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얘기/사는 얘기

동호대교 위로 펼쳐진 한강 노을 (2021년 서울 여행)

mistyfriday 2021. 8. 13. 11:11

무더운 이번 여름의 위로를 꼽는다면 낮과 밤 쉴새 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하늘이겠죠. 특히 붉고 노란 빛, 종종 분홍과 보랏빛으로 물드는 노을을 보는 재미가 대단합니다. 더위가 한 풀 꺾인 요즘엔 이 축제같은 일몰을 기대하는 맘에 해질녘만 되면 엉덩이가 들썩이는데요, 지난번 노들섬 노들 여행에 이어 이번엔 아예 한강 다리 위로 노을을 마중나가 봤어요. 결과는 성공.

 

https://mistyfriday.tistory.com/3703

 

무더운 여름날, 서울 노들섬 노을 여행

점점 살기 힘든 기후로 변화하고 있는 대한민국. 여느 해보다 더운 올여름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본격적인 무더위 시작 이후로는 외출도 자제하고 잔뜩 움츠러들어 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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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몇 번에 걸쳐 노을 사냥(?)에 나섰지만 난지 한강 공원에서, 노들섬과 선유도, 서울숲에서 생각처럼 탁 트인 뷰를 맞을 수 없었기에 이번엔 아예 한강 다리 위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목적지는 이전에 야경 감상차 다녀왔던 달맞이 근린공원 아래 있는 동호대교. 철제 구조물과 밤에 들어오는 조명의 색이 아름다운 곳이죠. 이날은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8월 초였는데, 오후 여섯시쯤 도착해 해넘이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걸어서 건너보는 한강 대교 풍경. 강남으로 넘어가는 방면 왼쪽으로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저 멀리 잠실 롯데타워도 흐릿하게나마 보이고요. 이렇게 쉬운 것을 왜 그동안 한강 공원의 무성한 수풀 뒤에서 발 동동 굴렀는지. 생각보다 일몰 시간이 늦어서 결국 걸어서 동호대교를 왕복했습니다. 이렇게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걸으면 낯선 곳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 날 일몰 시간은 저녁 7시 50분이었어요. 압구정에서 다리 반대편으로 건너가 해가 지는 서쪽을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일곱시가 넘으니 대기가 조금씩 금빛으로 물들어 햇살 닿는 지하철의 금속 표면이 달아올랐습니다. 강 위라 바람이 꽤 불어서 더위로 고생하진 않았지만, 기다렸던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이 분주해졌습니다. 챙겨 간 카메라를 손에 꼭 쥐고 다리 위 좋은 위치를 찾았습니다.

늦은 오후의 붉은 햇살은 서울의 재미없는 아파트, 빌딩들도 낭만적으로 보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붉게 상기된 듯한 이 시간의 빛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가로로, 세로로 연거푸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 날의 노을 쇼. 그간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노을이 펼쳐질 때는 늘 실내에서 작은 조각만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이날은 운이 맞았어요. 여느 날보다 화려한 노을이 펼쳐졌고, 저는 어느 때보다 좋은 자리에서 그 시간을 맞았습니다. 주황색으로 시작해 붉은 빛으로 달궈지는 대기를 원없이 감상했습니다. 매일 이 다리를 지나는 듯한 사람들도 멈춰 서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을 정도로 특별했습니다.

그리고 이 절정의 시간에 강 위를 가르며 여름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2021년 여름에 많은 장면들을 봤지만 이 날 본 하늘과 다리 위, 강물 위의 모습들이 가장 많은 수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요즘 서울 여행하며 느낀 것은 생각보다 한강 위에서 여가를 즐기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패들 보드와 웨이크보드, 요트 등.

노을 쇼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 너머로 사라졌고, 잔열과 남은 색들이 대기 위에 퍼졌습니다. 해넘이의 골든 타임은 해가 진 순간이 아니라 해가 사라지고 난 후라는 것을 그간 왜 몰랐을까요. 발길 돌리다 아쉬움에 다시 달려간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이날 노을은 참으로 변화 무쌍해서 몇 분 사이로 색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구름의 형태도 수없이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했고요. 늘 그렇듯 마지막 순간 구름의 형태가 가장 드라마틱했고, 붉은색에서 보라색, 푸른색으로 이어지는 그러데이션 역시 가장 선명했습니다. 두 시간의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날이었어요.

동호대교 위
달맞이 근린공원

하늘이 완전히 깜깜해진 뒤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동호 대교 위. 달맞이 근린 공원 위에서 서울의 야경 몇 장을 더 담았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발이 묶이면서 요즘 틈 날 때마다 서울과 근교 여행을 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꽤 멋진 도시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화려한 노을로 기억될 2021년 여름이 끝나기 전에 몇 번 더 노을 여행을 해 볼 계획입니다. 다음엔 어디가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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