한 설명에서 다시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애플워치 에르메스의 상자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상자마저 두고두고 보관하고 싶은 고급스러운 패키지는 확실히 일반 애플워치 모델에게 없는 무엇이 있습니다.
단단한 주황색 종이 상자 위에는 애플워치 에르메스의 로고가 새겨져 있습니다.
종이 상자를 들면 일반 애플워치 스테인리스 모델과 같은 흰색 플라스틱 상자가 나옵니다.
아마도 에르메스의 손길은 여기까지인가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 플라스틱 상자에도 에르메스 에디션 로고가 새겨져 있습니다.
애플워치 에르메스,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 포브바레니아 가죽 더블 투어
종이 상자에 이어 플라스틱 상자까지 열면 곱게 포장된 시계를 볼 수 있습니다. 흠집에 약한 스테인리스 스틸 그리고 에르메스의 부드러운 가죽 밴드가 무척 조심스레 포장돼 있는 모습입니다.
그녀가 선택한 모델은 38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에르메스 워치의 대표적인 스타일 중 하나인 더블 투어 스트랩입니다. 가죽 역시 시그니처와 같은 브라운 컬러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작년에 우연히 이 시계의 사진을 보고 반한 이후 그녀의 선택은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브라운 컬러의 더블 투어 스트랩만을 원했었죠.
사실 이 상태에서 한참동안 그녀도 저도 저 얇은 종이 포장을 뜯지 못하고 이 자태를 감상했습니다. 왠지 손대기가 쉽지 않더군요.
패키지에 포함된 설명서와 안내 책자 역시 에디션 용으로 특별 제작됐습니다.
에르메스 스포츠 밴드
새로운 애플워치 에르메스에는 기본 가죽 밴드와 함께 실리콘 재질의 스포츠 밴드가 기본 제공됩니다. 아름답기로는 두 말 할 필요가 없지만 내구성이 약한 가죽 밴드 대신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스포츠 밴드를 기본 제공하는 것은 반가운 소식입니다. 시리즈2 모델의 장점인 방수 기능을 활용하기에도 스포츠 밴드가 적합하겠습니다.
스포츠 밴드 역시 에르메스 에디션에 맞춰 버클부위에 로고가 새겨졌고 색상 역시 주황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두께나 길이 등 디자인 역시 일반 스포츠 모델과 미세하게 다르다고 하는데 직접 비교할 밴드가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애플워치 에르메스만의 더블투어 스트랩
무심한 듯 팔목을 두 번 감는 독특한 스타일의 더블 투어 스트랩은 에르메스 시계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합니다. 마치 시계밴드와 팔찌를 겸하는 듯 일반적인 시계 밴드보다 패셔너블합니다.
물론 매기도 어렵습니다.
연한 브라운 컬러의 포브 바레니아 스트랩은 매우 부드러워서 착용감이 좋지만 그만큼 내구성에 의문이 생깁니다. 몇 번만 착용해도 금방 '태닝'이 되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가죽 밴드는 태닝되는 맛에 차는 거라지만 498,000원의 가격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부드러운 밴드는 한 두번 벗었다 차는 것만으로도 금방 손목에 맞춰 늘어납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버클 역시 일반적인 버클과 다른 디자인이며 에르메스 로고가 새겨져 있습니다. 작은 부분까지 섬세한 손길이 느껴집니다.
스트랩을 착용하고 전원을 켜봅니다. 여기서부터는 영락없는 '애플' 워치입니다. 패키지부터 가죽밴드까지 파리의 향기가 폴폴 풍기지만 전원을 켜는 순간엔 영락없는 캘리포니아의 차가움이 느껴진달까요. 아무래도 부팅 화면에 에르메스 로고가 나오지 않아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폰과의 연결 과정이 끝나자 애플워치 에르메스만의 워치페이스가 화면에 나타납니다. 제게는 가죽보다 더 탐나는 저 시계 화면. 저 화면에 반해 많은 분들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에르메스 에디션을 구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애플워치는 시계 화면을 사용자가 직접 디자인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별도로 구매하는 기능도 지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르메스의 저 시계 화면은 일반 모델에서는 절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원이 켜지지 않은 시계 역시 더블투어 스트랩 덕분에 세련된 느낌을 주지만 역시 핵심은 이 워치페이스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일반 애플워치와는 완전히 다른 시계처럼 보일 정도니까요.
또 다른 기본 밴드인 스포츠 밴드도 한 번 연결해 보았습니다. 고급스러운 맛은 가죽밴드에 비할 수 없지만 이 조합 역시 밴드와 워치페이스의 색상을 맞추니 캐주얼한 멋이 있습니다. 비가오는 날이나 야외 활동이 있을 때 가죽밴드 대신 잘 착용하게 될 것 같다는 것이 그녀의 말입니다. 생각보다 조합이 괜찮습니다.
백만원이 훌쩍 넘는 거금을 지출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연신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는 모습이 귀엽더군요.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에도 세련되게 어울리는 더블 투어 스트랩과 전자제품에 관심없는 사람도 어떤 시계인지 궁금하게 하는 워치페이스가 이 시계의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어느새 42mm 포브 바레니아 싱글 투어 모델의 가격과 카드값 상환 계획을 계산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말이죠.
그래, 인생 뭐 있습니까. 이거 하나로 이렇게 행복해지는데.
부럽습니다.
부럽습니다. 부럽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일이년만 지나도 그 가치가 반토막나는 흔한 전자제품의 기믹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인 두 아이콘의 협업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아이콘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옆에서 곁눈질로 감상하고 또 물어물어 들으며 포스팅 해보려 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남성용 모델을 구매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요.
이 매력적인 시계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